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수 상당수 대우·자유 보장받는 방송 출연 선호…“현장 가고 싶어도 기회 주어지지 않아” 하소연도
스포츠 예능은 거의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방송사마다 축구, 야구, 농구, 골프, 씨름 등 여러 종목의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과 만난다. 농구 선수 출신이 축구를 하기도 하고, 축구, 야구 선수 출신이 골프 방송에서 종횡무진의 활약을 펼친다. 선수 출신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예능에서 인기를 모으는 몇몇 선수 출신들은 회당 출연료가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을 받는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다.
문제는 은퇴한 선수들이 현장 지도자 대신 방송으로 나가는 걸 선호한다는 점. 시간적인 자유와 제약이 많은 지도자 생활보다 대우와 자유를 보장받는 방송 출연에 더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 프로야구 팀의 코치 A와 대화를 나누다 코치들의 연봉 이야기가 나왔다. 그 코치는 지도자 경력 5년 차였고, 선수 시절의 성적도 뛰어났다. 선수 육성에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와 실력을 인정받으며 안정된 코치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의 유일한 불만은 연봉이었다. 신임 코치 1년 차 때 4500만 원에서 시작한 연봉이 현재 6000만 원 정도로 오른 게 전부였다. 선수 시절 수억 원대의 연봉을 받던 그가 코치 시작하면서 받은 첫 연봉이 4500만 원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는 “코치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그 정도의 연봉을 받고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선수 생활하고 은퇴하면 30대 후반 또는 40대 초반이다. 프로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코치로 시작하는 선수 출신이 4500만 원에서 5000만 원 정도의 연봉에 만족하기란 쉽지 않은 일. 그럼에도 그가 코치 생활에 자부심을 갖는 건 선수들의 성장을 돕고, 관심을 기울인 선수가 성장을 거듭해 경기를 통해 실력을 나타냈을 때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이 선수 생활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수도권 팀의 B 코치 이야기다. 그는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선수 출신들의 방송이 보기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들 중 일부는 프로팀 코치직 제안을 받았음에도 코치 대우가 열악하다는 걸 알고 현장에서 일하는 걸 꺼려한다는 것. 코치는 스프링캠프부터 정규시즌, 포스트시즌을 거쳐 마무리캠프 까지 쉼 없이 달리고 가족들과 떨어져 원정 경기에 동행하는 등 선수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면에 방송은 촬영일 외엔 여유있게 남은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터라 시간이 갈수록 코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선수 출신이 줄어든다는 내용이었다.
B 코치는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는 운동 선수들의 예능 출연을 보며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선택하는 건 선수 개인의 자유지만 프로에서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응원에 보답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줬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건넸다.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김성근 감독 고문은 최근 인터뷰에서 모든 은퇴 선수들이 현장에서 코치를 할 수는 없겠지만 이승엽, 박용택, 정근우 등 레전드 출신들은 현장으로 돌아가 후배들을 위해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그들이 선수 생활하며 쌓은 경험들과 노하우가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활용되지 못한다면 그거야 말로 한국 야구의 손해라는 시각이었다.
은퇴 후 방송 출연에 나선 선수들도 할 말은 있다. 이번엔 프로에서 이름을 날렸던 C 이야기다. 그는 은퇴 후 고등학교 인스트럭터로 활약하며 어린 선수들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과 기술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그러나 감독이 교체되면서 그의 자리도 흔들렸다. 새로운 감독이 다른 인스트럭터를 고용하고 싶어해서 본의 아니게 학교를 그만둬야만 했다.
이후 모 중학교 야구부 감독직 공모가 난 걸 보고 공개 채용 지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이유는 아마추어 지도자 경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C는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마야구 지도자가 되려면 프로 경력보다 아마추어 지도 경력이 중요했다. 내가 인스트럭터로 일한 건 경력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선수 생활을 일찍 마무리하고 아마 야구에서 오랫동안 일한 지도자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초·중학교 감독 또는 코치로 들어갔다. 아마야구 지도자들의 면면을 보면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프로 출신들이 아마야구 지도를 멀리하는 게 아니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아마야구 지도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야구 지도 경력을 쌓기 위해 여기저기 문을 두드렸지만 좀처럼 그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지금은 선수 개인 레슨과 방송 출연을 병행 중인데 나름 만족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C의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 하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C는 지속 가능하다면 방송 출연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프로그램 시청률이 낮거나 관심을 받지 못할 경우 조기에 폐지될 수도 있는 터라 항상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야구 선수 출신으로 활발하게 방송에 출연 중인 D는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했다.
“흔히 야구로 받은 명성을 현장으로 돌아가 후배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하는데 우리가 현장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팀에서 불러줘야 갈 수 있다. 팀마다 사정이 있고, 기존 감독이나 코치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름이 알려진 선수 출신이라고 무조건 코치직이 주어지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론 야구장에 자주 가서 선수들도 만나고 팬들과 소통도 하고 싶지만 행여 그런 모습이 뭔가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까봐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은퇴하고 방송하는 걸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 또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고, 이름만 갖고 방송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현장에서 나를 잊지 않고 불러준다면 돌아갈 의향은 있다.”
이번엔 한 구단 관계자의 이야기다. 코칭스태프를 구성할 때 감독의 의견이 주로 반영되지만 구단에서 추천하는 코치들은 유명 선수 출신보다는 선수 때는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어도 팀을 위해 기꺼이 희생과 봉사를 할 수 있는 지도자를 더 선호한다는 것.
“코치들 대부분은 감독이 정한다. 감독 입장에선 자신보다 더 유명했던 선수를 코치로 두는 게 쉽지 않다. 선수단을 이끌어야 하는 감독의 지시에 따르고 감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코치를 선호한다. 더욱이 방송 출연으로 예능의 맛을 본 선수 출신들이 현장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예능 출연으로 야구의 인기와 홍보에 앞장서고 있는 야구인도 있어야 하는 것이고, 현장에서 선수들과 호흡하며 팀 성적을 위해 애를 쓰는 야구인도 존재해야 한다.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고 본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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