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는 상상력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한다. 자신들이 세상을 떠나고난 뒤 남을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하는 자체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입버릇처럼 "아이보다 내가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이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 아이들이 누군가의 돌봄 없이 살아가려면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일이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탓이다. 발달장애는 일반적인 지체장애와 달리 각 개인마다 장애의 편차가 커서 표준직업훈련이 어렵다. 그러다보니 취업률이 낮을 수밖에 없고 자립은커녕 집안에서 생활하다보면 사회화는 더욱 더디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들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가족에게만 온전히 책임을 미루기 전에 우리 사회의 각 단위들이 함께 동행할 의지를 가진다면, 발달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함께 사회 속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지난 해 문을 연 푸르메여주팜은 그 희망의 징표이다.
매월 25일은 푸르메여주팜 직원 모두가 설레는 날이다. 월급은 통장으로 바로 입금되지만 월급명세서는 꼭 받아야 제 맛이다. 월급명세서를 받은 김동휘 씨(35)는 가족들에게 한턱 쏠 거라며 좋아했다. 임의혁 씨(26)의 월급날은 내 집 마련을 위한 청약저축을 하는 날이고, 이덕희 씨(34)는 자신을 위해 플렉스하는 날로 부모님께 돈 벌어왔다고 자랑도 하고 피자도 시켜 먹는단다.
덕희, 동휘, 수연, 효진. 이곳에서 그들은 '발달장애인'이라는 집단으로 뭉뚱그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이름만큼이나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사랑스러운 개인들이 된다. 효진은 음악을 좋아하고 덕희는 수다떨기를 좋아하며 수연은 패션에 관심이 많다. 비록 장애가 있지만 이곳에서 그들은 각자 한 사람몫의 인생을 살아간다.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가족을 위한 선물도 사고, 친구를 만나 맛있는 것도 사 먹으며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것. 많은 사람들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발달장애인들에겐 '일상'이 아닌 '꿈'에 불과했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든 곳.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푸르메여주팜'은 IT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팜으로 설립된 발달장애인들의 직장이다. 이곳에서 방울토마토를 키우고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발달장애 직원은 현재 38명. 모두 면접을 거쳐 당당하게 채용된 정직원이다. 주 5일 하루 4시간 근무하고 매달 최저 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으며 4대 보험도 보장받는다. 이곳은 이제 전국 발달장애 가정들에게 꿈의 직장으로 떠올랐다.
농장의 출발점은 푸르메재단이었다. 이곳의 경영지원실장을 맡고 있는 임지영 씨는 한 어린이재활병원에서 한 엄마를 만났다. 발달장애 아이를 둔 엄마는 자기가 죽은 후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며 눈물을 쏟았다. 장애인 자녀 돌봄은 개별 가정에 대부분 전가되어 가족들의 삶을 옥죄었다.
현재 그런 상황에 놓인 우리나라 발달장애인은 약 25만 명. 특수학교나 특수반에서 직업교육을 받아도 대부분 취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들이 사회 속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섰다.
임지영 경영지원 실장은 "발달장애인이 혼자서 독립해서 살아가려면 우선으로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안정된 일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뭘까? 열심히 찾았는데 우리가 찾은 답이 '스마트팜'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일은 어느 한 사람이나 한 단체가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농장을 지을 땅조차 없었고 막대한 건립비를 마련할 방도도 없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기에 단계마다 난관에 부딪쳤다.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한 사람, 한 기업, 한 기관 차례차례 손을 잡는 곳들이 나타났다. 전국에서 단 한 건의 전례도 없지만 지자체가 기꺼이 주주의 일원으로 참여해줌으로써 최후의 장벽도 돌파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 관, 공 컨소시엄형 장애인표준사업장 푸르메여주팜은 그렇게 탄생했다. 동휘 씨와 지민 씨 등 38명의 발달장애인들을 어엿한 직장인으로 자리잡게 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한 터전은 실로 여러 사회적 단위의 협동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꿈꾸는 농장'은 발달장애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꾸고 이 사업에 동참한 동행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놀랍고도 멋진 변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여주 들판에서 시작된 최초의 날개짓이 더 큰 바람을 만들어낼 것을 예감하며.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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