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로맨스 다룬 일본 드라마 현지 넷플릭스 1위…다정한 밀크남 Z세대까지 포섭 ‘신 한류’ 주목
‘아이 러브 유’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 소리가 들리는 초능력 탓에 연애 상대에게 늘 상처를 받았던 여자 모토미야 유리(니카이도 후미 분)가 다정한 한국인 유학생 윤태오(채종협 분)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달콤한 로맨스를 그린다. 태오가 입 밖으로 꺼내는 대사는 일본어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대사는 전부 한국어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유리는 태오와 사귀게 된다면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에게 접근하게 된다.
여주인공 유리가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설정에 걸맞게 TBS의 현지 방영분에서 태오의 마음속 한국어 대사는 자막이 적히지 않는다. 시청자들 역시 유리와 똑같은 마음으로 태오의 행동과 표정 등을 통해서만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끔 한 셈이다. 이에 일본 시청자들은 자막 처리가 된 넷플릭스 등 OTT 스트리밍분이 아닌 본방을 시청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실시간으로 번역 내용 등을 SNS를 통해 공유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종협(애칭 '횹사마')이 연기한 태오가 일본 여성들이 한국 남성에게 갖는 판타지적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현지 인기에 큰 몫을 더하고 있다. 드라마를 위해 극대화된 다정함이 일본 남성이 아닌 한국 남성 캐릭터에게 주어졌기에 다소 과하게 연기한다 해도 당위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 일본에 처음으로 한류 붐을 일으켰던 드라마 ‘겨울연가’의 강준상(배용준 분)에서 시작된 ‘다정한 한국 남성’이 여전히 일본 여성들에게 스테디셀러로 여겨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기와 관심에 비례하게도 시청률도 준수한 편이다. 10부작으로 기획된 ‘아이 러브 유’는 1월 23일 첫 방영한 1화에서 5.5%를 시작으로 매주 꾸준히 6% 이상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바로 직전에 히로세 아리스, 미치에다 슌스케 주연의 러브 코미디 드라마 ‘마이 세컨드 아오하루’가 최고 시청률 6.0%를 기록했고, 이 전작인 후쿠하라 하루카, 후카다 교코의 ‘18/40~꿈 사랑 두 여자’ 역시 평균 시청률 6.0%대를 유지했다는 것을 본다면 한국 남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운 첫 시도임에도 ‘아이 러브 유’가 고정 시청 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 넷플릭스에서도 주간 시청률 1위를 꿰차기도 했다.
사실 한국 남배우와 일본 여배우의 로맨스 드라마 자체만으로 놓고 본다면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이미 2000년대 초부터 한국과 일본이 ‘한일 합작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작품을 내놨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방송사 가운데선 MBC가 이를 주도해 왔는데, 원빈과 후카다 교코를 주연으로 내세운 후지TV와의 합작 드라마 ‘프렌즈’(2002)를 시작으로 지진희·요네쿠라 료코 주연의 TBS와의 합작 드라마 ‘소나기, 비 갠 오후’(2002), 조현재와 나카고시 노리코 주연의 ‘별의 소리’(2004) 등이 시간차를 두고 양국에서 방영됐다.
몰개성 캐릭터와 진부한 러브 스토리가 국내 시청자들에겐 혹평을 받았지만, 일본에서는 그럭저럭 인기를 얻어 주연을 포함한 출연진들의 이후 일본 활동에 힘을 실어줬다. 양국의 상반된 반응을 두고 당시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드라마의 경우 주로 로맨스에만 치중했던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로맨스 위주의 작품이 10년여 전(당시 기준)에나 유행했었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접하고 향수를 느끼는 반면 한국은 다소 식상하게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는 한일 합작 드라마의 제작이 중단되고 양국 모두 자체 콘텐츠 제작에만 주력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던 가운데 K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가 전 세계에 새롭게 유행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부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것만으로 자동적으로 캐릭터에 미스터리한 매력이 부여됐던 기존 작품과는 달리 시대에 맞춘 구체적인 설정과 배경이 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 K팝으로 한국의 위상이 단순한 ‘이웃 나라’에서 동경의 대상으로 한 단계 높아진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된다.
2011년 방영한 후지TV의 일요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이 그 변화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김태희, 일본의 니시지마 히데토시라는 두 톱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은 한국의 톱 배우 한유나와 그의 보디가드를 99일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맡게 된 독신남 나미키 코헤이 간의 ‘가장 가깝고도 먼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한국 배우가 극 중에서도 톱스타로 등장해 동경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한일 합작 드라마, 또는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일본 드라마와의 차별점을 드러내 정식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앞서 ‘욘사마 열풍’을 일으킨 ‘겨울연가’가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0’에 가까운 상태에서 시작돼 압도적인 인기를 이끌어냈고, ‘나와 스타의 99일’은 한국 배우와 연예계가 일본에서 새롭게 갖게 된 위상과 주목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그런데 ‘아이 러브 유’는 그런 기본 관심을 밑거름으로 더 나아가 한국인과 한국 사회, 그리고 한국 문화를 향한 긍정적인 호응이 더해져 완성된 작품인 셈이다. 실제로 ‘아이 러브 유’에서는 한국어로 들리는 남주인공 태오의 속마음과 여주인공을 향한 그의 적극적인 표현, 때때로 보이는 ‘한국적인’ 태도와 습관 등을 통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를 체감하게 하는데, 그 점이 바로 인기의 큰 요인이라는 게 현지 시청자들의 이야기다.
일본의 한 연예 칼럼니스트는 “한국에 이미 호감을 가진 1020 젊은 세대들까지 포섭하며 드라마의 시청 층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 중년 여성들이 이끌었던 기존의 ‘욘사마 열풍’과는 다른 점”이라며 “최근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일본과는 다른 한국의 문화나 생활, 말투부터 현재 유행하는 것들에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여성들이 갖는 로맨스 판타지까지 충족될 수 있어 (한국 배우를 남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과감한 시도였음에도 준수한 시청률과 화제성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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