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등 위기에 매각설까지 겹치며 폭풍전야…이재명 후원금 의혹 등 정치적 소용돌이 휘말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진공청소기’라고 불리며 그라운드를 휘저었던 선수가 있다. 김남일 성남FC 전 감독이다. 김 전 감독은 2019년 12월 취임해 2020년부터 2021년까지 2년 연속 팀을 K리그1에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세 번째 시즌은 녹록지 않았다. 김 전 감독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8월 24일 자진사퇴했다. 성남FC는 8월 31일 기준 5승 6무 17패(승점 21)로 K리그1 최하위다.
2년 전 김 전 감독은 극적으로 K리그1 잔류를 확정지은 뒤 당시 구단주였던 은수미 전 성남시장과 포옹을 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때와는 백팔십도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지방선거가 끝난 뒤 구단주가 교체됐고, 신임 구단주는 구단 매각 의사를 여러 차례에 걸쳐 천명했다.
김 전 감독은 사퇴하기 3일 전인 8월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원정 응원단 석엔 ‘성남시는 구단 매각 결정을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날 성남FC는 FC서울에 0 대 2로 패했다. 김 전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구단 매각설과 관련해 “선수들도 의식하지 않고 경기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그런 기사가 우리 선수들이 경기하는 데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성남FC는 1년에 100억 원을 받으면서 매년 꼴찌를 하고 있고, 성남 시민들의 혈세를 받아먹은 하마 구단이다. 이런 구단의 구단주를 하고 싶지 않다. 기업에 매각하거나 어떤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
성남FC 구단주 신상진 성남시장이 7월 22일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 발언은 성남FC 매각 추진 논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김 전 감독이 사퇴한 다음날인 8월 25일 신 시장은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구단 매각 추진 의사를 분명하게 천명했다.
“시민통합 에너지를 상실한 프로축구단 성남FC는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른 시일 한에 해체나 매각이 돼야 한다.”
신 시장은 임기 초반 성남FC 매각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연이어 내놨다. 보폭을 넓히며 이른 시일 안에 성남시가 성남FC 운영에서 손을 떼게끔 조치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성남시 체육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성남시가 구단을 매각하거나 세미프로리그 소속을 재창단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면서 “최악의 경우엔 구단을 해체하는 시나리오도 선택지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선 성남FC 매각 추진을 두고 이재명-은수미로 이어진 진보진영 성남시장 잔재를 청산하는 첫 과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성남FC는 한국 프로축구를 대표할 만한 상징성을 가진 구단인데, 이런 구단에 대한 매각·해체 관련 내용을 다소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이 있다”면서 “신 시장이 이런 조치를 하는 이면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인수를 결정한 성남FC에서 손을 털면서 전직 시장들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기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권 관계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중 하나로 성남FC 후원금 유용 의혹이 있다”면서 “성남시가 소유한 프로축구단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정치적 논란에 개입된 부분을 하루빨리 덜어내려는 조치 일환으로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신 시장이 언급한 ‘시민통합 에너지 상실’이 성남FC 후원금 유용 의혹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여기저기서 나온다”고 했다.
성남FC 후원금 유용 의혹은 2015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두산그룹·네이버·NH농협은행·분당차병원 등 기업 6곳에 사옥 관련 인허가를 제공하는 대신 성남FC 후원금 160억 원을 받았고, 이 금액 일부를 유용했다는 의혹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해당 사건 관련 제3자뇌물공여죄로 고발당했다. 제20대 대선 경선 과정이었던 2021년 9월, 경찰은 해당 의혹 관련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던 지난 5월 2일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6시간 30분 동안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했다. 성남FC 후원금 유용 의혹이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경찰은 검찰 보완수사 요구에 따른 압수수색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은 압수수색에 대해 이재명 망신 주기라고 반발했다.
이런 과정에서 성남FC 매각설이 불거졌다.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구단주 소속정당이 바뀌었고, 성남FC가 정치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는 속도도 빨라진 양상이다. 현직 야당 대표이자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대표가 얽힌 정치적 사건의 무대로 떠오르면서, 성남FC 뉴스 지분은 정치와 스포츠가 양분하고 있다. 축구계에선 성남FC 매각 추진 논란을 향해 당혹·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국가대표 공격수이자 성남FC 출신인 황의조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남FC라는 팀을 두고 이렇게 슬프고 무거운 말을 하게 될 줄 몰랐다”면서 “성남FC는 K리그에서 7번 우승한 팀으로 K리그 역사와 언제나 함께했다. 성남FC는 언제나 성남 그리고 K리그, 한국축구에 존재해야 하는 팀”이라고 했다.
국가대표 골키퍼 출신으로 성남FC에 몸담고 있는 김영광은 “성남FC는 K리그 역사에서 빼놓으면 안 되는 명문구단”이라면서 “성남시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렵다. 성적이 좋지 못하고 최하위에 있으면 그 팀들은 다 없어져야 하는지 묻고 싶다”며 격정을 토로했다.
성남FC는 1989년 창단한 일화 천마의 역사를 계승한 구단이다. 구단 창립자는 문선명 통일교 교주다. 통일교 산하 기업인 일화가 창단한 축구단이다. 1989년부터 1995년까지는 연고지가 서울이었고,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천안에 둥지를 틀었다. 일화 천마 연고지는 2000년에 성남으로 바뀌었다. 2012년 구단 창립자인 문선명 교주가 향년 92세로 유명을 달리한 뒤 일화는 축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2014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전격적으로 구단 인수를 결정했다. 구단 상징물은 천마에서 까치로 바뀌었다. 클럽 이름도 성남FC로 변경됐다. 종교단체 산하 기업구단이 시민구단으로 구조를 대전환한 셈이었다.
성남FC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성남 왕조’를 구축했던 영광의 역사를 갖고 있다. K리그 우승 7회, FA컵 우승 3회,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에 빛나는 역사다. 그중 대부분의 역사는 성남 홈구장인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쓰였다. 탄천종합운동장은 ‘탄천요새’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성남FC의 상징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 강팀들과 홈경기에서 19전 14승 4무 1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면서 생긴 별칭이다.
탄천요새는 성남FC 매각설이 불거진 뒤 주인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8월 30일 직접 찾은 탄천요새는 고요했다. 성남FC를 상징하는 현수막과 까치 엠블럼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1층 로비엔 영광의 역사를 기념하는 상징물들이 마련돼 있다. 주경기장 정문을 기준으로 우측엔 성남FC 구단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주경기장 정문을 기준으로 좌측엔 사무실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축구장 1층에 위치한 이 사무실의 존재가 다소 생경하면서도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성남도시개발공사였다.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가 탄천요새 1층에 있었다. 개발사업본부 산하 주택사업처·도시사업처·위수탁사업처가 성남FC 홈구장에 자리한 셈이다.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위례신도시, 성남판교대장지구(대장동), 백현동 등 개발사업을 담당했다. 쟁쟁한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한 본부가 성남FC 라커룸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 도시개발사업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사법리스크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탄천요새 건너편엔 성남시 체육회관과 성남빙상장이 있다. 성남빙상장 2층엔 성남빙상경기연맹 사무실이 있다. 이 장소는 2010년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이 대장동 개발 관련 관계자들로부터 현금 1억 원 쇼핑백을 받은 곳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최 전 의장은 해당 쇼핑백에 현금이 들어있는 것을 알고 화를 내며 반환했다고 주장했고, 뇌물수수 관련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최 전 의장은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재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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