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전기 민영화 의혹 이어 국유재산 매각 논란…‘안한다는데 막겠다?’ 이재명 1호 법안 두고 찬반 고심
국토교통부가 기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위탁하던 철도관제권을 국토부 산하 국가철도공단으로 이관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철도관제권은 운행정보 제공, 운행 통제, 안전운행 지도감독, 사고 수습, 미래 운행 계획 등 열차 운행 시스템의 전반을 관장하는 권한이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이 입수한 ‘제2철도교통관제센터 관제시스템 구축 기본계획 최종보고서’를 살펴보면 “동일노선 복수사업자의 운영환경을 검토하고 국제철도 사회진출 등 복수사업자 확대에 대비한 관제 독립성 확보 방안을 제시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앞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4월 30일 국회 인사청문회 사전질의 답변서에서도 철도 운영에 ‘복수 사용자’를 강조하며 철도 관제뿐 아니라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도 국가철도공단이 전담하는 일원화 방안을 주장한 바 있다.
‘복수’의 철도운영 기관 출현을 전제로 ‘독립적인’ 관제권이 확보돼야 한다는 국토부 계획에 일각에서는 ‘철도 민영화’의 사전 포석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철도노조 측은 “관제권 이관은 철도 운영의 경쟁 체제를 전제로 추진하는 것”이라며 “철도 운영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는 ‘철도 민영화’와 연결된 수순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8월 11일 “지난 6월 철도노조 집회에서 민영화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던 국토부가 말을 바꿔 민영화 강행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며 “국토부가 기어코 관제권 이관을 강행한다면 ‘철도 민영화’의 포문을 열겠다는 의도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전기 부문도 민영화 이슈로 시끄럽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7월 5일 국무회의에서 새로운 에너지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한국전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내 전력판매 독점 기능을 깨고, 다양한 민간사업자의 진입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을 담으면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전력산업 독점구조를 해소하고, 소매부문 경쟁을 도입해 전력시장의 역동성을 살려야 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전력노조는 “전력산업의 공공성을 훼손하려는 일련의 위험천만한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새 정부의 에너지정책 기조는 개혁을 빙자한 민영화 꼼수이며, 재벌들이 그동안 침흘려왔던 전력산업 진출을 위한 민영화의 포문을 다시 열려는 포석”이라고 반발했다.
민영화 논란과 별개로 국유재산 민간 매각 문제도 불거졌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월 8일 ‘유휴·저활용 국유재산 매각·활용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활용도가 낮아 놀고 있는 국유재산을 매각해 국가재정을 확충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규모는 16조 원 이상에 달했다.
하지만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매각 대상에는 서울 논현·대치·삼성·신사동의 빌딩과 주택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동주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국가가 소유해 상업용과 주택임대용으로 활용해왔던 강남의 부동산을 한꺼번에 매각하려 한다. 유휴 저활용 재산을 매각하겠다고 하면서 강남에 위치한 알짜배기 자산을 판다는 건 납득할 수 없다”며 “땅부자만 배불리기 위한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민영화 추진 주장에 대해 정부여당에서는 “민영화 계획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추경호 부총리는 8월 11일 국유재산 매각을 민영화와 연결 짓는 것에 대해 “뜬금없는 지적”이라며 “근거 없는 상상력이 야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의혹 등에 대해 궁금하시면 직접 가서 설명도 드리고 걱정 안 하셔도 된다는 말씀 드리겠다”고 밝혔다.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6·1 지방선거가 한창이던 5월 19일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기본생활과 관련된 철도·전기에 대해 민영화를 내걸 계획이 전혀 없다”며 “민주당이 허위선동을 통해 제2의 광우병 사태, 제2의 생태탕 논란을 일으키려는 정치공학적 목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민영화 논란 분기점은 이재명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통과 여부가 될 전망이다. 이재명 의원은 6월 28일 1호 법안으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민영화 방지법’을 대표발의했다. 현행 법률은 기재부 장관이 공공기관을 점검하고 기능 통폐합·재조정 및 민영화에 관한 계획을 수립한 뒤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이재명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기재부 장관이 민영화 계획 수립 과정에서부터 국회에 사전 보고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은 “(기재부 장관은) 주무기관 장과의 협의, 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 및 국회 상임위에 대한 사전 보고를 거쳐 공공기관의 기관 통폐합·기능 재조정 및 민영화 등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공공기관에 대해 정부가 주주권을 행사하거나 주식 매각을 할 경우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이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 대해 “전기·수도·가스와 같은 필수 에너지 및 공항·철도와 같은 교통은 국민 모두가 필요로 하는 필수재로서 경영 효율성과 수익성뿐만 아니라 형평성과 민주성 또한 지속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며 “최근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논의되는 공공기관 민영화의 경우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의 논의를 충분히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개정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의원의 ‘민영화 방지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각오다. 기재위 소속 서영교 의원은 “공공기관이나 국유재산은 나라를 위한 것이고, 미래 세대에 물려줘야 할 자산이다. 현 정권이 마음대로 팔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민영화 방지법 법안 내용을 살펴보고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움직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재위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신동근 의원 측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국유재산 민간 매각, 민영화 포석 움직임 등을 재정 건전화 차원이라고 말하며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 계획이나 방식이 나온 것은 없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며 “이재명 의원이 발의한 민영화 방지법의 경우 아직 법안 검토도 안 돼 있어 좀 섣부르긴 하지만,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이다”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영화 방지법에 찬성 입장을 낼지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기재위 위원장을 맡은 박대출 의원은 “대통령실에서 민영화는 안 한다고 기본적 입장을 내놓았다”며 “이견이 있는 법을 먼저 다룰 수는 없다. 이재명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상정할지는 협의를 해봐야 한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간사인 류성걸 의원은 “이재명 의원이 발의했다는 개정안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기재위에 회부가 됐다면 순서에 따라 심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기재위에 배정돼 있는 또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여당이 민영화 추진을 발표한 적이 없는데, 민영화 반대하는 법을 만드는 건 좀 어리둥절하다. 예를 들어 내가 다른 사람을 때릴 생각이 없는데 때리지 말라는 법을 만드는 게 국회의 명분 있는 입법행위인가”라며 “개정안이 상임위에 올라왔다면 심의해 적절한 판단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영화 방지법을 두고 국민의힘에서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민영화 추진 의사가 없다고 했으니, 국민의힘에서는 민영화 방지법을 심의하고 의결해 본회의 상정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재명 의원을 띄워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며 “반대로 민영화 방지법 통과를 막으면 ‘정부여당이 정말 민영화를 추진하려는구나’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민주당이 선제적으로 민영화 방지법을 들고 나오면서 공격해, 이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국민의힘이 고심이 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재명 의원의 ‘민영화 방지법’에는 이번에 논란이 된 국유재산 민간 매각을 막을 수 있는 내용은 담겨있지 않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기재부에서는 당초 8월 안에 매각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논란이 되면서 당분간은 국유재산 매각 추진에 제동이 걸렸을 것”이라며 “9월 중 민변이나 참여연대 등 단체들을 만나 대응책을 만들 계획으로 안다”고 전했다.
서영교 의원 역시 “국유재산 매각 추진에 대해 이번 국감 등에서 문제 제기하고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며 “바로 입법을 통해서도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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