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박 회장의 이 글을 사과 혹은 반성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부 투자자는 분통을 터뜨렸다. 박 회장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박 회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이는 언행이 맞지 않았던 박 회장이 자초한 부분도 크다. 박 회장 언행의 궤적을 따라가 봤다.
지난 2007년 10월 31일 미래에셋이 출시한 ‘인사이트 펀드’는 우리나라 증권·펀드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다. 단일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고객들이 이른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서 대기표를 뽑아든 채 몇 시간이고 기다린 모습은 전무후무하기 때문이다.
박현주 회장은 ‘박현주 펀드’를 선보여 10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며 우리나라에 펀드 열풍을 일으킨 터. 박 회장이 야심차게 준비한 펀드에 대한 관심은 지대할 수밖에 없었다. 인사이트 펀드는 큰 기대를 모으며 출시된 지 한 달 만에 4조 원이 몰려들었다. 비록 IT와 통신주 위주로 투자했던 ‘박현주 펀드 2호’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박현주 신화’는 계속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인사이트 펀드의 수익률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펀드 운용 초기부터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박 회장은 “인사이트 펀드에 대해 지나친 고수익 환상을 갖는 것은 금물”이라며 “고수익이 날 수 있지만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양면성을 투자자들이 알아줬으면 한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출시 전 자신감에 차 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어쩌면 박 회장은 이때 ‘상투’를 잡은 자신의 실수를 알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결국 출시 1년 만에 인사이트 펀드는 고수익은커녕 반토막이 나버렸다. 투자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고 환매가 이어졌다. 미래에셋 측도 “가능성 있는 곳에 투자했을 뿐”이라며 ‘투자는 본인 책임’이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인사이트 펀드의 가장 큰 실패 원인은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주식에 ‘몰빵’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신흥국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박현주 회장과 미래에셋은 오히려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며 중장기 투자와 이머징마켓(신흥시장)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 또 인사이트 펀드와 관련해 “중간에 물타기(추가납입)를 했거나 2008년 바닥을 찍었을 때 가입한 투자자는 수익을 낼 수 있었다”고 한 것으로 알려져 다시금 투자자들의 분노를 샀다.
박현주 회장은 지난해 초까지도 여전히 투자자들에게 이머징마켓에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단기적으로 큰 부침이 있겠지만 겁먹지 말고 해외 이머징마켓 펀드와 국내 펀드의 투자 비중을 7 대 3으로 분산투자하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인사이트 펀드의) 종목 선정 능력은 상당히 우수하다. 나라도 지금 들고 싶은 상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박 회장의 인사이트 펀드는 중국, 브라질, 러시아 주식 비중을 줄이고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주식 비중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들에게는 이머징마켓 주식 비중을 늘릴 것을 권하면서 자신들은 그 반대의 행보를 보인 것이다. 박 회장과 미래에셋이 비판받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가 ‘단기 공격적 투자’다. 그런 박 회장이 ‘3~5년 중장기 투자’를 언급한 것도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미래에셋 관계자는 “펀드 수익률이 많이 회복된 상태이며 다른 회사보다 잘 운용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인사이트펀드와 박현주 회장을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였다.
박현주 회장은 2008년 7월 “부동산 시장은 이제 10년 하락기의 초입에 들어섰습니다. 장기적으로 적립식 펀드와 해외 펀드 등 금융자산의 비중을 늘려야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부동산 투자에 큰 관심을 보였고 부동산 투자를 하는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이 크게 성장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 관계자는 “박 회장이 말한 것은 주택용”이라며 “상업용은 투자가치가 있었고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은 상업용에 투자해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인 박 회장이기에 1월 2일 신문지면에 실린 글이 투자자들 입장에서 곱게 보일 리 만무다. 한 투자자는 “박 회장의 말을 더는 믿지 못하겠다”며 “수익률과 수수료 인하로 보여달라”고 말했다. 과연 내년 초엔 박 회장이 자신감 가득 찬 광고를 내보낼 수 있을까.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