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태우 전 대통령과 외아들 재헌 씨(작은 사진). |
노 전 대통령은 여전히 추징금 300억여 원을 갚지 못한 상태다. 아들 내외 이혼 송사로 꼭꼭 감춰 둔 판도라 상자가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노재헌 부부가 이혼송사를 벌이고 있는 자세한 내막과 생각지 못한 집안싸움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노 전 대통령의 복잡한 사정을 들여다봤다.
최근 이혼송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와 신동방그룹 신명수 전 회장(71)의 장녀 정화 씨는 지난 1990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부부 모두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로 각각 경영학과 기악을 전공했다. 부인 신 씨는 결혼 전 하프 연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은 당시 정계와 재계의 만남이라는 화제를 모으며 청와대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노 씨는 신 씨와 결혼 이후 1991년 박준규 당시 국회의장 비서로 잠깐 활동한 바 있지만 그 뒤에는 줄곧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비서 일을 그만둔 뒤 그는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 로스쿨에서 수학했다. 이후 그는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미국 로펌 ‘화이트 앤드 케이스’ 홍콩지사 등에서 국제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신 씨 역시 남편을 따라 홍콩 등 해외를 돌아다니며 함께 생활했다. 부부는 결혼 생활 동안 현재 하버드대에 재학 중인 장녀와 각각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을 둔 것으로 전해진다.
그들의 부부생활에 위기가 닥친 것은 지난해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 씨는 노 씨가 외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신 씨는 남편에게 외도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지만 이에 노 씨가 응하지 않아 이혼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신 씨는 지난 3월 31일, 홍콩 법원에서 노 씨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 분할과 세 자녀에 대한 양육권 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신 씨 측은 양가와 아이들 때문에 한국법원을 피해 홍콩법원에서 소송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씨가 낸 이혼소송 서류는 4월께 노 씨에게 송달됐다. 1차 재판은 9월 30일에 열렸으며 12월 15일에 2차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그런데 홍콩서 이혼소송을 당한 노 씨는 도리어 지난 10월 17일, 서울가정법원에 신 씨를 상대로 이혼과 자녀 양육권, 위자료 1억 원을 요구하는 별도의 소송을 냈다. 홍콩에서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 한국에서 또 다시 소송을 낸 것이다. 또한 노 씨는 신 씨의 외도상대라며 재미교포 A 씨에 대해서도 함께 소송을 제기했다. 노 씨 부부의 이혼송사가 상대의 외도를 이유로 2개국에서 각각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노 씨는 왜 굳이 한국에서 다시 소송을 낸 것일까. 여기에는 아버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신 씨 측 인사는 국내모 언론과의 접촉을 통해 “노 씨가 재산 숨기기에 급급했다. 홍콩법원에서 노 씨와 신 씨의 재산공개를 명령했지만 신 씨밖에 재산공개에 응하지 않았다. 재산분할 심사 시 홍콩에서는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었다. 노 씨는 재산 공개를 피하기 위한 술책으로 한국 법원을 택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한 법조계 인사 역시 “나라마다 이혼재판 절차는 상이하다. 소송 당사자의 거주지와 국적 여부에 따라 양국에서 제기되는 경우가 꽤 있다. 소송 당사자들은 제각기 자신에게 법리가 유리한 곳에서 송사를 걸게 된다. 특히 재산분할이 걸려있을 경우 복잡하게 얽히기 때문에 2개국 송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노 씨의 재산에는 의혹만 무성했던 아버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상당부분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벌써부터 아들 내외의 집안싸움으로 비자금 판도라상자가 열릴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시금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노 전 대통령은 오랜 기간 폐렴과 천식으로 투병 중이다. 현재 병원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할 정도로 위독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애증의 벗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위독설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추징금 300억 원가량을 여전히 납부하지 않고 있다.
급박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번 아들 내외의 이혼소송은 그야말로 악재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 씨의 아버지 신 전 회장은 예전부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자로 지목받아왔다. 실제로 지난 1999년 법원은 신 전 회장에게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비자금 230억 원을 국가에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또한 신 전 회장은 사위 노 씨에게 뉴욕 부동산들을 헐값에 넘긴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후에도 신 전 회장과 관련한 비자금 의혹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신 전 회장과 노 씨 측은 관련설을 적극 부인해 왔다.
노 씨의 맞소송에 대해 신 씨 측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신 씨 측의 한 인사는 “노 씨가 재미교포 A 씨를 함께 걸고 넘어진 것은 자신의 불륜을 감추기 위한 모함이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 씨는 노 씨를 상대로 부동산과비상장 주식 등에 대한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현재 법원은 신 씨의 신청을 받아들인 상황이다. 이에 대해 노 씨는 신 씨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이의신청과 함께 재산분할 소송을 정식으로 다룰 것을 요청하는 제소명령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기 몸 챙기기에도 힘겨운 노 전 대통령의 마음 속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이유다.
비자금 판도라상자 공개 여부와 맞물려 노 씨 부부의 이혼송사 추이에 세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