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왓챠 등 국내 OTT ‘예민’ 넷플릭스 등 해외 OTT는 ‘관망’…구독경제 서비스 사회적 논의와 규정 필요
페이센스는 지난 5월부터 넷플릭스‧웨이브‧티빙‧왓챠‧디즈니플러스‧라프텔 등 OTT의 1일 이용권을 판매해왔다. 페이센스는 OTT 서비스의 프리미엄 계정을 구독하고, 페이센스 회원들에게 400~600원을 받고 재판매했다. 국내 OTT 업체들은 계정 재판매는 이용약관 위반이라며 반발했다. 급기야 토종 OTT 3사는 페이센스 서비스가 부정경쟁방지법, 정보통신망법, 저작권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내용증명을 보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서비스 중단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일단 페이센스는 국내 OTT 서비스를 중단하며 한발 물러섰다. 송홍석 페이센스 대표는 “작은 스타트업 입장에서 대기업 집단이 거는 소송에 대한 부담감이 커서 일단 서비스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의 내용에 따라 추후 사업 방향을 확정짓는다는 것이 송홍석 대표의 입장이다. 그는 “우리 의견은 (국내 OTT 업체들에) 충분히 전달했다. 추후 어떤 얘기가 오가느냐에 따라 (서비스 중단 및 재개가) 결정될 듯하다. 우리는 OTT 업체에 기생하려는 게 아니라, 시장의 파이를 키우려고 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피해로 돌아가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생존경쟁 돌입한 국내 토종 OTT의 불안함
국내 OTT 기업들의 가처분 소송 취하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당분간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웨이브 관계자는 “(가처분 취하 여부는) 확정된 바 없고,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인 상황이다. 페이센스가 협의해 나갈 내용을 정식으로 제안한 건 아니다. 또 아직 페이센스가 넷플릭스 등 외국 OTT 콘텐츠를 제공하고는 있기 때문에 (국내 OTT 서비스를 중단했다고 해도) 협의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을 듯하다. 업계 전반적으로 페이센스와 비슷한 사례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토종 OTT 업체 관계자는 “외국 OTT 콘텐츠만 제공할 경우 국내 OTT 업체에 직접적으로 타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페이센스 서비스 모델은 콘텐츠의 가치를 떨어뜨려 산업 성장을 저해한다. 개별 구매 콘텐츠에 대한 합당한 금액이 분명 존재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OTT 업체들이 제공하는 월정액 서비스 금액을 시간 단위로 나눠 재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독 국내 토종 OTT 업체 입장에서는 페이센스를 모르는 척 넘어갈 상황이 아니다. 지난 7월 31일 시장분석기업 모바일인덱스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넷플릭스‧웨이브‧티빙‧쿠팡플레이‧디즈니플러스‧시즌‧왓챠 등 국내 OTT 업체의 국내 구독자 수는 1월 3026만 명에서 4월 2686만 명으로 줄었다. 특히 국내 토종 OTT 기업들의 타격이 더욱 심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해 웨이브, 티빙, 왓챠는 각각 558억 원, 762억 원, 248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최근 왓챠를 둘러싸고는 매각설까지 불거졌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은 “현재 OTT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평균 2.7개의 계정을 갖고 있다. 즉 OTT 업체 중 2~3개 정도가 살아남는다는 얘기다. 가장 구독자가 많은 넷플릭스를 제외하면 토종 OTT 중 한 군데 정도만 구독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국내 OTT 업체들은 콘텐츠 제작에 돈을 쏟아부으며 덩치를 불려왔지만 지금은 늪에 빠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콘텐츠 질에 맞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가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측은 페이센스 서비스에 대해 아직은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현재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는 상황을 인지하고 내용을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센스 서비스는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이용약관 위반이기도 하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1위 사업자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고 지난해 11월에 국내 출시된 디즈니플러스는 구독자를 늘리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외국 OTT 업체들은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 스타트업을 막는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페이센스 서비스 논란과 관련해 적지 않은 소비자가 현재 OTT 서비스에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용약관 위반 및 위법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1만 원 정도를 주고 OTT를 보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한다는 현상은 입증됐다는 것이다.
송홍석 페이센스 대표는 “계정 결제 비용 등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중간에서 콘텐츠와 수익을 가로채는 업체처럼 보여 아쉽다”며 “콘텐츠 산업이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결국 콘텐츠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면에서 1일 이용권이 소비자들에게 큰 매력이 있다고 본다. 소비자들이 좋은 콘텐츠를 지속해서 시청하려면 당연히 구독할 것이기에, 협업해서 상생할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소비자들이 한 군데서 종합적으로 콘텐츠를 쇼핑할 수 있도록, 페이센스 같은 모델이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편 구독경제 서비스에 대한 입법과 사회적 논의의 과정이 선제적으로 이뤄졌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페이센스 서비스가 국내 OTT 업체들이 주장하는 대로 부정경쟁방지법, 정보통신망법, 저작권법 위반인지는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전호겸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은 “페이센스와 국내 OTT 기업의 갈등으로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들이다. 사회적 비용도 낭비되고 있다. 구독경제 세상이 오면서 이용권 쪼개기, 계정 공유 서비스는 진작 생겨났는데 여전히 명확한 규정이 없다. 관련 지침이라도 있었으면 사업을 하려는 스타트업도 참고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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