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그동안 출제위원들은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수능시험의 보안을 위해 철저한 통제와 감시 속에 한 달을 보내왔다. 휴대폰, 편지, 팩스, 전화, 인터넷 등 외부와 소통 가능한 모든 수단이 차단된 숙소에서 머물며 출제기간 동안 가족과의 간단한 안부 전화조차 허락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은 과거 수능출제위원을 역임했던 교수들을 만나 그들의 감금생활 및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어우, (수능 출제하는 일은) 웬수 같아요.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해요. 전화도 다 끊어놓죠. 너무 답답해요. 감옥과 똑같다고 보면 됩니다.”
전 수능출제위원인 A 교수는 수능 출제의 추억에 대해 묻자마자 몸서리를 쳤다. A 교수는 “교도소도 가끔은 밖에 내보내주던데 여기는 얄짤없다. 패쇄된 공간에 머물며 낯선 이들과 함께 출제를 두고 씨름해야 하니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A 교수의 말처럼 실제로 합숙소는 외부와 철저히 격리돼 있다. 출제위원들이 사용한 휴지조각 하나라도 외부로 반출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보안을 자랑한다고 한다. 일례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도 보안요원이 고무장갑을 끼고 쓰레기봉투를 일일이 검사한다. 이 과정에서 수상한 쪽지나 실수로 들어간 휴지 조각들은 색출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제외한 일반 쓰레기는 문제 보안을 위해 외부로 반출하지 않고 수능 당일까지 그대로 쌓아 놓는다.
이뿐만 아니다. 보다 철저한 격리를 위해 합숙소 주변에 일시적으로 담을 세우고 ‘내부 수리 중’ 표지판을 내건다. 주변에 거주하는 일반인들이 이곳에서 수능출제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변장’을 하는 것이다. 건물 내부 보안은 더욱 더 철저하다. 출제위원들이 지내는 각 방에 딸린 베란다와 창문은 방충망을 쳐 봉쇄한다. 이를 두고 몇몇 전 출제위원들은 ‘숨통을 끊어놓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창문에 종이를 붙이는 것도 금지사항이다. 외부에서 망원렌즈를 이용하면 정보가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합숙소에는 전경 1개 소대가 상주하며 실시간으로 합숙소를 순찰한다.
워낙 보안이 철저하다보니 웃지 못 할 일도 많다고 한다. 전 출제위원 B 교수는 “간신히 공간을 마련해 선생님들과 족구를 했는데 실수로 공이 담 밖으로 넘어갔다. 밖에 있던 경호원에게 공을 달라고 했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공을 돌려줬다”면서 “그런데 공이 완전히 찢겨져서 돌아왔다. 혹시 공 안에 문제쪽지를 넣어서 외부로 보냈는지 확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B 교수는 “듣기로는 CCTV 20~30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보안실에서 경찰관, 평가원 관계자, 보안요원들이 상주하고 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출제위원이 아플 경우에도 이색 풍경이 펼쳐진다. 전 출제위원 C 교수는 “한번은 한 여자선생님이 갑자기 고열로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경호원, 장학사들이 바짝 따라붙어 갔다고 한다. 간호사가 여선생님 성함을 묻자 경호원이 단호하게 막아서며 ‘이분은 그런 거 질문하시면 안 되는 분이십니다’라고 했다더라”며 “후에 그 여선생님이 말하길 당시 병원에서 자신이 재벌가의 따님으로 소문났다고 한다. 그걸 듣고 함께 웃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친족의 상과 같은 극한 상황이 벌어져도 출제위원이기에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2~3년 전엔 한 출제위원이 합숙 중 부친상을 당해 보안요원 2명과 함께 장례를 치르러 고향에 갔다. 이동시 보안을 위해 특별히 제공된 승용차를 이용했으며 빈소에는 약 3시간 정도만 머물 수 있었다고 한다.
A 교수는 “출제위원들 중 일부는 합숙한 지 2주 정도가 지나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내 옆방에 머물렀던 어떤 교수는 한밤중에 부인이 보고 싶다면서 울기도 했다. 그동안의 출제 경험상 다들 그 고비만 잘 넘기면 이내 합숙 생활에 적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나마 음식이라도 잘 나오니까 참을 만해요” 전 출제위원 D 교수는 합숙기간 중 제공되는 음식을 맛보며 출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고 말했다. 식사는 오전 7시 30분, 낮 12시 30분, 오후 6시 30분마다 제공된다. 참고로 출제를 마치기 전까지는 주류는 일체 제공되지 않는다.
당시 합숙소 식당에서 일했던 김 아무개 씨는 “일주일에 2번 정도 뷔페를 열고 합숙기간 내내 100가지 이상의 다양한 음식들을 출제위원들에게 제공한다. 물론 간식도 준비한다. 회를 좋아하는 위원들이 많아 일주일에 한 번씩 (회를) 공수해오기도 했다”며 “우리 같은 식당 아줌마들도 출제위원 합숙소에 들어가면 위원들과 마찬가지로 30여 일간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 중 만난 전 출제위원들은 ‘출제를 마치고 난 후 수능일까지 남는 시간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장기 복역수들이 복역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돌을 수집하고 조각을 하는 등 다양한 취미를 개발했던 것처럼 수능출제위원도 이곳에 오면 새로운 취미들이 생긴다.
D 교수는 “어떤 교수님들은 공기놀이에 빠지기도 한다. 집중력이 좋은 교수들이라 그런지 7일 동안 공기에 빠지면 나중엔 거의 달인 경지에 오른다. 나중에 하는 걸 지켜보면 정말 입이 떡하고 벌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떤 교수들은 심심해서 그런 건지 하루 종일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기도 한다. 또 마음 맞는 교수들끼리 모여 내부 특강을 열기도 한다. 시간이 남아도니까 서로의 전공을 강의해주고 공부를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곳에 들어오면 공기, 탁구 등 오락이나 게임 부문의 개인기량이 향상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B 교수는 “다들 합숙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수능 당일까진 미치도록 불안함을 느낄 것이다. 말 그대로 초긴장 상태다”면서 “자신이 출제한 문제가 펑크나거나 수능 날 돌출 사고가 날까봐 노심초사하는 교수들이 대부분이다. 수능 당일 합숙에서 해방되어도 그 다음 날까지는 마음 편히 있지 못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A 교수 역시 “수능 출제는 일당 30여 만 원을 받는 고액 업무다. 즉 한 달에 약 1000만 원을 버는 꼴이다. 그러나 돈보다도 책임감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 바로 수능 출제다”며 “정신적인 압박감과 초조함 속에서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 문제들인 만큼 부디 학생들이 자기 기량을 마음껏 펼쳐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