‘생명나눔자살예방센터’ 정택수 팀장은 지난해 군 상담관으로 근무하며 겪은 부적응 장병들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최근 발간된 ‘생명나눔자살예방센터’ 정택수 팀장의 에세이집 <이대론 군생활 못하겠어요>는 지난해 군 상담관으로 근무한 1년간의 상담기록이다. 저자는 현장이 아니라면 들려줄 수 없는 부적응 장병들의 숨겨진 내면 이야기와 생생한 상담기를 그대로 담아냈다.
저자는 23년간 군 간부로 복무한 예비역 장교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서 상담학을 공부한 그는 제대 후에도 자신이 몸담았던 군을 떠날 수 없었다. 지난해 그는 장교가 아닌 군 상담관으로 다시금 군에 발을 들였다. 그가 군 생활 당시 겪었던 부적응 장병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에서다.
저자는 책 초반부부터 자신의 처참한 실패담을 고백한다. 그는 상담관으로 일하는 동안 안타깝게도 두 명의 장병을 잃었다. 두 병사 모두 이혼한 부모 밑에서 컸다는 불우한 가정사가 공통점이다. 사회에서 이미 트라우마를 입은 청년들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상담을 받다 세상을 등진 두 장병들에 대한 당시를 회고한다. 전우에게 죽기 전 담담하게 유언을 남기고 떠난 A 일병. 그림솜씨가 일품이었지만 부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목을 맨 G 일병. 저자는 당시 병사들을 기억하며 담당 상담관으로서 느꼈던 죄책감과 후회, 그리고 안타까움을 소회한다.
저자가 만난 부적응 병사들에게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앞서 목숨을 잃은 두 병사와 마찬가지로 군 입대 전 겪었던 불우한 가정사 등 트라우마의 영향으로 병영생활에 부적응한 사례다. 특히 책에 기록된 H 이병의 사연은 독자들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H 이병은 어린 시절 여동생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고통 받았다. 장례식 당시도 장남이기에 눈물을 머금었다고 한다. H 이병은 이로 인해 우울증과 불면증 등 군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는 평소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저자에게 털어놓으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기수열외’로 고통을 받는 병사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지난 7월 발생한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의 주요원인은 ‘기수열외’였다. ‘기수열외’는 부대 내 특정 병사를 무시하는 병영 내 왕따 문화다. 사회에서도 왕따를 당해온 L 상병은 저자를 만나기 전, 부대 내에서도 어눌한 행동 탓에 왕따를 당했다. 그는 상병이 되고나서도 후임들에게 ‘물상병’으로 불렸다. 저자를 만나기 전 L 상병은 자살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군에서는 공식적으로 존재를 부인하고 있는 ‘기수열외’가 여전히 하나의 병폐로 남아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부대 내 성관련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저자가 상담한 사례 중에서는 이러한 성관련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장병들의 사례가 적지 않다. N 이병은 선임의 노골적인 성추행으로 고통 받았다. 매일 밤, 잠자리에서 선임이 끌어안으며 심한 애정표현을 하는 터라 거부도 못하고 심적 고통을 겪어왔다. N 이병은 도저히 정상적인 군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동성애자인 K 이병은 부대 내 남성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고통을 겪는가 하면 또 다른 동성애자 병사는 부대 내 간부에게 호감을 느껴 곧잘 흥분하는 탓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동안 숨기기만 했던 병영 내 성문제와 아직 제대로 문제의식조차 성립되지 못한 동성애가 실제 큰 과제로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책에는 해외동포 병사들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이들은 한국말도 서툴뿐더러 낯선 사회에서 겪는 소외감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다. 저자가 상담한 미영주권자 M 이병은 32세의 늦은 나이에 입대한 병사였다. 그는 미국에 세 살배기 딸과 아내를 두고 있는 가장이었다. 홀로 타지에서 그것도 어린 선임들을 상대로 군 생활을 하려니 여간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평소 겪던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다행히 M 이병은 저자의 상담과 부대의 배려 속에 정상적인 궤도로 복귀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많은 동포 청년들이 조국을 위해 군복무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책에는 ‘집총거부’ ‘ 애인의 변절’ 등 다양한 이유로 자살충동과 부적응을 겪은 장병들의 사례가 빼곡히 담겨있다. 아마도 군대를 제대한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다 몇 번씩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군대를 가지 않은 독자들도 저자의 생생한 상담수기 속에 담긴 요즘 청년들의 고민에 대해 한 번쯤 귀 기울여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고통받는 병사들에 지푸라기 돼주고파”
― 왜 제대 후 군 상담관을 지원했나.
▲ 군대는 내가 23년간 몸담았던 곳이다. 복무 중 군생활에 적응 못해 목숨을 끊는 장병들을 지켜봤다. 조금만 도와줬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많았다. 제대 전부터 심리학을 공부하며 군 상담관을 준비했다.
― 책은 어떻게 집필하게 됐나.
▲ 지난해 상담관으로 일하면서 6~7권의 수기를 남겼다. 원래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은 내가 남긴 수기 중 특별한 사례를 추린 것이다. 나의 상담사례가 군에 귀감이 됐으면 한다.
― 군 상담관 근무 당시 힘들었던 점과 보람된 점은.
▲ 역시 2명의 장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제일 마음 아팠다. 후회와 죄책감 때문에 잠도 못 잤다. 해머로 맞은 기분이었다. 반면 나의 상담과 사회성 훈련을 통해 변화된 장병들의 모습을 보면 무척 뿌듯했다. 가장 약자인 장병들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은 매우 보람된 일이었다. 지금까지 연락이 오는 장병들이 많다.
― 군에 바라는 점은.
▲ 자살충동을 느끼는 장병들은 전문 상담가들의 도움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다. 현재 군 상담관 제도는 미흡하다. 상주하는 군 상담관이 장기간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부적응 장병들을 돌봐줘야 한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