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덕 의원의 ‘전대 돈봉투 의혹’ 폭로를 두고 고 의원과 비대위 측의 사전 교감설이 돌고 있다. 사진은 5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4차회의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갑자기 이 시점에 왜 그랬을까.”
지난 1월 4일 고승덕 의원이 “2008년 이후 열린 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 전직 대표 중 한 명으로부터 현금 300만 원이 들어있는 돈봉투를 받았다가 되돌려준 적이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한 동료 의원들의 반응이었다. 서울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처음엔 돈봉투를 건넨 전직 대표가 누구일까를 놓고 얘기하다가 나중엔 고 의원 폭로 배경에 초점이 맞춰졌다”면서 “총선을 4개월도 안 남긴 지금 예전 일을 끄집어낸 데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고 의원 폭로를 놓고 수많은 설들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선 ‘친박 기획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 주류로 떠오른 친박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고 의원과 접촉해 폭로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의도 주변에선 친박 핵심 L 의원이 사전에 고 의원과 자주 만났다는 ‘목격담’이 속속 나오고 있다.
▲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을 폭로한 고승덕 의원. |
그 결과 선거에서 승리하며 ‘선거의 여왕’이라는 닉네임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번 돈봉투 사태 역시 ‘디도스 사건’으로 불가피하게 조기 등판한 박 위원장이 ‘충격 요법’을 사용,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싫든 좋든 박 위원장은 전면에 나섰다. 대권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우선 총선에서 이겨야 한다. 벼랑에 빠져 있는 현 상황에서 박 위원장이 2006년 지방선거 때의 위기수습 과정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적 쇄신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이는 박 위원장이 이끌고 있는 비상대책위원회의 몇몇 비대위원들이 주장하는 ‘용퇴론’과도 맞닿아 있다(<일요신문> 1025호 참조). 비대위를 중심으로 당 쇄신 작업에 ‘올인’하고 있는 박 위원장으로선 친이 세력들의 강한 반발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번 고 의원 폭로로 총선에 대한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면서 박 위원장은 ‘재창당’ 수준의 강도 높은 쇄신 드라이브를 걸 수 있게 됐다. 부산지역의 한 친박 의원은 “쇄신의 핵심은 총선 공천이다. 돈봉투가 사실로 드러나면 친이계가 반대할 명분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 위원장과 비대위가 그리고 있는 대대적인 ‘물갈이’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될 경우 박 위원장은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잠재적인 당내 위협의 ‘불씨’를 제거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도 있는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고 의원 역시 이번 폭로로 그리 손해 볼 것은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고 의원은 순식간에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언제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봤겠느냐. 의도야 어찌됐건 국민들 사이에선 좋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면서 “또한 고 의원은 박근혜 비대위 체제에 ‘공헌’을 한 것 아니냐. 친이계에 속한 고 의원에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친박계는 “사전에 논의한 바 없다”며 일축하고 있고, 고 의원 역시 “특정 세력을 겨냥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비대위는 고 의원 폭로 다음날인 1월 5일 관련 내용을 서울중앙지검에 수사 의뢰했다. 이례적으로 발 빠른 행보다. 친박과 고 의원 측 간에 미리 ‘말을 맞췄을’ 가능성이 흘러나오는 까닭이기도 하다. 검찰로 ‘공’이 넘어갔지만 이와는 별개로 정치권에서는 ‘진실게임’이 뜨거워지고 있는 양상이다. 고 의원에게 돈을 건넨 전직 대표가 누구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인 것이다. 2008년 이후 당 대표는 모두 세 명인데 이 중 홍준표 전 대표의 경우 고 의원이 “아니다”라고 해 현재 박희태 국회의장과 안상수 전 대표로 좁혀진 상태다.
몇몇 언론은 박 의장이 그 당사자라고 보도하기도 했으나 고 의원은 “50% 확률인데 아직은 밝히지 않겠다. 검찰에서 모든 것을 말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박 의장과 안 전 대표는 “고 의원에게 돈을 준 사실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박 의장을 대신해 돈봉투를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과 안 전 대표 측근 A 의원 역시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는 고 의원에게 누가 돈을 줬건 친이계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데엔 이견이 없다. 박 의장과 안 전 대표 모두 친이계가 밀어줘 당선된 대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7·4 전당대회에서 1위를 한 홍준표 전 대표는 친박에서 물밑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박이 이번 돈봉투 폭로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거나 재빠른 대책 마련에 나선 것 역시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친박 내에서는 고 의원 폭로의 방점이 박 의장보다는 안 전 대표에 찍혀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비대위가 안 전 대표 용퇴론을 외치고 난 뒤 고 의원 폭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는 ‘반박’을 이끌고 있는 이재오 의원 라인의 핵심으로 꼽힌다. 이 의원 역시 비대위로부터 ‘용퇴대상’으로 거론된 바 있는데, 이를 들은 이 의원이 강하게 불평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친박 중진 의원은 “전당대회 때마다 이재오 개입설이 얼마나 많았느냐. 이번에 고 의원이 폭로한 것은 그 빙산의 일각이다. 반박세력을 규합하고 있는 이 의원을 우리가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털어놨다.
고 의원 폭로 이후 기자와 통화한 이재오계 인사들 역시 고 의원 폭로의 타깃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외부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며 모처에 모여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이재오계의 한 의원은 “우리가 바보냐. 비대위에서 선배(이재오 지칭)를 퇴출 1호로 지목하고 나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친박에서 뭔가 꾸민 것 같기도 하고…. 우리도 이제 막다른 골목에 왔는데 이대로 죽을 순 없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특히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으로 ‘맞불’을 놔야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앞서의 이재오계 의원은 “우리도 7·4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전 대표를 밀었던 쪽이 대의원들에게 돈봉투를 줬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1인당 200만~600만 원씩 줬다고 하더라”고 털어놨다. 향후 친박과 반박 사이에 사활을 건 ‘폭로전’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여권 내에서는 “이러다 다 망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전당대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정치인이 어디 있느냐”며 “제 살 깎기 식의 진흙탕 싸움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7월 4일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한 의원실 관계자 역시 “정당의 전당대회는 대의원들 사이에서 ‘명절’로 통한다. 이른바 ‘떡값’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지 않으면 대의원들이 요구할 때도 있다. 이러한 것은 계파 가릴 것 없이 모두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전면전으로 갈 경우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친박 역시 고 의원 폭로 파문이 커지거나 장기화되면 당초 노렸던 비대위의 쇄신 작업은 물론 총선과 공천에서 어려울 수 있다고 보고 조기 수습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그녀 없이 이젠 못살아?
청와대가 이명박-박근혜 회동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 현재 청와대에서는 정무라인과 전직 수석급 인사가 박 전 대표 핵심 측근들과 접촉하며 그 시기 및 회동 주제 등을 조율하고 있다고 한다.
한 정무라인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박 위원장이 여당 대표 역할을 하고 있으니 당·청 협조 차원이라고 봐도 되고…. 검토 단계라고 보는 게 맞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이 박 위원장과의 회동을 모색하고 있는 것을 놓고 정치권에선 여러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마무리 짓기 위해선 명실상부 여권 차기 영순위인 박 위원장의 협조가 절실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임기 후를 대비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이 대통령은 그 어떤 현직보다 임기 후를 걱정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목격하지 않았느냐”면서 “따라서 후임 대통령과 반드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따르는 정치세력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은 물론 이번 총선에서 ‘친위세력’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선 긋기’가 빨라지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비대위 인선 과정 및 쇄신 작업과 관련된 ‘소스’를 사전에 전혀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호소했다는 전언이다. 이 대통령이 박 위원장과의 회동을 결심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귀띔이다.
그러나 친박 측은 이 대통령과의 회동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지배적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박 위원장이 만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친박계 중진 의원은 “박 위원장 본인도 힘든 국면인데 괜히 (이 대통령) 만나서 지지율 깎일 것 있느냐. 그리고 지금 박 위원장이 이 대통령과 만나서 할 말도 없다”고 말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