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주점 손님이 건넨 ‘마약 탄 술’ 종업원들 곤혹…동호회·지인모임서 ‘마약 탄 물·커피’까지 적발
#“문 열자 팔에 주사기 꽂은 손님이…”
7월 5일 서울 강남의 한 유흥주점에서 마약이 들어간 술을 마신 30대 여성 종업원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유족은 피해자가 술 게임에서 져 마약이 섞인 술을 연달아 마셨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피해자와 동석한 손님 A 씨는 종업원이 숨지기 2시간 전인 오전 8시 30분쯤 주점 인근 공원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숨진 A 씨의 차량에서는 2100여 명 분량의 필로폰 64g이 나왔다.
경찰은 7월 27일 A 씨에게 마약을 건넨 공급책 등 마약사범 6명을 검거했으며 현장에서 5100명 분량의 마약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A 씨가 사망한 만큼 A 씨의 혐의가 소명되어도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 될 예정이다. 당시 술자리에 동석했던 손님 3명과 종업원 1명은 소변 검사, 모발 검사에서 모두 마약 음성 반응을 보였다. 현재 경찰은 이들이 실제 투약 과정에 관여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번 사건의 문제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마약 투약이라는 점이다. 투약 의사가 없던 피해자는 손님의 강요로 마약이 섞인 술을 마셔야 했다. 유흥주점 내에서 마약 투약과 권유는 어쩌다 한 번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종사자 B 씨는 가게에서 마약을 하는 손님을 보는 것도, 종업원이 권유를 받는 것도 크게 놀랍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3년 전쯤 알고 지내던 동생이 방에 들어가자마자 팔에 주사기를 꽂은 손님을 본 뒤로 무서워서 일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아진 것 같다. 마약 하는 사람들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느낌이 온다. 그런데 가게는 안 도와준다. 알면서도 계속 그런 손님들을 받는다”고 말했다.
거절은 종업원의 몫이라고 했다. 그는 “담당 직원이나 사장한테 ‘저 방 들어가기 싫다’고 하면 ‘메이드(손님이 접대 종업원을 선택하는 행위)됐으니까 일단 들어갔다가 권유하면 그때 말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냐. 손님이랑 싸우는 것도 무섭고 단체로 권유하면 심리적 압박감도 엄청나다. 그렇다고 냉정하게 딱 잘라 거절하면 마인드(태도)가 별로라고 소문이 나 일하기도 힘들다. 최대한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을 하는 것도 곤혹스럽다”고 했다.
또 다른 종업원 C 씨는 “이번 사건이 벌어진 곳이 어디냐면 업계에서 유명한 D 업소다. 장사 잘되고 이름 있는 곳인데 여기서도 종업원 보호를 안 해줘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워낙 화제가 된 사건이라 업계 단체 채팅방에 이번 사건에 연루된 손님 무리의 연락처가 올라오긴 했으나 사장들이 할 수 있는 건 ‘블랙리스트’에 올리거나 주의·경고뿐이었다. 강력하게 받지 말라는 말은 없었다”고 불안함을 드러냈다.
#이제는 지인도 못 믿는다?
지인모임과 동호회에서 마약 탄 물을 건네는 사례도 생겼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8월 4일 같은 동호회 회원에게 마약을 탄 물을 건넨 50대 남성을 구속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가해자는 7월 31일 야구 동호회 모임을 마친 뒤 동호회 회원인 피해자와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단백질 파우더를 섞은 물”이라며 마약 탄 물을 마시게 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는 동공 확장 등 마약 투약 시 발생하는 증상을 느끼고 곧바로 차에서 내려 119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0년 지기 친구에게 내기 골프를 하자고 제안한 뒤 약을 탄 커피를 마시게 해 5500여만 원을 뜯어낸 일당도 최근 검찰에 넘겨졌다. 전북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 따르면 가해자 일당은 4월 8일 익산의 한 18홀 골프장에서 피해자에게 로라제팜 성분이 든 향정신성의약품을 커피에 미리 타 마시게 하고 내기 골프를 치게 한 뒤 5500여만 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 결과, 충청 지역 폭력 조직원인 가해자는 10년 지기 친구인 피해자에게 “한 타당 30만 원씩 판돈을 걸고 내기 골프를 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장 경찰들은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반적인 마약 사건의 경우 신고를 통한 검거를 기대하기 힘들고, 이번 사건처럼 피해자가 존재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적발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 현직 경찰관은 “강요로 인한 투약이었다고 해도 종업원도 양성 반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직접 신고가 들어오는 일은 많지 않아 현장 검거가 어렵다. 그나마 ‘과거에 그런 적이 있었다’는 제보가 간혹 들어와 제보를 토대로 위장 수사를 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사관이 직접 판매책이나 구매자로 위장해 검거에 나서 마약사범을 잡아 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쉽지 않다. 이마저도 단순히 마약 투약의 기회를 제공한 것에 불과한지, 아니면 마약을 할 생각이 없던 자를 부추겨서 범죄를 하게 한 것인지에 따라 위법 여부가 갈리는 까닭이다.
이에 대해 정보과에 근무했던 전직 경찰관은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결국 마약수사는 경찰이 짜놓은 판에 그들이 들어오게 하거나 우리가 그들의 정보를 받는 것뿐이다. 위에서 마약사범을 잡으라고 하니 잡기는 해야 하는데, 어떻게 검거해야 적법한지는 불명확하다. 결국 합법의 영역을 스스로가 판단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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