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당 수준 탈바꿈 필요, 관성 벗어나는 게 관건…몰락 시점? 조국 사태 직후 누적된 문제 터져나와”
2015년 7월 정의당 당대표 선거 때 출마선언문으로 화제가 됐던 30대 청년이 있다. 6·1 지방선거에서 정의당 소속으론 유일하게 서울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던 조성주 전 마포구청장 후보다. 당시 조 전 후보는 ‘민주주의 밖의 시민, 노동운동 밖의 노동’의 슬로건으로 2세대 진보 정치를 주장하며 심상정 노회찬에 뒤를 이을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그런 그가 정의당 쇄신을 위해 다시 나선다. 조 전 후보는 7월 7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기 정의당은 끝났다”며 “재창당 수준으로 탈바꿈 돼야 하고, 완전히 혁신해야 한다”며 오는 9월 당대표 출마 포부를 밝혔다. 아래는 일문일답이다.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 때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서 대학 등록금 문제, 학자금 대출 문제 등 교육 관련한 사회운동을 했다. 그러다 2006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에서 인턴 비서 일을 하게 될 기회가 있었다. 20대 후반이었는데, 정치가 성향에 맞다는 걸 느꼈다.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정치의 힘은 무척 크다. 법안 문구 하나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걸 절감했다.”
―국회를 떠나 청년유니온 창립을 최초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부터 2년간 홍희덕 의원실 6급 정책 비서를 하면서 등록금 문제나 청년 실업 문제를 다뤘다. 그때 청년 실업 문제라는 게 본질적으로 노동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청년들이 직접 자기 목소리를 내는 노동조합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청년유니온을 만들게 됐다.”
―주변에서 만류가 많았다고 들었다.
“국회를 잘 다니다가 청년유니온 만들러 나간다고 하니 선배나 동료들이 말렸다. 서른 돼서 객기 부릴 때가 아니라고(웃음). 근데 너무 해보고 싶었다. 일본이나 유럽 청년들이 하는 노동조합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청년들의 새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시키기 위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정책기획팀장을 맡았는데 한 달에 10만 원을 받았던가 그랬다.”
―2015년 다시 정의당으로 돌아와 2세대 진보 정치를 주장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광장’이라고 표현되는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작동한다. 광장 밖에 있는 사람들은 노동의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진보 정치는 광장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1세대 진보 정치는 조직화된 노동조합 안에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밖을 봐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있었다.”
―2015년 정의당과 지금의 정의당은 무엇이 다른가.
“성장한 지점도 있고 정체된 지점도 있다. 2015년도보다는 아젠다가 훨씬 다양해졌다. 당시에는 노동에서도 아주 좁은 영역의 노동을 다뤘다. 이제는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등의 다양한 노동 영역을 다룬다. 이외에도 젠더 문제, 기후 문제 등 여러 영역의 아젠다들이 폭넓게 다뤄지고 있다.”
―정체된 지점은 무엇인가.
“복지 국가 비전은 훨씬 정체됐다. 2015년도에 정의당이 바라는 한국 사회 모습에는 복지 국가 비전이 있었다. 북유럽 등으로 대표되는 사민주의 복지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조세 제도, 노동시장, 경제 정책 등이 맞물린 국가 비전이다. 그게 정의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본다. 그런데 7년이 지난 지금 복지 국가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고, 기본 소득 등 어떤 정책 제도에만 치우쳐 있다.”
―대선과 6·1 지방선거에서의 정의당 성적표, 어떻게 봤나.
“정의당으로서는 냉엄한 시민들의 평가를 받은 거다. 당은 존폐의 위기에 있다. 어떤 방향으로 당을 바꿀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큰데,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게 나은 거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저는 그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의당 패배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보 정치는 새로운 아젠다에 대해 끊임없이 입장을 정리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당이 이를 게을리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서 어떤 정치적 포지셔닝에만 집중하면서 흔들렸다. 점점 사람들이 정의당을 기회주의 정당이라 평가했다. ‘정의당이 어떤 정당인지 잘 모르겠어’, ‘누구를 대표하는 정당인가’에 대한 답이 희미해졌다.”
―지지 기반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있다.
“지지 기반이 흔들렸다. 정의당은 ‘광장 밖에 있는 80%의 일하는 시민들’을 지지 기반으로 잡아야 한다. 노동시장 통계를 분석해 보면 그들은 보통 여성, 청년, 노인,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노동자들이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광장 안에 있다. 노동시장 밖에 있는 시민들을 가장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
―대안정당의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기회주의적인 면을 보여서 그렇다. 정치라는 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방선거 직전에 통과된 검수완박안 같은 경우 정의당이 절대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민주당과 같이 선다는 건 동의할 수 없다. ‘그럼 정의당 너희의 입장은 뭔데?’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데,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뭘 선택하든 기회주의자로 보이지 않겠나. 뚜렷한 당의 비전이 실종되면서부터 그런 영역들은 하나도 준비하거나 발전시키지 못했다.”
―9월 당대표 출마를 준비 중이다. 정의당이 쇄신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1기 정의당은 끝났다. 이제 2기 정의당이 아니라 당명부터 바꿀 생각이다. 재창당 수준으로 탈바꿈돼야 하고, 완전히 혁신해야 한다. 정의당의 노선은 시민들한테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평가가 끝났다. 당의 노선 이념, 국가 비전 등은 격렬한 토론을 거쳐 다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쇄신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무엇이라 보나.
“관성이 세다고 생각한다.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은 양당보다 관성이 훨씬 세다. 아이러니하지만, 권력이 강하지 않아 더 관성적이다. 30대 정치인이 국민의힘 대표에 오르는 과정은 정말 드라마틱했다. 가장 보수적인 당이지만 정권 교체, 권력 등을 위해 관성에서 더 빨리 벗어난다. 그런데 정의당은 신조나 이데올로기를 지키려는 도그마가 세고, 혁신에 대한 당내 반발도 크다. 리스크가 큰 도전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포스트 노회찬, 심상정이 보이지 않는다.
“심상정 다음에 정치인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지지기반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만들어야 했는데, 당이 그런 걸 발굴하거나 배치하는 것을 매끄럽게 못한 측면이 있다. 당이 탄생시킨 젊은 국회의원들이 있지만, 새로운 노선으로 정리됐다기보다는 개별 캐릭터들로 활동하다 보니 신구조화가 매끄럽게 되지 못했다. 이를 이을 다음 사람의 역할이 필요한데, 그래서 당대표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당의 노선이나 이념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가.
“2015년만 해도 사민주의형 복지국가 노선 등 비전이 있었다. 노동시장 변화나 글로벌 경제 변화 등 이런 차원에서 보면 약간 올드한 측면도 있다. 기본 이념과 노선은 사민주의형이지만, 노동시장과 기후 위기 등 시대 변화에 걸맞은 혁신된 플러스알파 버전을 내겠다. 지금은 진보 정치가 생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2024년 총선 승리 전략을 당원들과 함께 제기할 필요가 있다.”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당’인가.
“절반 정도만 타당한 지적이다. 페미니즘의 흐름이 최근에 굉장히 강력한 에너지로 등장했다. 어떤 운동의 흐름이나 새로운 아젠다는 초기에 엄청난 힘으로 뚫고 나온다. 하지만 거칠게 뚫고 나오는 측면이 있다. 정의당이 지향하는 페미니즘 또는 여성주의라는 것이 어디까지이고, 어느 수준인가에 대해 정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어정쩡한 상황에서 정의당이 극단적 페미니즘으로 규정돼 그냥 두드려 맞기만 했다.”
―정의당의 몰락 시점은 언제라고 보나.
“가장 크게 위기가 온 것은 조국 사태 직후인 것 같다. 그때부터 정의당이 어떤 정당인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인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민주당과의 포지셔닝에 대한 고민만 있었다. 누적돼 있던 문제들이 그때부터 터져 나왔다.”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이 정의당 2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사퇴 권고 당원 총투표를 대표 발의했다가 ‘불가’ 결정이 났다.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정의당이 겪고 있는 문제는 의원들의 의정 활동이 부족해 생긴 문제가 아니다. 국가 비전 부재, 지지 기반 상실 등 정의당에 얽힌 문제는 21대 총선 전부터 있었고, 그 부분에 기인해 결국 폭발했다. 그런데 마치 의원단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사퇴하라는 것은 사실상 화풀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하면 도대체 당에 좋아지는 점은 무엇이라는 건지 논리적으로 설명이 어렵다.”
―원내 입성한 정의당 의원들의 행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젠더 문제와 노동 문제를 교차하는 지점의 아젠다들을 많이 발굴하지 못했다. 여성들이 직장에서 겪는 차별이라든지 임금 격차라든지 다양한 경제적인 문제들이 많다.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처럼 휘발성 높은 젠더 문제 같은 것만 자꾸 부각이 되니 아쉽다.”
―갈라치기가 판을 치고 있다. 진보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은.
“정치가 권력 쟁탈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민들을 분열시키는 방식은 정치가 절대 해서는 안되는 방식이다. 극단적인 분열이나 일부러 싸움을 조장하는 것은 좋지 않다. 대표적으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갈라치기 방식은 대안이 없고, 한쪽을 다시 배제하고 악마화시키는 방식이다. 진보는 이 갈등에서 명료한 대안을 찾고 제시해야 한다.”
―더 할 말이 있다면.
“정의당이 존폐 위기에 있다. 정의당은 사실상 끝났다. 새로운 당명을 가진 새 정당으로 태어나야 한다. 새로운 진보 정치의 노선을 가지고 새로운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새로운 리더십으로 교체가 필요하다. 정의당을 다시 좋은 진보정당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 테니 냉정한 평가 부탁드린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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