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명예 하차 이후 8억원대 횡령 의혹 ‘또’…광복회관 지하엔 일식 오마카세 식당 영업중
지난 8월 15일 장호권 광복회장이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를 했다. 장 회장은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했던 장준하 독립운동가 장남으로 5월 31일 신임 광복회장으로 취임했다. 장 회장은 기념사에서 “후손들이 살아갈 이 땅이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폐허가 되지 않기 위해선 주변국, 특히 일본과의 공존·공생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일본의 과거 침략과 수탈에 대한 진솔한 고백과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회장 기념사는 화제가 되지 않았다. 이 사실만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로 구성된 광복회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후문이다. 한 광복회 회원은 “지난 몇 년 동안 광복회장 기념사가 발표될 때마다 그 내용이 정치적 분쟁을 발아하는 씨앗이 돼 왔다”면서 “국가·민족·후손의 미래를 논하는 담백하다 못해 건조하기까지 한 기념사가 반가운 마음”이라고 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광복회장 광복절 기념사는 수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 중심엔 2월 16일 자진사퇴한 김원웅 전 광복회장이 있었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찬사를 보내는 발언으로 정치적 중립 논란에 휩싸였다. 2020년 광복절엔 김 전 회장이 “이승만이 친일파와 결탁해 대한민국은 민족 반역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됐다”는 기념사를 발표했다. 김 전 회장은 “친일 행적이 드러난 음악인 안익태가 작곡한 노래가 여전히 애국가로 쓰이고 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2021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역대 보수 정권을 겨냥했다. 김 전 회장은 “촛불혁명으로 친일에 뿌리를 둔 세력은 무너졌지만, 이들을 집권하게 한 친일 반민족 기득권 구조는 아직도 철의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역대 보수 정권을 친일 반민족 정권이라고 주장한 기념사에 정치권이 또 다시 요동쳤다.
김 전 회장은 군부 독재 시절 공화당과 민정당부터 진보진영의 열린우리당까지 아울렀던, 3선 의원 출신이다. 정치권에선 ‘역대급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인사로 꼽혔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5월 펼쳐진 광복회장 선거에서 이종찬 전 국정원장에 승리했다. 그때부터 김 전 회장을 중심으로 한 광복회는 여러 구설에 휘말렸다.
국가보훈처 예산 2억 원 부당집행 논란, 김원봉 의열단장 서훈 추진 논란, 국회 내 광복회 카페 수익금 횡령 의혹 등이 잇따라 제기됐다.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김 전 회장이 해당 사건을 “월북자 피살사건”이라고 명명한 사실도 도마 위에 올랐다. 2020년 10월 김 전 회장은 한 특강에서 “차기 대통령은 빨갱이 소리를 듣는 사람이 당선돼야 한다”고 발언했다.
2년 8개월 동안 트러블메이커를 자처했던 김 전 회장은 2022년 2월 16일 광복회장 직을 자진해서 내려놨다. 보훈처 감사를 통해 김 전 회장이 광복회 운영 카페 수익금 7256만 원을 비자금으로 사용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 사퇴의 도화선이 됐다.
보훈처 감사 이후 광복회 이사회는 광복회장 해임 투표를 안건으로 하는 임시총회를 소집했다. 임시총회를 이틀 앞둔 상황에서 김 전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사퇴 입장문을 통해 “사람을 볼 줄 몰랐고, 감독 관리를 잘못해서 이런 불상사가 생겼다”면서 “전적으로 제 불찰”이라는 말로 광복회와 작별을 고했다.
김 전 회장이 광복회를 떠난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김원웅 그림자’는 광복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8월 19일 국가보훈처는 6월 27일부터 7월 29일까지 진행한 광복회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이 8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횡령했다는 새로운 비리 의혹이 포착됐다.
보훈처가 감사를 통해 적발한 비리 의혹엔 인쇄업체 수의계약 부풀리기 계약 의혹, 포천 수목원 카페 인테리어 대금 과다 지급 의혹, 위법 기부금 수수 의혹, 기부금을 기부 목적비와 달리 광복회 운영비로 활용했다는 의혹, 법인카드 유용 의혹, 불공정 채용 의혹 등이 포함돼 있다. 보훈처는 감사 결과를 토대로 형사고발할 예정이다.
보훈처는 “개별 사안이 엄중하고 사건 실체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형법상 비위 혐의자 5명을 고발하고 감사자료를 (수사기관에) 이첩할 것”이라고 했다.
광복회가 겪고 있는 논란은 전직 회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무난한 기념사’로 광복절을 큰 논란 없이 넘긴 장호권 광복회장은 검찰 수사를 받는 입장이다. 장 회장은 5월 광복회장 선출 과정에서 부정선거 논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일명 ‘BB탄 모형총’을 꺼내 일부 회원을 위협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경찰은 “장 회장이 모형 총을 겨누지는 않았지만, 광복회원이 모형 총을 위험한 물건으로 인식했다. (장 회장이) 모형 총을 협박에 이용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장 회장 관련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이유를 설명했다.
전·현직 회장을 둘러싼 각종 논란이 수습 과정을 밟고 있는 가운데, 당연하게도 광복회관은 여전히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광복회관은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5번 출구에서 도보로 4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2018년 11월 완공된 이 건물은 지하 4층 지상 9층 규모다. 4층 일부를 광복회가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으며, 3층 일부는 광복회 대강당으로 쓰인다.
나머지 공간 대부분은 기업들이 임대해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다. 1층과 지하 1층엔 식당가가 있다. 1층엔 편의점과 간장게장 전문점이 있고, 지하 1층엔 전골을 판매하는 식당과 일식 오마카세 레스토랑이 영업 중이었다. 일제에 항거하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모인 보훈단체 광복회 사무실 지하에 존재하는 고급 일식집 풍경을 생경하게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광복회관은 복잡한 소유권이 얽힌 건물이기도 하다. 2018년 재건축이 완료된 광복회관 건물은 보훈처가 소유하고 있다. 재건축 이전 광복회관 소유권은 광복회에 있었다. 2013년 광복회관이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소유권이 바뀌었다. 보훈처가 운영 주체로 있는 순국선열·애국지사기금으로 넘어갔다. 보훈처가 기금 450억 원을 활용해 건물을 새로 지은 까닭이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 재임 시절인 2021년 11월 25일 광복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박근혜 정권이 2013년 9월 광복회원들의 유일한 공동자산이자 보금자리인 광복회관 건물마저 빼앗았다”면서 광복회관 소유권 이관을 요구하기도 했다. 건물을 빼앗겼다는 당시 광복회관 주장과 달리 보훈처는 광복회에 토지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재건축 건물은 보훈처 명의지만, 땅은 여전히 광복회 소유다. 광복회관 소재 토지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해당 토지엔 2018년 11월 14일부로 임차권이 설정돼 있었다. 임차계약 존속 기간은 2018년 11월 1일부터 2028년 10월 31일까지 총 10년이었다. 건물 소유주 보훈처는 토지 소유주인 광복회에 분기별로 차임 2억 7500만 원을 지급한다. 1년 11억 원 규모이며, 계약기간 10년이 만료될 때 보훈처가 광복회에 지급한 누적 차임 총액은 110억 원이 될 전망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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