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콘서트 열풍, 박원순 후보에 아름다운 양보…. ‘안풍’이 분 지 4개월째 안철수 원장은 묵묵부답 말이 없다. 정치권에서 이런 안 원장을 두고 ‘돌다리만 두드리다 끝난 고건’의 경우를 되새겨야 한다는 충고를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그럼에도 그에 대한 지지율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즉, 여론은 아직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치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인내심도 설을 지나면서 바닥을 드러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안풍’에 대한 구조조정이 설 이후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안 원장이 정치적 메타포(은유)를 차츰 쓰기 시작하면서 안철수 신드롬의 구름이 걷히고 하나의 일반적 정치현상으로 내려앉는 조정기를 거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안풍이 한 차례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진단이다. 물론 쉽게 꺼질 바람은 아니지만 지지세력 실체의 부재, 기회주의적 행보, 바람 같은 여론 등의 영향으로 국민들이 안철수 바람 뒤의 실체를 깨닫는 단계로 접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안철수 원장의 정치참여 혼란상, 그 막전막후를 들춰봤다.
최근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핵심 전략 관계자는 안철수 원장의 최측근이자 ‘대변인격’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인철 변호사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다고 한다. 가벼운 식사자리였지만 안 원장 측은 자신들의 ‘장래’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을 두루 듣는 듯 정치가 주된 화제였다고 한다. 지난해 안 원장이 강남 불출마를 선언한 것에 대한 ‘복기’도 있었다고 한다.
소장파 관계자는 강 변호사의 강남 불출마 선언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나 같으면 강북에 출마했을 것이다. 그리고 ‘강남에는 안 원장의 최측근을 내세워 양동작전을 폈더라면 일석이조였을 것’이라고 조언해줬다. 안 원장은 강남 불출마를 선언하는 데 적잖은 고민을 했던 것 같더라. 강 변호사의 물음에는 너무 일찍 그 카드를 접은 데 대한 후회도 묻어 있었다”라고 말했다.
사실 안 원장의 ‘정치권 접촉’은 올해 초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권도전에 대한 결심을 내부적으로 굳히고 본격적인 ‘탐문’에 나섰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안 원장 측이 주로 진보계열 인사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해 벽두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민주통합당 김효석 의원과는 10여 년간 정보통신 일로 만난 뒤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와 김근식 경남대 교수 등으로부터는 사회 현상 및 남북문제에 대해 ‘수업’을 듣고 있고, 문정인 연세대 교수와도 교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놓고 안 원장이 본격적인 대권 도전에 나섰다는 해석도 있지만 대체로 ‘아직까지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인 것 같다. 그럼에도 안 원장이 주로 야권 및 진보계열 인사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권도전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상존한다.
이런 상황에서 안 원장 측이 한나라당 소장파와도 만남을 가졌다는 앞서의 이야기는 눈여겨볼 대목이다. 안 원장 측이 접촉했던 소장파 관계자는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도 핵심 전략가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소장파의 이론적 토대와 대응책을 개발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인사다. 안 원장 측이 소장파의 한 개인을 만난 게 아니라 소장파 대표성을 지닌 인물과 접촉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현재로선 안 원장이 민주통합당의 대권주자와 단일화 이벤트를 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예상이지만, 그 전 단계로 안 원장이 한나라당의 쇄신-소장파들과도 연대를 하는 보다 큰 틀의 정계개편을 구상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는 그가 평소에 “우리 사회를 진보-보수로 나눌 게 아니라 상식-비상식으로 나눠야 한다”는 말과 연결시켜 봐도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한나라당의 소장파들은 대부분 야권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학생운동을 한 경험이 있는 ‘합리적 중도보수주의자’라는 점에서 안 원장과도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정치공학적 해석’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안 원장의 최측근인 강인철 변호사를 만난 앞서의 소장파 관계자는 ‘안풍’에 대한 정치적 의미는 인정하면서도 ‘안철수’를 정치현장으로 끌어왔을 때 ‘한나라당 소장파-안철수 연대’는 꿈 같은 얘기라고 단언한다. 그는 더 나아가 안철수라는 정치적 아이콘의 대권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가 ‘안풍’을 평가절하하는 까닭은 안 원장이 현재 노정하고 있는 몇 가지 전략적 실책에서 기인한다.
먼저 안철수 원장은 그의 결단이 늦어질수록 안풍의 순수한 정치적 동력이 대권 도전을 위한 타이밍 재기로 왜곡되고 있다는 평가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소장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실 나는 안 원장이 정치를 할지, 대선에 도전할지 관심이 없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가 ‘안풍’을 도약대 삼아 한국 정치를 제대로 개혁해낼 수 있느냐에 있다”라고 전제하면서 “진짜 지도자는 주변 상황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의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안 원장은 왠지 의뭉해 보인다. 주식이 상종가일 때 팔고 싶은 것처럼, 그도 ‘안풍’을 이용해 가장 적확한 타이밍을 엿보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책임 있는 리더의 자세가 아니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안철수만의 방식으로 정치개혁을 위해 몸을 던지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내가 바라보는 것은 대선이 아니라 정치판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가 대선에서 자유로워질 때 안철수 바람의 진정성이 전달될 것이다. 그의 측근들이 정치권을 맴돌며 조언을 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안철수만의 비전이 없기 때문에 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여론 역풍에 확 나자빠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친이계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한때 대권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던 고건 전 총리도 큰 꿈을 꾸고 움직였다. 하지만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도 건너지 않는 소극적이고 몸을 사리는 기회주의적 행보 때문에 결국 실패하지 않았느냐. 안철수 원장이 고 전 총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력이 있긴 하지만,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의 것을 말하지 않고 바람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정치인들이 결코 바보가 아니다. 안철수만 바라보고 넋 놓고 있을 사람들이 아니다. 국민들의 인내심도 그리 기대할 바가 못 된다. 언제라도 돌아설 수 있다. 안철수에게 필요한 건 분위기를 살피며 타이밍을 재는 게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는 용기와 진정성”이라고 일갈했다.
사실 안 원장으로서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미국 출국에 앞서 기자들이 “정치를 할지 안 할지가 여전히 관심인데”라고 묻자 “열정을 갖고 계속 어려운 일을 이겨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상황이다. 어떤 선택이 의미가 있는지, (국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인지, 균형을 잡고 할 수 있는 일인지를 생각한다”라며 정치적 선택 어려움의 일단을 내비친 바 있다.
안 원장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또 다른 근거는 그를 지탱하는 정치적 지지그룹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든든한 국민들이 ‘빽’이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겠지만, 정치는 바람을 등에 업고 휘둘러대는 요술봉이 아니다.
현재 안 원장의 최측근이자 대 정치창구 역할을 하는 사람은 강인철 변호사다. 지난해 9월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장을 끝으로 옷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한 뒤 본격적으로 안 원장을 돕고 있다. 그는 현재 정치권 인사들을 두루 접촉하며 안 원장의 정치 참여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대 법대를 나온 강 변호사는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고시공부를 대충 하고 예상문제만 보고 합격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하다고 한다. 안 원장이 가장 믿는 최측근 중의 한 명인데 두 사람은 집안끼리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듯 안 원장 주변에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 온 ‘친구’들이나 IT 업계와 관련된 지인들이 포진해있을 뿐 정치와 관련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정치권 인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엄밀히 ‘우군’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를 두고 민주통합당의 한 초선의원은 “안 원장이 대권의 가능성은 있지만 대통령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신을 밀어줄 정치적 지지 세력의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 전략에 능통한 전문가들이 전무하다고 들었다. 현재의 참모들은 대부분 아마추어들이다. 정치 감각이 뛰어나고 순발력 있게 정무적 대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영입해야 대권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실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르면서 정당과 조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 안 원장에게 충고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항상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고루 갖춰야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은 공정과 헌신을 외치며 백면서생의 뛰어난 문제의식을 지녔지만 그것을 꿸 수 있는 상인의 현실감각은 없는 것 같다. 그 정치적 감각은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니다. 일정부분 타고나야 한다. 안 원장이 고민하는 지점도 스스로 ‘상인의 현실감각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때문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바람 같고 인내심 없는 여론도 ‘안풍’의 실체를 위협하는 요소다. 안 원장이 계속 애매모호한 화법으로 정치참여 시기만을 조절하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일 경우 대중들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소장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설 연휴가 지나면 분명 ‘안풍’에 대한 변곡점이 올 수 있다. 그건 세상이 요구하는 시점이다. 안 원장이 조율하는 게 아니다. 안 원장이 정치 선언 타이밍을 잡는 게 아니라 세상이 ‘이제 그만 나오라’고 요구하는 시점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게 설 이후가 될 것으로 본다. 이 과정에서도 안 원장이 계속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일 경우 안풍 자체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안 원장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진보성향의 언론인 손석춘 씨도 최근 이에 대해 “안철수 원장 본인이 대선 출마를 안 하겠다고 하면 국민들이 다른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태로 대선에 나올지 말지 어정쩡하게 간다면 안 원장도 국민도 불행해진다는 취지의 말이다.
안철수 바람은 ‘현재의 정치를 싹 바꾸라’는 국민들의 준엄한 경고다. 한국 정치사에서 안철수 원장 같은 정치신인이 불과 4개월 사이에 일약 대권주자로 떠오른 경우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 ‘기적’에는 ‘안철수는 안철수의 문법으로 말하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실패해왔던 정치인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이다. ‘우등생’ 안철수는 이제 그만의 모범답안을 써낼 때가 되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