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비싸고 보장범위 좁아 기피하는데…윤석열 정부 대선 공약 ‘진료비 표준수가제’ 국정과제서 빼
반려동물 양육 가구 수가 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서 발표한 ‘2021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반려동물 양육 가수 수는 총 604만 가구다. 591만 가구였던 2019년보다 13만 가구가 증가했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 수 증가로 자연스레 반려동물의 건강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펫보험 제도가 등장했다. 펫보험은 반려동물의 피부병을 포함해 질병 또는 상해로 인한 치료비와 수술비를 보장하는 상품이다. 타인의 신체 또는 타인의 반려동물에 손해를 입히는 경우에도 배상책임손해를 보장한다.
정부에서 펫보험 활성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혀 펫보험 시장 성장에 대한 전망도 밝다. 윤석열 정부의 대선 공약이자 110대 국정과제 중에는 펫보험 활성화가 담겨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펫보험 활성화를 위해 펫보험 개발, 보험금 청구 시스템 개선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펫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손해보험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펫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는 2017년 3곳에서 2021년 10곳으로 늘었다. 메리츠화재, 삼성화재, DB손해보험 등 보험사들은 기존 상품에서 보장 기간을 늘리는 등 펫보험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펫보험을 이용하는 이들은 적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펫보험 가입률은 0.25%에 불과하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 수가 증가 추세인 것을 감안하면 펫보험 가입률은 저조하다. 2020년 모바일 리서치 오픈서베이가 발표한 ‘반려동물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반려동물 보험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은 이유(중복응답)는 △보험료가 비싸서 40.6% △반려동물 보험 상품이 다양하지 않아서 22.4% △종별로 많이 유발되는 유전질환에 대해 보장하지 않아서 19.8% 등으로 나타났다. 비싼 보험료와 충분하지 못한 보장 범위가 기피의 원인이다.
보험업계는 펫보험료가 비싼 이유에 대해 동물병원별로 진료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진료항목별로 수가가 맞춰지면 거기에 맞춰 도움이 되는 보험상품이 나올 텐데 진료비가 병원마다 다르니 (보험사도) 어떻게 맞춰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동물병원은 임대료, 인건비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에 따라 진료비를 자율적으로 책정한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동물병원 125곳을 대상으로 초진·재진·야간 진료비 편차를 조사한 결과 가장 비싼 곳과 저렴한 곳의 차이는 최소 5배(초진), 최대 11배(재진·야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방접종 비용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시민모임이 2017년 서울 소재 193개 동물병원을 대상으로 예방접종비(4종)를 비교한 결과 서울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평균 예방접종 비용은 9만 원이었으며 일부 나머지 지역의 최저가는 7만 1500원으로 서울 내에서만 1.3배 차이가 났다. 이와 관련, 경기도의 한 동물병원 관계자는 “(동물병원은) 진료항목별로 표준화된 정보제공 체계가 없다”며 “결국 진료항목과 가격 등을 진료차트에 임의로 직접 입력한다”고 언급했다.
보험업계는 동물병원별로 진료 서비스도 달라 보험상품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개 중성화 수술만 봐도 수술 부위를 절개할지 아니면 절개 없이 복강경 수술로 할지에 따라, 또 튜브를 통해 마취약을 흡입시킬지 주사로 투여할지 등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 또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늘면서 개와 고양이 등 일부 종에만 집중됐던 진료 대상이 다변화하는 것도 진료 서비스 표준화의 어려움으로 꼽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반려동물 시장의 성장과 달리 보험상품 개발만 뒤처진 건 동물병원업계 사정 때문”이라며 “진료비, 진료항목 등이 평준화되면 이에 맞춰 다양한 상품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 반려동물 양육 가구의 표심 공략 중 하나로 ‘반려동물 진료비 표준수가제’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취임 후 110대 국정과제에는 진료비 표준수가제가 빠졌다. 110대 국정과제에 펫보험 활성화는 담았지만 정작 펫보험 도입에 필요한 제도는 마련하지 않은 셈. 이를 두고 수의사 단체의 반발을 의식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수의사 단체는 진료비 표준수가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표준수가제를 말하기에 앞서 진료항목을 표준화하든 행위나 절차를 표준화하든 중심을 정한 후 진료비 체계를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진료항목 표준화는 어느 정도 진척을 이뤘다. 지난 1월 개정된 수의사법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동물의 질병명, 진료항목 등 동물 진료에 관한 표준화된 분류체계를 작성해 고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20조 3항이 신설됐다. 동물병원 개설자가 게시한 진료비용과 그 산정기준 등을 조사해 공개하는 방안을 담은 제20조 4항도 만들어졌다. 이에 진료비 공시제 시행 후 진료항목 표준화가 이뤄질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동물단체 등에서도 진료항목이 표준화되면 진료비 표준수가제 시행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각에선 반려동물 양육 가구의 치료비 부담을 덜기 위해선 허울뿐인 대책 대신 핵심 쟁점인 진료비 표준수가에 대한 이견을 좁히고 조율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유기동물구조단체 관계자는 “반려동물 양육 가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하루 빨리 펫보험이 활성화되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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