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 30일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이상돈 비대위원(왼쪽)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이 위원 오른쪽은 김종인 비대위원.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문제는 인적쇄신을 주장하는 비대위원들이 과연 중립성을 담보할 만한 인사들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친이계가 특히 감정적으로 반발하는 것도 이상돈 교수 등이 원래 친박계열 인사라 다분히 정적 죽이기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신년 벽두를 뒤흔들고 있는 한나라당 비대위의 인적쇄신 대충돌 막후를 들춰봤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 뒤 하루 만에 이상돈 중앙대 교수가 권력실세 용퇴론에 불을 댕기자 당은 급속도로 계파 전쟁의 수렁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총선-대선 승리를 겨냥한 비대위의 쇄신활동도 권력투쟁에 묻히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비대위 출범 전 그 핵심은 총선 공천 물갈이가 될 것으로 이미 예상했었다.
하지만 비대위 출범의 깃발이 다 올려지기도 전에 이 교수의 용퇴론이 터져 나오자 친이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한 친이계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 교수가 공천 물갈이 총대를 멜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그 시기나 발언 강도가 생각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공격적이다. 박근혜 위원장이나 그 아래 친박 핵심들과의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비대위 초반에 인적 쇄신으로 분위기를 확 몰아가야 승산이 있다고 본 것 아니겠는가. 전쟁은 시작되었고 피할 수 없다. 전면전이다”라고 말했다.
친이계의 또 다른 의원은 “비대위가 이런 식으로 나가면 박 위원장이 외부 인사의 입을 빌려 정적을 제거하려 한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용퇴의 직접 당사자로 지목된 홍준표 전 대표는 이 교수가 천안함 사태가 폭침이 아닌 누수의 의한 사고라고 주장한 전력을 걸고 넘어지는 등 즉각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친이계의 대체적 분위기는 일단 확전을 자제하는 쪽으로 잡혀가고 있다. 어렵게 출범한 비대위 활동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을 경우 ‘반개혁 세력’으로 내몰려 순식간에 물갈이 급류에 휩쓸려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비대위가 3주 이내에 공천 기준 제시 등 물갈이 전면전을 선언한 상황이라 무작정 참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특히 김종인 전 수석은 “시간이 없다. (내년) 1월 말까지 이 문제를 입장 정리 안하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며 박 위원장에게 인적 쇄신의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하면서 데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친이계로서도 마냥 뒷짐 지고 당할 수만은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친이계는 이재오 의원의 처리 여부가 이번 비대위의 물갈이 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소장파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오래전부터 친박계 내부에서는 이재오 의원을 안고 갈 것인지, 충돌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버리고 갈 것인지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박 위원장이 최근 이 의원 출판 기념회에 축전을 보내는 등 화해 제스처를 취했다는 점에서는 친이계와의 전면전은 피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지만 박 위원장이 김종인-이상돈 두 강경파의 요구를 들어주는 모양새로 이 의원을 내칠 경우 친이계가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비대위 활동이 중단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런데 비대위가 출범 하루 만에 인적 쇄신 논란 속으로 빠져들자 위원들의 중립성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박근혜 위원장의 인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이번 비대위 인선에서 자신과 가까운 인사들로부터 추천을 받고, 당 외부에 조직해놓은 비공식 팀을 통해 검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다보니 인사 대상자 자체가 박 위원장과 직간접적인 인연을 맺은 제한된 대상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많다.
이상돈 교수도 평소 친박 성향 학자라는 점에서 이에 해당된다. 특히 비대위에서 인적 쇄신을 주도하고 있는 이 교수는 전형적인 ‘폴리페서’(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를 일컫는 조어로서 대학 교수직을 발판으로 입신양명을 꿈꾸는 행태를 보여, 주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됨)라는 게 친이계의 시각이다. 사실 이 교수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원칙이나 상식이나 신의가 없는 대표적인 인물’ ‘폴리페서의 모범답안지’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이 교수는 한때 보수우파의 이념을 설파하는 선봉장을 자임했던, 극우파 이데올로그였다. 또한 지난 2008년에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주도한 ‘자유신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이력 때문인지 친이계 의원들은 대체로 그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그에 대해 “이상돈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가 갑자기 진보 진영에 기대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향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 등에 대해 사사건건 ‘묻지마 반대’를 한 것이 오히려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앞서의 재선 의원은 “교수 출신들이 정치권에 진입하기 위해 쓰는 방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세게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점잖은 교수들 사이에서 확실한 정체성으로 특정 주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경우 대부분 폴리페서로서 정치를 하기 위한 하나의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교수가 이명박 정권을 강하게 비판하자 진보언론의 단골 취재원이 돼 언론 노출이 빈번해 지명도를 끌어올린 게 일약 박근혜 비대위원으로 도약한 계기가 되지 않았겠느냐. 하지만 그의 발언을 들어 보면 정제된 철학이나 비전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다분히 정치적 몸값 불리기의 측면이 강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친이계가 박근혜 비대위의 인적 쇄신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도 그것을 주도하고 있는 이상돈 교수의 중립성에 심각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의 재선 의원은 “공천 물갈이 같은 민감한 사안을 특정 계파색이 뚜렷하고 정치적 소신도 불분명한 인사를 내세워 밀어붙일 경우 백발백중 실패한다고 본다. 정치와 무관하면서 학계에 명망이 있는 중립성향의 인사를 내세워도 논란이 많이 일어날 일을 ‘반 MB 친 박근혜’ 인사로 처리한다면 누가 그의 말을 신뢰하며 객관성을 존중해 주겠느냐. 홍준표 전 대표가 이 교수의 발언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무슨 자격이 되는 사람이 인적 쇄신 운운해야 먹혀들지, 전혀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인사가 함부로 문제제기를 하면 친이-친박 모두의 극렬한 반발만을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위원장의 조율 없는 아마추어적 정무 대응도 비대위의 인적쇄신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용퇴론을 주장한 이 교수의 경우 출범 하루 만에 민감한 공천 이야기를 꺼내 화를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일각에서는 이 교수가 박 위원장의 의중을 읽고 인적 쇄신 논란의 십자가를 졌다는 해석도 있다. 그의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당내 쇄신파와 친박계 강경 그룹에서 공공연히 나돌던 얘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란 과정에서 박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속도조절을 요구하고 이 교수가 그것에 반발하는 등의 과정을 보면 양측 간의 정밀한 의견교환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비대위의 핵심은 총선 공천 물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비대위는 그것에 대한 충분한 사전교감 없이 이상돈 교수가 어설프게 칼을 휘두르다가 친이계의 반격을 자초하고 있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소멸할 친이계가 조자룡의 헌 칼 때문에 다시 부활하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의 초기 혼란상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