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은 이번 디도스 사태를 최구식 의원의 비서 공 씨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었다. 과연 검찰에서는 다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예상대로였다. 범행을 부인하던 공 아무개 씨는 결국 단독범행이며 윗선은 없다고 자백했다. 요약하자면 선거 전날 지인들과 술을 마시던 중 최구식 의원에 대한 충성심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나경원 후보를 돕는 것이 최 의원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층 투표율이 선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투표소를 못 찾게 하면 유리해질 것이라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범행동기와 목적, 범행 가능성, 사건 앞뒤 정황, 배후, 갑작스러운 심경변화 이유 등 풀리지 않는 의혹이 산재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 씨의 단독 계획·지휘 하에 이뤄진 범행으로 보기 힘든 정황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이제 모든 미스터리는 검찰의 몫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검찰이 풀어야 할 의혹들은 어떤 게 있을까. 우선 경찰이 결론내린 공 씨의 단독범행을 검찰이 뒤집을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사실 경찰 역시 27세의 공 씨가 독자적으로 ‘거사’를 꾸몄을 가능성에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었다. 인생을 걸 만큼 강력한 동기부여가 없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공 씨가 한나라당이나 최 의원에 대한 과도한 충성심 혹은 박원순 후보에 대한 적개심 등 개인의 정치신념에 의해 일을 꾸몄을 가능성과 당 차원의 암묵적인 지시가 있다고 오판했을 가능성, 치기 어린 장난일 가능성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수사를 했지만 결국 단독범행으로 결론을 내렸다. ‘윗선’의 존재는 의혹만 키웠을 뿐 손도 대지 못했다.
하지만 공 씨 주변의 전언도 배후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어 검찰이 그 의혹을 벗겨내느냐가 핵심 포인트다. 공 씨 주변인들은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일 사람이 못된다. 투표율이 당락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알 만큼 선거 판세를 이해하지도 못하며 정치 사안에 대해 큰 관심도 없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디도스 공격을 꾸밀 만큼 IT 지식 수준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라는 증언도 있다. 더구나 최 의원을 극진히 따랐던 공 씨가 최 의원의 정치생명을 담보로 할 수 있는 무모한 계획을 꾸몄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측근들의 증언은 공 씨가 밝힌 범행동기와 완전히 상반되는 얘기들이다.
공 씨가 체포되기 전 행적도 의혹에 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달 25일 진주에 내려간 공 씨는 고향친구들과 가진 술자리 등에서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책임을 져야할 것 같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공 씨가 체포 수일 전부터 수사망이 좁혀오고 있음을 알았다는 얘기로 그가 수사 동향까지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는 경찰 고급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윗선’이 존재하고 사전에 입을 맞췄을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검찰은 공 씨 발언을 포함한 루머들에 대한 추적까지 면밀히 진행할 예정이다.
가장 큰 미스터리는 자금 부분이다. IT 전문가들에 따르면 좀비PC를 마련하는 데만도 최소 수백만 원이 드는 등 인건비를 포함한 작업비는 위험 강도에 따라 수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200만 원가량의 급여를 받는 공 씨가 자비까지 들여가며 사건을 감행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자금줄’이 확보된 상황에서 ‘작업’을 착수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한 해커는 “정치분야 작업은 리스크가 커서 회피한다. 특히 선거와 관계된 일이라면 엄두도 못 낸다. 이번 사건의 성격상 위험수당조로 상상 이상의 금액이 오갔을 것이다. 걸리면 수년을 안(감옥)에서 보내야 하는데 1억~2억 원에 인생을 걸겠느냐”라고 말했다. 검찰은 공 씨의 통장잔고 및 자산규모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금전거래까지 샅샅이 추적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대검 회계분석팀의 계좌추적 최고전문가 2명을 이번 사건을 위해 수사팀으로 급파하는 등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공 씨의 의뢰를 받은 강 씨가 ‘너무 쉽게’ 행동에 나선 이유도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다. 경찰 관계자는 “발각될 경우 중형이 불가피함을 모를 리 없는 강 씨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응했다는 것은 이상하다. 뭔가 숨기는 게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악의 경우 ‘뒷수습’을 해줄 ‘윗선’의 존재를 사전에 전달받았거나 법적 처벌을 감수할 그 이상의 대가가 약속됐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가가 보장된 경우 몇 년 썩을 각오로 범행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착수금조로 큰 금액을 쥐어주고 발각될 시 ‘힘’을 써서 형량을 최대한 낮춰주겠다는 합의까지 이뤄지면 일은 의외로 쉽게 진행될 수 있다. 특히 전과가 있을 경우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쉽다. 강 씨 등이 공문서 위조, 마약, 특수절도 등의 전력이 있기에 범행에 대한 거부반응이 덜했을 거다. 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고 귀띔했다.
강 씨가 “금전적 대가가 없었다”고 진술한 점도 의문이다. 수사팀 내부에서는 이들이 대포통장이나 차명계좌를 이용했을 가능성, 착수금을 비롯한 금전거래를 일절 하지 않은 채 추후 일괄보상에 대한 합의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사건을 기획하고 지시한 배후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보상방법 및 시기, 범행책임, 뒷수습에 대한 세세한 조율이 이뤄졌으리라는 추측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누군가’ 강 씨 일당으로 하여금 ‘윗선이 드러나면 다 같이 죽는다. 형량 낮추는 건 물 건너 간 것이다’는 것을 주입했고 ‘몸통’의 존재를 확인했거나 공 씨로부터 전달받은 일당이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고 작업에 착수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한 발 더 나아가 수사팀 일각에서는 강 씨 일당이 금전적인 보상이 아닌 다른 것을 약속받았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강 씨가 인터넷 등을 활용해 불법적으로 돈을 벌어온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강 씨는 매출이 없음에도 벤츠 승용차를 몰고 다니고 올해도 수차례 외국에 다녀오는 등 여유로운 생활을 해왔고 직원들 월급도 밀리지 않고 지급했다. 경찰은 강 씨가 도박사이트 운영 등 불법행위로 돈을 벌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는데 그가 자금에 구애받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즉 강 씨의 목적이 돈이 아닌 사업청탁이나 불법행위 무마 등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경찰 관계자는 “공 씨가 ‘의원실에 있으니 도박 사이트를 잘 봐주도록 해 대박 터지게 할 수 있다’고 호언했기에 강 씨가 공 씨에게 목을 매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사건 후 범인들의 행동에도 석연찮은 점이 많다고 판단하고 재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공 씨는 술자리에서 통화로 강 씨와 작업가능성을 타진한 후 박희태 의장의 전 비서 김 씨에게 “선관위 홈페이지를 한 번 때리삐까예(공격할까요)?”라며 범행의사를 밝혔지만 김 전 비서가 만류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파장이 커진 후에도 두 사람이 의원실이나 의장실 등 ‘윗선’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진위 여부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 종합해 봐도 공 씨가 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지시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리고 범행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계획됐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제대로 해볼 만하다’며 의욕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윗선’은 대체 누구일까. 일단 이번 사건의 키맨이 공 씨라는 것이 드러난 이상 최구식 의원 연루 의혹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야권은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인 최 의원이 나경원 후보 선거운동을 도운 점을 들며 당 차원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최 의원이 당 대표를 지낸 최병렬 전 의원의 조카인 데다가 이명박 BBK 사건의 무죄를 이끌어냈던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과 사촌지간이라는 것을 거론하며 더욱 ‘윗선’과 닿아있을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두고 검찰과 경찰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와중에 경찰이 현직 중수부장 사촌동생 연루 사건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준비된 사건’이라는 의혹이 팽배한 가운데 이제 남은 미스터리와 의혹들은 검찰의 몫으로 넘어가게 됐다. 특히 계획적인 디도스 공격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계좌 등 자금 흐름에 대한 심도 깊은 조사가 요구된다. 자금을 댄 쪽이 디도스 공격의 배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증 하나 찾지 못하고 숱한 의혹만 남긴 채 마무리된 경찰수사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는 가운데 공 씨에 대한 구속 만료기한인 오는 28일까지 결과물을 내놔야 하는 검찰 수사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청와대까지 번진 이번 사건의 ‘진짜 몸통’을 찾는 작업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백기 든 경찰…니들은?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가장 주력할 부분은 세간의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배후’를 어느 선까지 밝혀내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검찰은 이번 사건을 검경 수사권 조정안 정국에서 ‘비장의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철저하게 사건을 파헤칠 가능성이 있다. 공 씨 단독범행이라며 ‘백기’를 든 경찰과 달리 검찰이 구체적인 배후의 일단을 밝혀 낼 경우 수사권 조정의 힘겨루기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명분을 찾게 된다.
더구나 이번 사건이 굉장히 민감한 정치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검찰이 사건의 배후를 모두 캐낸 뒤 정권과 수사권 조정 등을 놓고 ‘딜’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검찰이 이상득 의원 보좌관을 전격 체포하는 등 권력실세들에 대한 칼을 들이대고 있다는 점도 이번 디도스 공격 사건 수사가 고강도로 진행될 것임을 예상케 한다. 반면 정권과의 사전 조율 하에 변죽만 울릴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특히 최구식 의원과 최재경 중수부장의 ‘혈육’ 관계는 검찰로서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윗선’ 의혹을 제대로 밝혀낼 경우 정치검찰과 떡검 등으로 체면을 구겼던 검찰이 명예를 회복하는 동시에 수사권 조정에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대하는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검찰이 구속된 피의자 4명에 대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이용 등에 관한 법률’보다 형량이 2배가량 무거운 정보통신기반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