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 29세의 김정은이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66년 철권통치를 이어받는다. 전대미문의 3대 세습체제를 그가 어떻게 이어갈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
전대미문의 3대 세습체제를 이어갈 북한 최고 지도자로 급부상한 김정은이 어떤 인물인지 조명해봤다.
지난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의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 측근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소문만 무성했던 후계자 김정은이었다. 조부 김일성 주석을 쏙 빼닮은 외모에 마치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긴장한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범상치 않은 등장에 전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김정은은 당시 당대표자회의를 통해 신설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중앙위원회 위원에 올랐으며 첫 등장부터 단박에 인민군 대장칭호를 수여받았다.
지난 12월 19일 조선중앙TV는 김 위원장의 사망을 공식화했고, 다음 날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 위원장의 시신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처음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은 누워있는 부친 앞에서 조용히 흐느끼며 조심스레 움직였다. 이 장면은 1994년 김 위원장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시신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결국 12월 20일 행보는 김정은이 자신의 시대가 이미 시작됐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전 세계의 이목도 김정은에게 쏠리고 있다. 29세 나이에 권좌에 오른 김정은은 사실 누가 봐도 천둥벌거숭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부친 김 위원장의 경우 권좌에 오르기 20년 전인 지난 1974년 후계자로 낙점됐다. 20년 간 천천히 후계자 수업을 받으며 자신의 시스템을 차근차근 구축해왔다. 이와 달리 김정은이 후계자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불과 2~3년 안팎이다. 66년간 이어온 철권통치의 미래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은 김정은의 미숙한 경험에서 기인한다.
▲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10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 위원장과 김정은의 함흥시 2·8비날론연합기업소 시찰 모습. 연합뉴스 |
겐지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김정은의 강한 면모를 자세히 묘사했다. 김정은이 8~9세 때 형 정철과 구슬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정철이 실수로 구슬을 놓쳐 자신의 뜻대로 안되자 형 얼굴에 구슬을 던진 일화가 있었다. 형 정철은 이때부터 동생 김정은에게 대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고모 김경희가 어린 정은에게 ‘작은 대장’이라고 말하자 김정은이 “내가 아직 유치원생인 줄 알아?”라고 쏘아붙였다는 일화도 있다. 이후 김경희는 어린 정은에게 ‘작은’ 자를 빼고 ‘대장 동지’로 칭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10대 때 농구시합을 자주 했는데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팀원들을 불러 무섭게 꾸짖어 경기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는 일화도 있다. 당시 김정은은 함께 경기를 하던 겐지에게 “역시 화를 낼 때는 화를 내야 한다”라고 말해 겐지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가 갖고 있는 강한 승부욕과 당돌한 리더십을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동거녀였던 성혜림에게서 난 김정남은 엄연히 따지면 수령 정통성과는 거리가 먼 사생아이기 때문에 후계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또 어린 동생에게 대꾸하지 못할 정도로 유순하고 여성스럽기까지 한 차남 김정철은 지도자감으로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자신을 가장 많이 빼닮고 강한 기질에 리더십까지 갖춘 3남 김정은 카드의 선택은 일면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김정은은 선대의 선군정치를 받들 수 있는 호전형 인물이라는 평가도 많다. 그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군사학을 수학했다. 특히 포술을 전공했는데 지난 2010년 11월 발생한 연평도 포격사건에 김정은이 개입됐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된 바 있다. 김정은의 전공이 포술이라는 점과 당시 작전을 주도했던 김격식 4군단장이 김정은의 측근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자신의 리더십을 대내외에 과시하고자 했던 의도라는 설명이다.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에 따르면 최근 김 군단장은 김정은의 군사보좌관으로 승격됐다고 한다.
김정은의 결혼 여부는 아직까지 명확치는 않다. 다만 지난 10월 일부 대북매체들은 김정은이 이미 두 살 연하의 여성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의 부인은 교수 아버지와 의사 어머니를 둔 박사과정의 재원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시신공개 당시 김정은 뒤에 있는 여성은 동생 김여정으로 알려졌으나 김정은의 부인이라는 설도 있다.
현재 김정은이 갖고 있는 최대 약점은 적은 나이와 함께 자신이 보여준 성과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연평도 포격사건 외에 김정은이 직접 개입했다고 추측되는 ‘평양 10만호 건설사업’도 제대로 성과가 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성과는 아직까지 미천하기 그지없다. 후계자 낙점 이후 시간이 워낙 없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열악한 북한 내부사정과도 무관치 않다.
따라서 북한의 새 지도자인 김정은이 어떤 지도력을 보여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아버지가 물려준 권좌의 향방은 이제 오로지 그의 손에 달려 있다.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그의 지도력과 향후 행보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김정각·리영호 ‘충성경쟁’ 견제장치 마련
▲ 이윤걸 NKSIS 대표 |
북한의 권력구조는 크게 당·정·군으로 나뉜다. 일반적인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 실권은 ‘당’이 쥐고 있다. ‘정부’가 실권을 행사하는 국내 사정과는 그 구조가 다르다. 물론 여러 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북한은 오래전부터 ‘선군정치’라는 기치 아래 ‘군’이 ‘당’을 앞서는 형국을 유지해왔다. 일반적인 사회주의 국가와도 다른 것이다.
기자와 만난 이윤걸 대표는 이러한 권력구도는 김정은 시대에도 유효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때문에 그는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65)과 함께 리영호 총참모장(69)과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70)을 권력의 3인방으로 꼽았다.
우선 장 부장의 경우 김정일 사망 이후 당과 내각의 모든 업무를 주관하고 있는 형국이다. 장 부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65)의 남편이다. 김정은에게는 고모부에 해당한다. 일각에서는 장 부장의 섭정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분명 장 부장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맞다. 이 모든 힘은 부인 김경희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섭정’의 수준은 아닐 것이다. 김정은에 대한 ‘자문’ 수준으로 봐야 할 것이다”고 전망하며 장 부장의 역할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었다.
북한 내에서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군내에서는 리 총참모장과 김 국장 등이 꼽히고 있다. 리 총참모장은 지난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의 당시 자타공인 최고의 스타였다. 당시 그는 차수로 진급하면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다. 또한 김정은과 함께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절대적인 지위도 획득했다.
현재 군내에서 총정치국장 역할을 맡고 있는 김 국장은 리 총참모장과 함께 자웅을 겨루는 위치에 있다. 총정치국은 군내 모든 사항을 보고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김정은의 군부장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가 도래하면서 김 국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 것이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군내에서는 리영호와 김정각이 주요 권력구도를 이루며 김정은을 보좌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둘은 상호 견제하는 위치에 놓여있다. 김 위원장이 생전에 마련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 내에는 실세 최룡해 당 비서(62)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 비서는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았으며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 당 중앙위원 등의 직함을 갖고 있다. 그는 김일성 주석의 항일빨치산 동료인 최현의 차남으로 유명하다. 김 위원장에게 유일하게 직언을 했던 실세로 통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최룡해는 분명 당의 핵심이다. 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사실상 이끌 중심이 될 것이며 향후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러한 수뇌부 주요인사들 외에도 김정은의 독자적인 세력화 가능성도 농후하다. 어찌됐건 현재 권력구도를 이루고 있는 세력은 부친 김 위원장이 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최소 5년 내외로 김정은의 독자적인 세력이 등장할 것이다. 진짜 김정은의 사람이 등장한다는 뜻이다. 그 사람들 상당수는 김정은 등장 이후 신설된 당중앙군사위원회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예전 김 위원장이 국방위원회를 설치해 사람들을 배치했던 것과 마찬가지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집단지도체제 등장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이 대표는 이에 대해 생각을 달리 했다. 그는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은 없다. 어찌됐건 김정은 원톱체제로 갈 것이다. 북한에서 수령과 일반인은 차이가 있다. 결단은 아무나 내리지 않는다. 원톱에 앞서 말한 3인방이 보좌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권력이 무너진 몇몇 중동국가들과 북한은 엄연히 다르다”라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