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주리를 트는 장면. 그러나 주리 틀기는 조선 후기 고문으로 세종대왕 때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의 연출로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사진제공=SBS |
최근 출간된 <네 죄를 고하여라>에는 조선시대 법률과 형벌에 관한 지식이 집약돼 있다. 저자인 심재우 씨는 “주리 틀기는 조선 후기에나 시작된 고문이기에 조선 초기 사극에서 사용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연출이다”라고 밝혔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소이(신세경)가 의금부에 끌려가 주리를 트는 고문을 받는 것은 잘못된 연출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철저한 고증 없이 이루어지는 조선시대 형벌과 법집행 장면에 관해 우려의 목소리를 담았다.
조선시대 형벌은 중국 명나라 기본 법전인 <대명률>에 기초해 크게 다섯 가지 형(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으로 나눠진다. 태형과 장형은 누워서 회초리를 맞는 것이다. 여자의 경우 홑옷을 입은 채로 매를 맞았으나 남자는 아랫도리를 모두 벗은 채 볼기를 맞았다.
사극의 단골메뉴로도 자주 등장하는 곤장은 조선시대에 널리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실제는 조선 후기에 와서야 사용된 형구다. 삼국시대나 조선 초 배경의 사극에 곤장을 치는 장면을 등장시키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곤장은 중국에서도 사용된 적이 없는 독특한 형구였으며 실제 곤장 집행 장면은 눈뜨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 곤장을 맞은 뒤 회복하기까지는 거의 한 달이 걸렸다고 한다.
곤장과 함께 머리에 차는 칼 역시 친숙한 형구일 것이다. <춘향전>의 춘향이를 떠올릴 때 십중팔구는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한 죄로 칼을 찬 모습을 떠올린다. 이 역시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심 씨는 “적어도 영조 때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여자들에게 칼을 채우지 않았다. 물론 사랑에 눈이 먼 변학도에게 규정 따위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시대 고문 장면 중 또 다른 단골 장면은 불에 달군 쇠붙이로 피부를 지져 고문하는 낙형이다. 낙형은 주인공의 죄를 자백시키는 장면에 사용되는데 주로 허벅지나 복근을 지져 연출을 극대화시킨다. 그러나 실제는 오직 죄수의 발바닥만을 지질 수 있도록 명시돼 있었다. 또 영·정조 이후로는 신체에 대한 가혹한 고문을 금지시키고 법에 의거하지 않고 함부로 형벌을 가하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형벌의 최고 수준은 사형이다. 조선시대 사형 집행은 크게 목을 매어 처형하는 교형과 목을 베는 참형으로 집행되었고 대개 공개적으로 처형됐다. 하지만 대역죄를 저지르거나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의 경우 능지처참(능지처사)에 처해지기도 했다. 능지처사는 본래 가능한 한 느린 속도로 고통을 극대화하면서 사형을 집행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능지처사는 주로 죄인의 팔다리와 목을 매단 수레를 끌어 몸통을 찢어 죽이는 거열이 행해졌다. 중국의 경우 신체를 절단하고 살점을 하나씩 뜯어내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한 사람에게 3000점 이상 살점을 뜯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동양의 형벌이 결코 서양의 형벌보다 잔인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실제 유럽에서는 사형집행 방식이 매우 구체적이면서 잔인했는데 거열 외에도 솥에 넣어 끓여 죽이는 팽형, 꼬챙이로 쑤셔 죽이는 관자형, 물속에 넣어 죽이는 익형 등으로 엄하게 다스렸다.
심 씨는 “역사드라마는 그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잘못된 역사 고증 하나가 그 시대를 잘못 판단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보다 철저한 연출을 당부했다. <네 죄를 고하여라>에 기술된 조선의 법집행 실상과 TV 사극드라마에서 묘사되고 있는 형벌 장면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