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월간 타점 1위 기록…“이범호 코치 조언 따르니 어느 순간 원하는 타격 나와”
KIA 타이거즈 4번 타자 황대인(26) 이야기다. 올 시즌 초반에는 득점권에서 부진한 모습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 5월 시작부터 방망이가 무섭게 돌아갔다. 타격감이 상승됐고 ‘타점 포식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득점권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5월의 황대인은 월간 최다 타점 1위(29타점)를 기록했다.
2015년 2차 1라운드 2순위에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해도 황대인을 가리켜 ‘향후 10년간 KIA를 이끌어갈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황대인은 오랜 기간 자리를 잡지 못했다. 좌절과 방황을 거듭하다 프로 8년 차를 맞이한 올 시즌, 황대인은 데뷔 처음으로 풀타임 출전을 이어가는 중이다. 우타 거포에 목말랐던 KIA 타선에서 타점왕에 도전하며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
KIA 더그아웃의 분위기 담당인 황대인을 8일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만났다.
6월 9일 현재 황대인은 48타점을 기록하며 타점 1위에 올랐다. 2021시즌 전체 타점이 45타점이었던 걸 떠올리면 엄청난 지표다. 그는 타점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시즌 전부터 타점 욕심이 컸어요. 타점을 많이 올리면 팀 승리에 도움이 되고, 개인 성적도 좋아지니까요. 5월 들어 앞 타선의 형들이 주자로 나가주는 바람에 솔직히 저는 숟가락만 얹었을 뿐입니다. 못 얻어먹으면 바보일 정도로 형들의 활약이 정말 컸어요. (김)선빈 형, (나)성범 형이 자신들한테 잘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더라고요. 상황 봐서 형들한테 음료수라도 돌리려고 합니다(웃음).”
지난 4월 한 달 동안 황대인은 타석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 외에도 기대를 모은 외국인선수 소크라테스 브리토와 최형우도 동반 슬럼프를 겪었다.
“당시 소크라테스랑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중심 타선에서 터져줘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서로 격려도 해주고 우리가 잘해야 팀 성적이 좋아진다고 힘도 불어넣어 줬는데 5월부터 둘이 같이 잘하니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쁘더라고요.”
개막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던 소크라테스는 5월에만 타율 0.415, 안타 44개로 1위를 기록했고, 타점(28점) 공동 2위, 득점(20점) 3위 등 다양한 공격 지표에서 순위 경쟁을 이끌며 5월 MVP에 선정됐다.
황대인은 소크라테스의 적응력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어 배우는데도 적극적이라 웨이트트레이닝을 마치면 트레이너들에게 항상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빠트리지 않는다는 것.
“제가 힘들 때 최형우 선배님도 같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선배님은 내색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겁니다. 우리는 항상 투수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컸어요. 역전패가 많았고,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문제가 있었으니까요.”
이전과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어떻게 해서 ‘뜨거운 5월’을 보낼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황대인은 타석에 들어설 때 심적으로 편해진 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감독님, 코치님들이 자신감을 갖게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이전에는 타석에서 자신 있게 돌리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않았거든요. 당시의 제 입장은 오늘 못하면 (2군으로) 내려간다는 생각에 자꾸 움츠러들었으니까요. 그런 압박감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습니다. 2군으로 떨어질 거라는 불안함을 버리고 오늘 경기에 최선을 다하자 라고 마인드를 바꾼 거죠. 그러면서 조금씩 편해진 것 같아요.”
시즌 초반만 해도 황대인은 자신의 야구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야구였다고 정리한다. 그러다 5월 1일 삼성전에서 뷰캐넌을 상대로 첫 타석에서 중견수 앞 안타를 치고 2타점을 올린 시점이 반전의 계기로 작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득점권 기회가 오는 게 두려웠어요. 6경기를 치르는 동안 안타 하나도 못 치고 득점 찬스를 놓치는 일이 빈번해지니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4월 성적에서 패한 경기의 90%는 저 때문에 패한 거예요. 5월 우리 팀이 상승세를 탔던 건 모두가 잘해서이고요. 그중 소크라테스의 활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느 날 황대인은 자신이 믿고 따르는 이범호 코치로부터 잊지 못할 한마디를 듣게 된다.
“4월에 제가 많이 헤매니까 이범호 코치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결국 모든 숙제는 선수 자신이 풀어야 한다고요. 그때부터 집에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어요. 상대 선발 투수의 영상을 보며 타이밍 잡는 연습을 반복했고, 투수의 구종, 구질에 대해 다시 공부했고요. 그리고 (박)동원 형이 트레이드를 통해 팀에 합류한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랑 타격폼이 비슷한 유형이라 동원 형에게 많은 걸 물어봤거든요. 동원 형은 자신의 존에 들어온 공에만 반응하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그래야 인플레이 타구가 나오면서 타격에 자신감이 생긴다고요. 그런 조언들을 바탕으로 계속 훈련하다보니 어느 순간 제가 원하는 타격이 나오더라고요.”
지난 해 홈런 13개를 때린 황대인은 현재 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4번 타자로 활약 중이다. 그는 KIA 라인업을 볼 때마다 자신의 이름이 4번에 적혀 있는 게 신기하다고 말한다.
“솔직히 제가 진정한 4번 타자 감은 아니에요. 4번 타자보단 네 번째 나가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4번 타자로 나서는 게 정말 신기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KIA의 4번 타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잖아요. 역대 훌륭한 4번 타자 선배들이 많았는데 제가 그 자리를 잇고 있다는 게 영광스럽습니다”
올 시즌 황대인은 5월 18일 롯데전에서 오른발 뒤꿈치에 통증을 느껴 19일 엔트리에서 빠진 걸 제외하곤 전 경기 출장 중이다. 원래는 19일 경기도 출전을 강행하려다 김종국 감독의 만류로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경기에서 빠지는 게 싫었어요. 단 하루였지만 그 사이에 다른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치면 제 기회는 줄어드는 거잖아요. 팀 동료라고 해도 경쟁하는 관계라 뼈가 부러지지 않는 한 경기에 뛰고 싶었던 거죠. 흔히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고 말하잖아요. 요즘 그 말을 절감하고 있어요.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는데 저한테 그 기회가 처음 온 것 같아요.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기회가요.”
황대인의 연봉은 6500만 원이다. 2015년 신인 최저연봉에서 시작한 몸값이 8년 차임에도 크게 오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카센터를 운영하시는데 저를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어요. 어느 정도 연봉을 받고 위치가 올라가면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고 싶어요. 그게 저의 또 다른 목표입니다.”
황대인은 신인 시절 ‘이범호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KIA뿐만 아니라 KBO리그 전체 젊은 타자들 중 우타 거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황대인의 잠재력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황대인은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웠다고 말한다.
“스무 살 신인 선수에게 ‘이범호 후계자’라는 타이틀은 기쁨보다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 자체를 이겨내야 했지만 그땐 나이도 경험도 부족한 어린 선수였을 뿐입니다. 지금은 감사해요. 그렇게 불러주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요. 새삼 느끼지만 선수는 성적이 좋아야 하더라고요.”
5월 MVP의 주인공인 소크라테스는 황대인을 가리켜 팀을 대표하는 분위기 메이커라고 소개했다. 더그아웃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가 황대인이기 때문이다. 황대인의 야구는 올 시즌 ‘봄날’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가을, 겨울에도 그 ‘봄날’이 이어지길 희망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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