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준강간치사 혐의로 검찰 송치…검찰 ‘미필적 고의’ 적용 살인 혐의 기소, 자칫 ‘무죄’ 가능성도
사건은 7월 15일 새벽 시간 인천시 미추홀구 소재의 인하대 캠퍼스 내 5층짜리 단과대 건물에서 발생했다. 가해자인 남학생 A 씨는 여학생 B 씨를 성폭행했고 그 과정에서 B 씨가 2층과 3층 사이 창문에서 8m 아래 길가로 추락했다. 이후 B 씨는 1시간 30분 정도 홀로 건물 앞 길가에서 피를 흘리며 방치돼 있었다. 행인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지긴 했지만 결국 3시간 뒤 사망했다. A 씨는 추락한 B 씨를 구조하지 않고 B 씨의 옷가지 등을 다른 장소에 버린 뒤 자취방으로 도주했고, 이날 오후 경찰에 체포됐다.
기본적으로 A 씨가 B 씨를 성폭행했고, 그 과정에서 B 씨가 사망한 부분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경찰은 B 씨의 사망에 대해 ‘준강간의 죄를 범한 A 씨가 B 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봤고, 검찰은 ‘준강간의 죄를 범한 A 씨가 B 씨를 살해한 것’으로 봤다.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는 살인의 고의성은 없다고 판단해 치사죄가 적용되며 ‘살해한 행위’는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돼 살인죄가 적용된다.
한편 ‘준강간’은 형법 제299조에 규정돼 있는데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죄를 의미한다. 경찰과 검찰은 모두 당시 B 씨가 의식이 없어 자기보호 능력이 완전히 결여된 상태로 봐 준강간 혐의를 적용했다.
7월 22일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은 인천지검은 3개 검사실로 구성된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보강 수사에 돌입했다. 경찰 수사 결과, 부검감정 결과, 법의학 감정 결과 등을 바탕으로 2회에 걸친 사건현장 조사를 진행했는데 이 가운데 한 번은 법의학자도 참여했다. 또한 CC(폐쇄회로)TV 영상을 분석하고 A 씨 휴대폰 동영상 음성파일에 대한 음질개선 분석도 했다. 여기에 범행장소 출입자 전수조사 과정에서 블랙박스 영상도 추가로 확보했다. A 씨의 구속 기간까지 한 차례 연장하며 보강수사를 진행해 결국 준강간치사가 아닌 강간 등 살인 혐의로 기소가 이뤄졌다.
이 두 가지 범죄에 대한 처벌은 형법 제301조의2(강간 등 살인·치사)와 성폭력처벌법 제9조(강간 등 살인·치사) 등에 규정돼 있다. 우선 제301조의2는 ‘준강간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살해한 때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며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은 제301조의2의 준강간치사 혐의(사망에 이르게 한 때)를 적용했다.
반면 검찰은 치사가 아닌 살인으로 봤다. 준강간의 죄를 범한 자가 살해한 경우는 제301조의2(강간 등 살인·치사)와 성폭력처벌법 제9조(강간 등 살인·치사)에 모두 처벌 규정이 있다. 준강간 등의 죄를 범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해한 때에 대해 형법과 성폭력처벌법에서 동일하게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A 씨가 B 씨를 성폭행했고 그 과정에서 B 씨가 사망한 사실 자체는 동일한데 어떤 혐의가 적용되느냐에 따라 처벌 수위는 크게 달라진다. 우선 경찰이 적용한 ‘준강간치사’ 혐의로 유죄를 받으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는다. 상당히 높은 형량이지만 검찰이 적용한 ‘강간 등 살인’ 혐의로 유죄를 받으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다. ‘준강간치사’에서 가장 높은 형량이 무기징역이라면 ‘강간 등 살인’에선 가장 낮은 형량이 무기징역인 셈이다.
경찰과 검찰이 각기 다른 혐의를 적용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검찰이 전담수사팀까지 꾸려 강도 높은 보강수사를 벌였지만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 혐의가 바뀐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대신 A 씨의 범죄에 대한 두 수사기관의 판단이 달랐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B 씨가 건물에서 추락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고의로 밀지는 않았다”는 A 씨의 진술에 따라 살인이 아닌 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A 씨에게 살인의 고의성까지는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검찰은 A 씨에게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미필적 고의’는 특정 행동을 함으로써 어떠한 결과가 반드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생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 때, 그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심리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A 씨가 B 씨를 반드시 살인하겠다는 ‘확정적 고의’는 없었을지라도 B 씨가 살해될 가능성을 인지하고, 살해돼도 상관없다는 심리로 행동한 것으로 판단했다.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제13조 규정에 따라 고의가 인정되지 않으면 처벌이 불가한데 검찰은 ‘확정적 고의’는 없었을지라도 ‘미필적 고의’가 있어 살인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조계에선 이번 검찰의 성폭력처벌법 상 ‘강간 등 살인’ 혐의 기소가 다소 무리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기존 판례를 통해 볼 때 한국 법원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 유죄를 판결하는 데 다소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치사’로 기소했다면 무난하게 유죄 판결이 나올 수 있는데 무리해서 ‘살인’으로 기소했다가 법원에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지 않으면 자칫 무죄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초동의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주의적 공소사실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강간 등 살인’ 혐의로 가면서 예비적 공소사실로는 준강간치사 혐의를 추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편 검찰은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반포 혐의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A 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해서 분석해 본 결과 동영상 촬영 자체는 인정되지만 피해자의 신체를 촬영하려 했다고 볼 수 있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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