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과 달리 여성이 여성 그룹 지지 드러나…소비력 갖춘 이모팬 득세, 팬덤 확장되고 산업 쑥쑥
걸그룹 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가 1위에 올라 있고, 그들이 앞서 발표했던 ‘러브 다이브’는 5위에 자리했다. 또한 하이브가 내놓은 신인그룹 뉴진스가 부른 ‘어텐션’(2위), ‘하이프 보이’(4위), ‘쿠키’(9위) 등이 톱10 안에 포진됐다. 이 외에도 블랙핑크의 ‘핑크 베놈’, 데뷔 15주년을 맞은 소녀시대의 ‘포에버 1’이 각각 3위와 6위다.
톱20으로 범위를 넓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걸그룹 있지의 ‘스니커스’가 11위에 랭크됐고, (여자)아이들의 ‘톰보이’가 13위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인 나연의 솔로곡인 ‘팝!’은 16위, 에스파의 ‘도깨비불’이 18위에 오르는 등 톱20 가운데 열한 자리의 주인이 걸그룹이다. 이쯤되면 다시금 ‘걸그룹 전성시대’가 왔다고 할 만하다. 왜일까.
#시의적절한 세대교체
적절한 세대교체가 그 이유 가운데 하나다. 막내 그룹 뉴진스를 비롯해 아이브, 에스파 등의 평균 나이는 채 20세가 되지 않는다. 특히 2004년~2008년생으로 구성된 뉴진스의 평균 나이는 16~17세 정도다.
통상적으로 성공한 걸그룹의 활동 수명은 6~7년이다. 표준계약서 상 소속사가 신인 그룹과 맺을 수 있는 최대 계약 기간은 7년. 그래서 7년이 되면 해체된다는 ‘7년차 징크스’가 있다. 톱10에 이름을 올린 그룹 가운데 맏언니는 단연 데뷔 15년차인 소녀시대다. 그들은 7년차 징크스를 훌쩍 넘어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뒤를 트와이스가 잇는다. 트와이스는 얼마 전 소속사와 재계약을 체결했고, 글로벌 걸그룹으로 거듭난 블랙핑크는 내년 재계약 시즌이 도래한다.
15년차 소녀시대, 6~7년차 트와이스와 블랙핑크, 1~2년차 아이브와 뉴진스가 톱10 안에 함께 이름을 올린 것은 주목할 만하다. 선후배 걸그룹들이 매끄럽게 배턴을 주고받는 모양새다. ‘수명이 짧다’는 편견을 딛고 소녀시대, 트와이스 등은 재계약까지 성사시키고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새롭게 이름을 걸고 도전장을 낸 후배 걸그룹들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
걸그룹의 세대교체는 팬덤의 손바뀜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녀시대의 데뷔 시절 그들을 응원하던 10~20대는 이제 2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이 됐다. 현재 아이브와 뉴진스를 응원하는 10대 팬덤은 소녀시대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이 태어나던 해가 소녀시대가 데뷔한 것을 고려하면 무리가 아니다. 결국 그들은 최근 등장한 걸그룹들을 응원하며 가요계로 유입된 새로운 팬덤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팬덤과 아이돌 그룹은 함께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 1990년대 후반 HOT, SES를 보며 자란 또래들이 어느덧 40대 초중반에 접어든 것처럼, 아이브와 뉴진스의 등장과 함께 새롭게 형성된 팬덤의 크기가 상당하다. 그들이 향후 또 다른 그룹들을 응원하면서 향후 10년 이상 가요계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라면서 “아이브와 뉴진스를 좇는 어린 팬들이 음원 차트에 이름을 올린 소녀시대나 트와이스의 노래를 들으며 그들의 팬으로 확장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카 응원하는 이모 부대
최근 걸그룹들이 급성장한 또 다른 배경 중 하나로 ‘이모 부대’의 득세를 들 수 있다. 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 발매 전 예약판매 비율은 알라딘 음반 홈페이지 기준, 여성이 68.7%, 남성이 31.3%다. 보이그룹은 여성 팬들이 좇고, 걸그룹은 남성 팬들이 좇는다는 통념을 뒤집은 결과다. 여성이 여성을 응원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여성 예약자 가운데 40대 여성이 25.4%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10대(22.4%)였다. 소비력을 갖춘 40대들이 어린 걸그룹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 40대들은 학창 시절 HOT나 젝스키스와 같은 보이그룹, SES와 핑클 등을 좇던 세대다. 이미 아이돌 팬덤 문화에 익숙하다는 뜻이다. 그들이 성장해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후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다시금 가요계로 눈을 돌리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조카뻘 되는 걸그룹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최근 뉴트로 열풍은 40대들이 젊은 아이돌에 열광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다. 뉴진스가 대표적이다. 이 그룹은 뉴트로를 전면에 내세웠다. 1990년대 가요의 분위기를 풍기며 향수를 자극한다. 기존 걸그룹들이 순수함이나 걸크러시를 통해 팬덤을 모았다면, 뉴진스는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걸그룹을 연상시키는 콘셉트로 차별화하고 있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넓게 보면 가요계의 팬덤이 확장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0대 걸그룹을 주로 10대들이 응원한다는 것은 철 지난 해석”이라면서 “걸그룹들의 수명이 길어지는 동시에, 팬덤의 연령 폭도 넓어지면서 결국 시장과 산업이 커지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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