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록강 유람선에서 바라본 북한 신의주 주민들. 오른쪽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북한에선 공식적으로 무속신앙을 탄압하지만 김 위원장이 용한 무당을 대동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사진공동취재단 |
최근 미국의 대북방송 <RFA>는 북한에서 무속신앙이 성행하는 요즘 세태를 자세히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최근 북한 내부에서는 탈북을 결심한 주민들이 일을 거행하기 전 암암리에 점을 보는 경우가 꽤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방송은 이러한 현상은 일반주민들뿐 아니라 고위층 간부들에게도 해당된다고 소개했다.
북한은 지난 2001년부터 미 국무부에 의해 ‘종교자유 특별우려국(CPCs)’으로 지정되어 있다. 많은 인권단체들의 종교자유와 관련한 정기 실태조사에서도 거의 매년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독교나 불교 같은 정통종교들도 설자리가 없다. 더군다나 북한 당국은 무속신앙에 대해 봉건적 미신행위로 규정하며 무당들을 탄압하고 있다. 무당을 찾은 사람들 역시 처벌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무속신앙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사회가 각박해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기자와 통화한 함경북도 출신 탈북자 정 아무개 씨(28)는 “1990년대 식량난 이후 점을 보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특히 식량난으로 장사에 나서는 사람들 가운데 점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탈북여성 김 아무개 씨(50)도 북한에 있을 당시 점을 여러 차례 봤다고 전했다. 기자와 통화한 김 씨는 “북한에도 남한처럼 신기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들이 많이 아파서 동네 무당을 몰래 찾아간 적이 있다. 당시 그 무당은 조상 묘가 잘못됐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시아버지 무덤을 파보니 유골이 소나무 뿌리에 얽혀 있었다. 이장을 하고 돈을 내서 굿을 했다. 그 뒤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며 경험담을 털어놨다.
이어 그는 “물론 그 무당은 당국의 탄압 때문에 몰래 점을 치는 사람이었다. 내가 굿을 할 때도 숨어서 했다.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당들이 꽤 있지만 아무도 모르게 점을 친다. 실제 점을 치다 끌려가 죽은 무당도 있었다”고 말했다. 무속신앙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강도 높은 탄압을 암시하고 있는 대목이다.
일반주민들은 물론 고위급 간부와 같은 상류층들도 무당들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특히 용한 무당의 소문을 듣고 멀리서부터 찾아온 고위급 간부들은 자신의 사업 운이나 자식들의 입학 운에 대해 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서 액막이나 굿과 같은 경우 가격대가 최소 북한 돈 1만 원을 훌쩍 넘긴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북한 돈 1만 원은 3만~4만 원에 불과하지만 북한 노동자 한 달 임금이 8만~9만 원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현지에서는 매우 큰돈이다. 이 같은 고가의 무속의식은 결국 상류층들밖에 행하지 못한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내가 잘 알던 점쟁이 집에 밤만 되면 검은색 승용차가 왔다. 알게 모르게 윗사람들도 점을 많이 봤다는 얘기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관련한 점쟁이 얘기도 곧잘 나온다. 무속신앙을 탄압하는 북한 당국이지만 김 위원장이 개인적으로 대동하고 다닌다는 용한 여자 무당 이야기는 이미 많은 소식통으로부터 나온 얘기다. 전직 경호원 출신의 한 탈북자는 탈북 직후인 2006년 한 국내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2004년 용천역 열차폭파사고 당시 김 위원장은 죽을 뻔했다. 열차에 탑승 전 ‘중앙당 서기실 특별서기’라는 직책의 한 여성이 김 위원장에게 ‘2시간 기다렸다가 떠나라’라고 말했다. 그 여자가 바로 무당이었다. 덕분에 김 위원장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김 위원장이 신뢰하는 몇몇 영검들이 있으며 예외적으로 이들을 보호한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봄에 김 위원장과 관련한 불길한 점괘를 낸 북한의 용하다는 무당이 사라진 일도 있었다. 지난해 4월 민간대북방송 <열린북한방송>은 이 점쟁이의 실종사건을 전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실종된 이 점쟁이는 지난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두 달 전 김 주석의 사망을 예언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지난해 4월께 ‘김 위원장이 5월께 사망하거나 사망 직전까지 간다’라는 예언을 내놨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당시 뇌졸중과 당뇨성 만성신부전증으로 고생했다. 불길한 예언을 한 이 점쟁이는 지난해 4월 20일을 전후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인근 주민들은 보위부에서 데려가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내놓았다.
이처럼 강도 높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무속신앙은 일반 주민들과 상류층은 물론 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복비 대신 생필품
북한의 무당들은 남한의 무당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북한의 무속신앙을 연구해 자신의 저서 <한국의 현대무당 : 태무천>에 실은 바 있는 무속인 송진수 씨는 “북한에는 무당이라는 말이 없다. 그저 점쟁이로 통용된다. 종교를 부정하는 사회적 특성상 남한처럼 공개적으로 신당을 모실 수 없고 탱화나 신상도 없다. 영업은 그저 소문을 듣고 비밀리에 의뢰인이 찾아오거나 방문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무당에 대해 “북한의 무당은 대부분은 강신무다. 사회적 특성상 대를 잇는 세습무는 찾아볼 수 없다. 강신무도 남한에서는 흔한 내림굿 없이 신병을 앓다 통령(通靈)하는 경우다. 치제를 올릴 때는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음식을 매우 간소하게 한다. 복비 대신 쌀 같은 생필품으로 받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