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치인의 변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죽은 듯 조용하던 강 의원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계기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다.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공격수를 자처했다. 사외이사 시절의 기부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등 박원순 킬러로 활약했다. 이를 두고 ‘누구의 사주’ ‘한나라당 복귀를 위한 공적 쌓기’ 등의 다양한 해석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의 계속되는 행적은 이런 통념적인 해석마저도 부끄럽게 한다. 공격의 화살이 박원순에서 안철수 원장으로 확대됐을 뿐 아니라 정치와 무관한 개그맨한테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개그맨 최효종을 고소할 때, 그에 대한 의문은 ‘막가자는 것인가’에서 ‘제 정신인가?’로 바뀐다. 심리 분석을 할 대상이 되는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강용석 의원(무소속)은 최효종을 국회의원 집단모욕죄로 고소한 이후, 자신을 풍자한 KBS 2TV <개그콘서트>에 대해 “(이것으로써 내가) 이건 뭐 거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심지어 트위터를 통해 “슬램덩크 정대만의 맥을 잇는 불꽃남자 강용석의 무리수, 강용석의 활약상을 그린 다양한 신문만평을 한데 모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이런 강 의원을 통해 우리는 정치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의 정체가 달라지는 모습이다.
정치인은 이제 개그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스스로 열심히 개그를 하는 사람이 된다. 정치인의 연예인화 현상이다. 사실 이미 비슷한 점이 많았다.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좋든 나쁘든 알려져야 한다. 이것을 위해 선택한 사람들은 최소한 최고의 관심을 받는 박원순 안철수 최효종 같은 스타급 인물이어야 한다. 여론의 관심을 받기만 하면 자신도 그 정도의 인물이 된다고 믿을 수 있다.
강 의원의 생존과 변신 전략은 성공했다.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빠르게 전국적인 인물, 누구나 아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가 보온병 아저씨로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알려진 경우와 같다. 개그맨 최효종이 ‘시사개그’라는 영역을 대중들에게 부각시켰다면, 강 의원은 ‘개그정치’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다. 아, ‘허경영’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강 의원은 ‘공중부양’이나 ‘조작된 사진’을 만들어내는 일은 하지 않았다.
강 의원의 이런 행동에 대해 대중들은 ‘관심에 굶주린 사람’ ‘인정에 목마른 사람’ ‘자기애의 화신’ 등으로 비난하면서 사이비 심리 분석을 한다. 이런 비난은 그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인정이나 관심에 관심이 없는 사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는 현실에 충실하면서 현실에서 자기 나름의 최고의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인간이다. 이른바 ‘리얼리스트’의 성향을 너무 잘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웬만하면 대세를 따르려 한다.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느끼려 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주어진 상황이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맞추려 하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하는가 안 하는가에 민감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왕따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항상 착한 사람 또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삶의 논리에 충실하다.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부화뇌동하고, 상황의 논리에 따라 자신의 일이나 인간관계의 문제를 풀어내는 데 익숙하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직장인의 모습과 유사하다. 하지만 강 의원의 경우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있다. 이런 경우 그의 모습은 또 다른 특성이 뚜렷이 부각된다.
‘리얼리스트’가 조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게 될 때 감정적으로 변한다. 이런 감정 상태에서는 부하 등 아랫사람이나 당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안하무인으로 대하기 쉽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괴팍한 성향이 부각된다. 엉뚱한 순간에 뜬금없이 감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현실 속에서 과연 누구에게 인정받아야 하는지, 대세가 무엇인지 불분명할 때, 이런 부정적인 행동이나 정서는 더욱 쉽게 나타난다. 불안한데, 그것은 분명히 따라야 하는 대세나 규범, 틀이 없는 것으로 인한 혼란이자 불안이다. 불안할수록 가족이나 친지 중에, 혹은 영웅전 속의 유명 인물의 자랑스러움을 통해 그 불안감을 잠재우려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것에 비교적 약하다. 위기 상황에서 자존심을 내세운다.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거는 듯한 과도한 반응을 보인다. 극단적 행동을 할 수 없다면, 우울하고 어두운 성향을 보이기 쉽다. 스스로 자책한다. 상황을 감내하고 무조건 견디려 한다. 자신을 희생자이거나 피해자로 여긴다.
대중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리얼리스트의 행태에 대해, 쉽게 ‘미친 놈’, ‘또라이’ 등으로 욕하고 비난을 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쿨한 모습’을 찾기도 한다. 대중은 리얼리스트 성향의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이는 불안하고 감성적인 행동에 대해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불행이 또 다른 행운의 이유가 되는 역설이다. 평소에는 잊혀지는 인간이 사고를 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는 경우다. 평범하고 아무 재미없는 정치인이 정말 개그맨보다 더 재미를 선사하는, 연예인 이상의 인물이 되는 경우다. 강용석 의원은 살아가는 것이 답답하고, 미래가 불안한 대중들에게 정치인의 새로운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강 의원은 앞으로 ‘정치를 개그로 만든 사람’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집권 여당의 입장에서는 대통령 측근세력의 부패문제나 레임덕에 걸린 대통령의 몰락, FTA에 법안 체결 등에 대한 다양한 이슈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돌려 놓는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는 무소속이지만, 150명 이상의 한나라당 의원들보다 더 강력하게 이 사회에서 정치인, 나름 잘나고 똑똑한 인간들이 어떤 수준인가를 잘 보여주었다. 쓸모없어 보이던 국회의원들도, ‘자신의 몸을 던져’ 이 팍팍한 세상에 대중들의 마음을 잡는 ‘정치개그’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연세대 심리학 교수 황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