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과 함께 이른바 ‘로열패밀리’로 불리는 김정일 일가의 차후 권력세습 구도가 주목받고 있다. 현재 김 위원장의 삼남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28)이 이복형 김정남(40)을 제치고 공식 후계자로 낙점된 상태다. 이 과정에서 차남 김정철(30)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후계구도에서 빠졌고, ‘김정남 암살설’이 나도는 등 권력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잡음이 끊이질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의 고모이자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64)와 그의 남편이자 북한 내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64)이 실권을 장악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김 위원장의 마지막 부인이었던 김옥(47)까지 영향력을 과시하며 김정일 로열패밀리 전체가 후계 구도에 얽혀있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일 로열패밀리가 주축이 돼 20대 후반의 어린 김정은을 후방지원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김정일 사망 후 펼쳐질 로열패밀리와 권력세습의 상관관계를 살펴봤다.
김정일 일가는 그동안 부자세습, 친족통치를 통해 북한을 장악해 왔기 때문에 부자세습 원칙상 둘째 부인 성혜림의 아들이자 장남 김정남이 권력을 물려받는 것이 당연했다. 실제로 김정일의 처(성혜림)조카인 이한영이 쓴 저서 <김정일 로얄패밀리>에는 김정남이 어린 시절 김정일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으로 묘사됐다. 그 일례로 어린 시절의 김정남을 측근에서 보필했던 이 씨는 “김정일은 김정남의 생일 때마다 세계 각지에서 100만 달러 어치의 선물을 사줬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이렇듯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던 김정남은 1990년대 후반 고위층 자녀들에게 “내가 후계자가 되면 개혁·개방을 하겠다”고 말한 것이 알려진 후 김 위원장의 눈 밖에 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결정적으로 김정남은 2001년 5월 일본의 디즈니랜드를 가보고 싶어 하는 아들 한솔을 위해 도미니카 위조 여권을 들고 일본 입국을 시도하다 추방된 뒤 후계자 순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김정남은 2009년 이후 사업을 명목으로 마카오·홍콩·베이징 등지에서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후계자 1순위가 사라진 후 새로운 카드로 떠오른 것은 김 위원장의 셋째 부인 고영희의 아들이자 차남인 김정철이었다. 김정철은 김정남에게는 이복동생이다. 하지만 김정철은 여성호르몬 과다분비증이라는 신체적 약점에 성격이 유약해서 후계구도에서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평소 김정철은 유명 팝가수 애릭 클랩턴의 공연을 보거나 NBA 경기를 즐기는 등 서구문화 마니아로 정치·권력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후계자로 낙점된 것이 바로 고영희의 둘째 아들이자 삼남인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지난 2009년 1월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은은 2010년 9월,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지위를 공식화하며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시작했다. 후계자로 낙점된 뒤 김정은이 가장 먼저 실행한 것은 바로 ‘가지치기’였다.
실제로 김정은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형제를 상대로 ‘피’를 부르는 야욕을 숨김없이 보여 왔다. 2004년 11월에는 김정은이 노동당 작전부 공작원들을 동원해 오스트리아에서 김정남을 살해하려 했다는 소문이 나도는 등 김정은이 김정남을 수차례 암살을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2009년 4월초에는 ‘평양판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우암각 습격사건’이 발생했다. 김정은이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을 동원해 김정남의 평양 체류 시 은거지인 평양 중구역의 우암각을 습격한 것이다. 김정은은 우암각 관리인들을 통해 김정남이 주최한 파티의 참석자를 알아내고 김정남의 측근들을 파악하는 등 북한 내 김정남의 권력 기반을 허물어버리려는 의도였다. 또 김정은은 2009년 4월말에도 마카오에 머물던 김정남을 암살하기 위해 자객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정남은 측근의 첩보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싱가포르로 피신하며 “어린놈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며 분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의 ‘김정남 암살설’은 최근 북한 노동당 고위관계자들의 잇따른 의문의 죽음으로 점철됐다. 2010년 4월부터 2011년 1월 사이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한 이용철, 이제강, 박정순 등 노동당 실세들도 김정은에게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2010년 4월 사망한 이용철은 심장마비, 그의 후임인 이제강은 두 달 뒤 교통사고로 숨졌다. 이용철과 이제강은 장남인 김정남을 후계자로 밀었던 인물로 알려졌다.
김정일 로얄패밀리 중 황태자들의 암투 못지않게 주목되고 있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일의 마지막 부인인 김옥이다.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당시 비상정국을 수습한 인물이 바로 장성택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후계구도에서 그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향후 장성택이 실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지만 사실상 고모인 김경희가 김정은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장성택은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로열패밀리의 이 같은 움직임은 김 씨 일가가 고수해온 친족통치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대북 전문가는 “김정일이 사망 전 김경희에게 ‘대장’ 칭호를 부여하고 김정은을 맡긴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김일성 가문을 의미하는 ‘백두산 혈통’이 후계자 김정은을 전폭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한때 김정은의 친모설이 나돌았던 김옥 역시 김정은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옥은 김 위원장의 다섯 번째 부인으로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모친이 고영희가 아닌 김옥이라는 설이 나돈 바 있다. 김옥은 고영희가 보모로 데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전부터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다는 말도 있기 때문에 전혀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다. 김옥은 2009년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김정일과 면담했을 때도 배석하며 늘 김정일 곁을 지켰던 인물로 실세 중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결과적으로 김정일 사망 이후에도 김정남, 김정철 두 형들은 해외망명설이 떠도는 등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그런가하면 김정은은 김 위원장의 장례위원장을 맡으면서 그의 권력승계가 기정사실로 굳어가는 형국이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