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 철수 작전에 동원된 배 중 가장 마지막으로 흥남 부두를 떠난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 혹한의 추위 속에 사흘 간 이어진 이 항해에서 배에 탄 1만 4000명의 피난민들은 단 한 사람의 사망자도 없이 전원 생존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
미국 선원들은 그 기적의 아이들에게 김치 1, 2, 3, 4, 5라는 별명을 지어줬고 흥남에서 올라탄 1만 4000명은 거제에서 1만 4005명이 되어 하선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키즈들은 그 후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 배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김치 1호 손양영씨의 추억과 그리움 가득한 70여 년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부산의 좁은 골목길을 누비는 노년의 신사. 손양영씨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흔적을 더듬으며 옛 동네를 찾는다. 코흘리개 꼬마에서 칠순 노인이 되어 다시 찾은 동네는 변한 것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부산의 동네였지만 그의 기억 속에 이웃 주민들은 대부분 북한 사람들이었다.
1950년 12월의 흥남 부두는 밀려드는 중공군을 피해 도망친 북한 민간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미군의 철수를 무작정 따라 온 사람들이었다. 고민하던 미군은 결국 그들을 구하기로 한다.
그의 부모님도 흥남 부두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한 10만 여명의 북한 피난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잠깐의 피난길이라 생각해 어린 두 아이를 북한에 두고 온 부모님은 손양영씨를 낳고 평생 북한에 남은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살게 된다.
당시 항공유를 나르는 상선이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화물칸을 비우고 짐을 나르는 크레인을 사용해 피난민들을 화물처럼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무려 1만 4000명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는 세 명의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원들. 그들은 물도 없고 빛도 들지 않는 화물선 내부에서 사흘 동안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그 날의 기적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무려 5명의 아이들이 태어난다.
선원들은 한국인이 좋아하고 가장 한국적인 이름을 고민하다가 김치라는 이름을 아이들에게 붙여준다. 그렇게 의무부속실에서 외국인 선원과 같은 피난민들의 도움으로 가장 먼저 태어난 김치 1호 아기가 바로 손양영 씨다.
장롱 속 누렇게 변한 봉투와 필름을 들고 사진관을 찾은 손양영 씨. 필름을 현상하자 갓난아기의 사진이 나온다. 100일이 되던 날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고 가서 찍은 사진이다.
아버지는 남한에서 태어난 손양영씨의 얼굴을 북한의 형제들이 모를 테니 사진과 메모를 남겨 손양영씨에게 남겨주었다.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간직해온 그 사진은 73년 째 전달되지 못했다.
죽어서도 북쪽을 향해 묘지를 써달라 부탁하신 부모님. 아기는 노인이 되고 세상은 변했지만 전쟁의 상처와 그리움은 세월에 빛바래지 않는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김치 키즈의 이야기가 오페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손양영 씨. 자신이 김치 1호가 된 원인이자 역사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 다시는 이런 슬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그는 바라고 또 바란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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