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개인택시조합 17대 이사장 선거와 관련해 조합원들이 부정선거 의혹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혹자는 고작 서울시조합 이사장자리에서 계속 분란이 일어나는 이유를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충분히 수긍이 간다. 창설 44년을 자랑하는 서울시조합이 연간 5만 명 조합원으로부터 걷어 들이는 돈만 수백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사장에게는 고액의 연봉이 보장되고 있다. 또한 각종 이권에 개입할 소지가 적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탐내는 자리가 바로 조합 이사장직이다. 월 150만 원 벌이도 빠듯한 택시기사들로서는 일확천금의 기회나 다름없다.
부정선거 의혹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서울시조합을 둘러싼 사건의 내막을 취재했다.
기자는 12월 5일 서울시조합 사무실을 직접 찾았다. 사무실에는 선거현황판이 고스란히 걸려 있었고, 중년의 택시기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난상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 11월 24일, 이곳에서는 내년부터 4년 임기가 시작되는 새로운 임원들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치러졌다. 이번 선거를 통해 조합에서는 17대 이사장과 18개 각 지부의 지부장과 부지부장, 그리고 대위원 등 4개의 주요 임원직을 선출했다.
지난 6월 전직 이사장 차 아무개 씨가 금품수수 혐의로 물러난 터라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열기가 뜨거웠다. 투표율만 70%를 훌쩍 넘겼다. 특히 조합의 수장인 이사장 선출에 큰 관심이 모아졌다. 투표는 기사들의 편의를 위해 18개 지부 각각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산발적으로 진행됐다. 각각 투표소는 현지에서 개표한 후 결과를 회의록으로 작성해 본부로 송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투표 마감시간인 오후 5시를 기점으로 각 지부의 개표결과 회의록이 중앙 사무실로 속속 도착했다. 당시 선거전은 전직 관악지부장을 역임한 기존 세력 A 씨와 개혁성향의 평조합원 출신 B 씨 간의 박빙의 승부로 전개됐다. 개표 후반까지 양 후보 간 표 차이는 불과 몇 표에 불과했다. 그런데 관악지부 투표소에서 석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다른 투표소는 개표결과를 다 보내왔는데 유독 관악지부 투표소만은 결과를 보내지 않는 것이었다.
▲ 조합의 한 간부가 개표현황판 앞에서 종이 한 장을 허겁지겁 삼키고 있다. |
B 씨 캠프의 조합원들은 재빨리 C 씨를 힘으로 제압한 뒤, 삼킨 종이를 입 밖으로 꺼냈다. 종이는 완벽하게 복원되지는 않았지만 결과가 아직 송신되지 않는 관악지부 투표소의 득표 현황이 기재되어 있었다.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관악지부의 득표 결과를 그는 이미 유선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C 씨가 선거현황판 앞에서 종이를 삼킨 장면은 B 씨 캠프 조합원들에 의해 동영상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누가 봐도 수상쩍은 행동이었다.
이에 대해 C 씨는 차후 진술서를 통해 “통계를 내고 있었을 뿐이다. 절대 상황판을 고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다짜고짜 조합원 5~6명이 몰려와 조작을 하고 있다고 멱살을 잡고 넘어뜨렸다. 그들이 의심하기에 너무 화가 나서 종이를 입에 넣은 것이다. 절대 조작된 것이나 은폐한 것이 아니다. 너무 황당해서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그들이 동영상까지 촬영했다는데 이는 명백한 인권유린이다”라며 조작의혹을 적극 부인했다.
한바탕 소동이 벌여진 이후 뒤늦게 문제의 관악지부 투표소에서 결과를 보내왔다. 18개 지부 합산결과 B 씨가 A씨를 7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한 임원의 수상한 행적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개혁성향의 B 씨가 A 씨를 누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과 몇 분 후 관악지부에서 뜻밖의 문서 한 장이 더 도착한다. 결과번복이었다. 최초 보고 시 무효표가 12표였던 것과 달리 다시 계산해보니 무효표가 10표 늘어 22표가 됐다는 것이었다. 그 무효표는 우연치 않게 B 씨의 표에서 고스란히 빠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당선된 줄만 알았던 B 씨는 10표를 잃어 낙선됐다. 반대로 A 씨는 어부지리로 당선이 확정됐다.
B 씨의 강력한 요구로 다음날 재검표가 실시됐는데 이상한 일이 또 벌어진다. 문제의 관악지부 표를 중앙 사무실에 가져와 까보니 무효표 22표 중 10표가 모자랐다. 총 투표수에서 표 10장이 공중으로 증발된 것이다. 다른 17개 투표소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B 씨로서는 누군가 선거에 개입해 자신의 표를 빼돌렸을 것이라고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B 씨는 곧바로 더 이상의 재검표를 거부하고 선거무효를 주장했지만 선거를 주관한 조합 선관위 측은 재검을 강행했다. B 씨는 이에 반발해 개표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갔지만 선관위 측은 재검결과 A 씨가 당선됐다며 이사장 당선증을 발급했다.
기자와 만난 B 씨는 강력하게 반발하며 선관위 측에 이의를 신청한 상황이다. B 씨는 당선자 A 씨를 타깃으로 부정선거 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그는 “계속 개표결과 회의록을 보내지 않던 관악지부 개표 결과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무효표 12표가 22표가 됐고 반대로 내 표는 마이너스 10표가 됐다. 실제 사무실서 표를 까보니 무효표는 12표였다. 무효표 10표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냐. 조합 측은 투표자가 실수로 주머니에 용지를 가져간 것 같다고 하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내 표를 빼간 것 같다. 왜 유독 관악지부에서만 그런 일이 발생하느냐”라며 “기존세력인 임원 C 씨가 개표 전 관악지부의 개표결과를 적은 용지를 집어 삼킨 것도 수상하고 당선자 A 씨가 문제의 관악지부장 출신이라는 점도 수상하다. 부정한 선거개입이 있지 않았겠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B 씨는 A 씨의 금권선거 의혹도 함께 제기했다. 그는 “A 씨는 자신의 선거참모를 통해 일부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 특히 지부장 선거에 나가는 한 조합원에게는 참모를 통해 공탁금 500만 원을 제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조합의 선거관리규정에 따르면 금품제공이나 기부행위를 한 당선자는 무효처리 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고 덧붙였다.
선거캠프에 참가한 한 조합원은 이번 부정선거 의혹을 조합 내부사정과 연결 지어 설명했다. 그는 “조합 자체가 문제가 많다. 전직 이사장도 금품수수 혐의로 물러났다. 조합은 외부 회계감사도 없고, 조합 임원들은 자신의 친인척을 직원으로 앉히는 일도 많았다. 감시하는 시스템이 없으니까 일어난 일이다. 개혁성향의 B 씨는 부패한 전직 이사장을 고발한 장본인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조합을 개혁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 기존의 조합 인사들이 반발하고 조작한 게 아닌가 싶다”라며 “실제 투표과정도 수상했다. 개표작업을 하는 책상에 칸막이가 쳐져 있어서 참관인들이 개표과정을 볼 수도 없었다. 칸막이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참관인의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고 주장하며 조작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당선자 A 씨는 사실무근이라며 B 씨가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을 일축했다. A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B 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현재 B 씨가 제기한 의혹은 조합 선관위가 조사하고 있다. 모든 것은 선관위가 알아서 할 것이다. 또한 B 씨는 내가 참모를 통해 사람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하는데 이 일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는 그런 일을 시킨 적도 없으며 B 씨가 지목한 사람은 내 참모도 아니다. 나와 내 캠프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다. 또 돈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일전에도 나를 괴롭혀왔던 인물이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이번 선거전은 각종 의혹이 제기되는 등 과열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선거전이 치열한 공방전 속에서 내홍을 앓고 있는 배경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서울시 개인택시 조합원은 약 5만 명이다. 이들 조합원들은 매달 평균 10만 원씩 조합원 회비를 내고 있다. 어림잡아 연간 6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조합원비에는 조합 운영비와 상조회비, 복지회비가 포함된다. 조합 측에 문의결과, 10%가량의 일부 연체자들과 상조회비 및 복지회비 미가입자도 있다며 실질적인 연간 조합원비 공개를 꺼려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돈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조합은 충전소 5곳을 직접 운영하고 있고, 콜 시스템 등 택시사업과 관련한 각종 이권에도 개입되어 있다. 단순한 직능단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조합원 내부 인사에 따르면 이사장직에 당선되면 연봉이 1억 40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판공비 6000만 원을 더하면 이사장은 실질적으로 매년 2억 원씩을 가져가게 된다. 임기 4년간 8억 원이 보장된 셈이다. 웬만한 대기업 임원 뺨치는 수준이다. 한 달에 고작 실수익 150만 원 남짓한 돈을 쥐고 생활하는 택시기사에게는 꿈 같은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부정선거 의혹은 현재 조합 선관위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와 통화한 선관위 측 인사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다. 당선자 A 씨를 12월 5일 소환해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A 씨는 혐의에 대해 모두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뚜렷한 결론이 난 것이 아니니 좀 더 지켜봐 달라”라며 말을 아꼈다. 이의서를 제출한 B 씨는 조합 선관위 결과에 따라 법적대응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한 조합 선관위의 향후 결정에 서울시조합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조합 내홍 어제오늘일 아니네
그동안 개인택시조합은 각종 비리 문제로 얼룩져왔다. 서울시조합만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최근 부정선거 의혹으로 논란을 겪고 있는 서울시조합은 그 이전에도 이사장 비리로 얼룩진 바 있다. 지난 6월께 전직 이사장 차 아무개 씨(58)는 콜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2억 5000만 원을 수수하고 인사 청탁을 대가로 16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광주시조합은 조합비 이중지출과 횡령, 판공비 전용, 업무추진비 부당지출 의혹 등으로 경찰수사를 받으며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또 부산시조합은 지난 2009년 요금인상과 관련한 금품로비 의혹으로 내홍을 겪은 바 있다. 강원도조합도 서울시조합의 경우처럼 부정선거 의혹을 겪었다. 올해 초 강원도조합 당선자는 법정까지 가는 진흙탕 싸움 속에서 당선무효판결을 받았다.
기자와 만난 한 서울시 조합원은 “조합의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외부 감사 시스템이 전무하니 각종 비리로 얼룩질 수밖에 없다. 조합 내에서는 지금도 끊임없는 친인척 인사 청탁과 금품비리가 오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합 수뇌부들의 대우문제도 말이 많다. 이사장만 해도 억대 연봉을 받고 각 지부장들도 꽤 많은 연봉을 가져간다. 요즘은 전산화가 워낙 잘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많은 지부가 필요 없는데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의 돈만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조직개편과 같은 개혁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