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벤츠 여검사’ 사건의 출발은 부산 지역에서 대학강사로 일하고 있는 A 씨(여·40)와 이 지역 부장판사 출신 최 아무개 변호사(49)의 형사사건이 부산지검에 송치되면서 시작됐다. A 씨는 “2억 원의 빚을 갚지 않는다”며 자신의 사건을 담당하던 최 변호사를 부산지검에 고소하고 대검찰청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7월 대검찰청 감찰본부에 제출된 탄원서에는 최 변호사가 검사장급 인사에게 사건청탁을 한다는 명목으로 1000만 원짜리 수표와 골프채, 명품지갑을 받아갔다는 A 씨의 주장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검찰 조사결과 수표와 골프채, 지갑은 로비 용도로 쓰이지 않고 최 변호사 본인이 사용하거나 변호사 사무실 직원이 현금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한때 변호인과 의뢰인 관계이자 내연관계였던 두 사람이 어떻게 상대방을 고소하기에 이르렀을까. 그 이유는 최 변호사에게 또 다른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바로 ‘벤츠 여검사’ B 씨(여·36)였다. A 씨가 제출한 탄원서에는 최 변호사가 B 씨에게 벤츠 승용차와 법인카드를 제공했다는 주장도 들어 있었다.
A 씨는 최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한 뒤 사건처리를 위해 그에게 청탁비를 꾸준히 지급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 변호사는 A 씨에게 이 돈을 사건청탁을 위해 썼다고 말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돈은 다름 아닌 B 씨에게로 흘러들어 갔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최 변호사와 B 씨는 2005년 법률구조공단에 근무할 때부터 서로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최 변호사는 A 씨의 사건을 청탁하며 B 씨에게 법무법인 명의의 벤츠 승용차를 제공하고 법인카드와 샤넬 핸드백 등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의혹들은 부산지검이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하며 사실로 확인됐다.
‘피의자 이름을 알려줘’라는 B 씨의 메시지에 최 변호사는 사건 내용을 설명해줬고, 이에 B 씨는 동료검사에게 사건을 청탁했음을 알려주는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문자메시지에는 B 씨가 “백값 보내도! 540만 원”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A 씨는 최 변호사와 B 씨가 내연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고, 이후 A 씨는 최 변호사에게 B 씨와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종용했다. 이에 최 변호사는 지난 5월 B 씨에게 “벤츠를 돌려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A 씨는 최 변호사를 검찰에 고소했고, 고소 이후 사건 처리가 늦어지자 지난 7월경 대검찰청에 진정까지 넣은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 처음 ‘벤츠 여검사’ 얘기가 나온 때가 이때였다.
하지만 당시 대검 감찰본부는 ‘여검사가 벤츠를 탄다는 A 씨의 말을 믿기 어렵다’며 진정내용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결국 감찰본부는 형식적인 조사만 하고 사건을 부산지검에 넘기면서 마무리했다.
A 씨는 자신의 분함을 풀기 위해 탄원서까지 제출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검찰에서 현직 검사인 B 씨와 판사 출신인 최 변호사를 옹호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 사실을 언론에 제보하면서 ‘벤츠 여검사’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 사건이 ‘벤츠 여검사’ ‘샤넬백 여검사’ 사건으로 세상에 이슈가 됐지만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면 이 사건은 최 변호사 사건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와 B 씨 의 사건을 단순한 치정관계로만 볼 수 없는 정황이 검찰조사에서 밝혀지는 등 최 변호사로부터 시작된 의혹들이 법조게이트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산지검 수사결과 B 씨가 최 변호사의 사건과 관련해 동료 검사에게 청탁했다는 의혹은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11월 30일 부산지검에 따르면 B 씨는 지난해 10~11월 창원지검의 동료 검사에게 전화해 최 변호사가 고소한 사건이 빨리 처리됐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이에 당시 동료 검사는 의례적인 대답을 했고, 구속영장 청구 등은 운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 변호사와 관련된 의혹은 법조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지역 부장판사 출신인 최 변호사가 사법연수원 동기 검사장에게 자신이 직접 고소한 형사사건 피의자를 억지로 기소하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다. 지난해 동업자 부인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들통난 최 변호사는 동업자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4억 원을 지급했다. 이후 동업자가 추가로 수억 원을 요구하자 동업자를 공갈협박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동기인 관할 검찰청의 검사장을 통해 담당 검사에게 압력을 넣어 무리하게 동업자를 기소했으나 결국 무죄가 선고됐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해당 검사장은 “그 친구와 내가 연수원 동기라는 사실을 세상이 다 아는데 어떻게 내가 그 사건에 관여했겠나”라며 반박했다.
또 다른 의혹은 최 변호사가 올해 초 부산지법의 모 부장판사(50)에게 50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과 고가의 와인을 선물했다는 것이다. A 씨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최 변호사는 A 씨 사건과 관련해 판사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이 부장판사를 통해 ‘무마 로비’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부장판사에게 선물할 고급 와인과 상품권을 사기 위해 최 변호사는 A 씨로부터 15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벤츠 여검사’ 사건이 단순한 치정사건을 넘어 법조계 로비게이트로 확전될 조짐이 일자 결국 한상대 총장은 11월 30일 이창재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장을 특임검사를 선임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독려했다.
이 사건을 맡은 특임검사 관계자는 “A 씨의 진정내용과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참고로 제기된 모든 의혹들에 대해 수사를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