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반복적 행위만 처벌 등 여성계 잇단 문제 제기…반의사불벌 규정 탓 합의 강요와 살인으로 이어져
9월 21일 서울 중부경찰서는 브리핑을 통해 피의자 전주환(31)이 징역 9년형을 구형받은 8월 18일 결심 공판 이후 범행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전주환이 재판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며 피해자를 원망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전주환의) 얘기가 그때그때 다르다”며 “만나서 빌어야겠다거나, 합의하거나, 여차하면 죽여야겠다는 등 복합적인 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살인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닌 만나서 빌어보고 합의해보려 했다면 이는 스토킹처벌법이 합의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의사불벌죄인 까닭에 피해자는 신고 이후에도 합의를 종용하는 협박과 회유에 시달리게 된다. 이로 인해 2차 스토킹범죄와 보복범죄가 이어지게 됐고, 결국에는 살인사건의 단초가 됐다.
#22년 만에 국회 통과
애초 법무부가 스토킹처벌법을 입법예고한 것은 2018년 5월인데 일부 수정을 거쳐 다시 입법예고가 된 시점은 2020년 11월 27일로 2년 7개월여의 시간이 더 소요됐다. 아무래도 그 이유는 일부 수정된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수정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피해자나 그 주거 등에서 100m 이내 접근금지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이 잠정조치에서 응급조치로 이동했다. ‘응급조치’는 검사와 판사를 거쳐야 가능한 조치인 ‘잠정조치’와 구분되는 경찰이 현장에서 직접 할 수 있는 조치다. 경찰서장이 검사를 거치지 않고 판사 승인을 받아 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판사 승인을 받을 수 없을 때에는 직권으로도 응급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스토킹처벌법 입법예고안이 일부 수정되는 과정에서 경찰 권한이 확대된 것이다.
검찰 권한이 축소된 것으로 보이지만 스토킹 범죄 재발 우려가 있을 때 행위자를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을 추가해 검찰 권한도 배려해 수정이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경찰 권한을 확대하는 동시에 검찰 권한도 배려하는 수준에서 일부 수정이 이뤄진 셈인데 2018년 5월 마련된 스토킹처벌법 입법예고안이 3년 가까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경찰과 검찰의 부처 간 이견에 있었다.
21대 국회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비슷하게 감지됐다. 21대 국회에선 2020년 6월부터 9월 사이에 모두 7건의 스토킹처벌법이 발의됐는데 이 가운데 3건의 발의자가 경찰 공무원 출신인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과 황운하, 임호선 민주당 의원이었다.
아무래도 스토킹 범죄는 급박한 대처가 절실한 터라 경찰의 빠른 현장 대응이 중요하고 이는 신속한 피해자 보호로 이어질 수 있어 일선 현장에서는 반기는 입법예고안 일부 수정이었다. 문제는 경찰과 검찰의 이견을 조율하는 데 집중하면서 다른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입법예고를 거친 ‘스토킹처벌법’은 2020년 12월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됐다. 그리고 국회는 2021년 3월 24일 본회의에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스토킹처벌법)을 통과시켰다. 경범죄 처벌법의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돼 처벌 수준이 ‘10만 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그쳤던 스토킹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부과할 수 있도록 바뀐 부분은 분명한 의미가 있다. 게다가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이용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로 형량이 가중된다. 1999년 5월 15대 국회에서 김병태 의원 등 13인이 처음 발의한 이후 무려 22년 만에 스토킹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실효성 없는 누더기 법안’
문제는 스토킹처벌법 제정을 강하게 주장해 온 여성계가 ‘실효성 없는 누더기 법안’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스토킹처벌법은 제2조(정의)에서 ‘스토킹 행위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하여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가~마’ 목으로 규정된 행위는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 서기 △주거 등 또는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기 △통신매체를 이용해 연락하기 △물건 보내기 △물건 등의 훼손 등이다. 또한 제2조 2항에선 스토킹 범죄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선 여성계는 ‘지속적 또는 반복적’이라는 표현을 지적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논평을 통해 “피해자는 단 한 번의 행위만으로도 공포나 불안을 느낄 수 있다. 공포와 불안을 느껴야만 피해로 인정하는 것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라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가~마 목으로 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를 규정한 점을 지적했다. “스토킹 행위 유형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방식으로 규정하는 경우, 열거되지 않은 행위를 처벌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게 당시 한국여성변호사회의 지적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라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 반의사불벌죄에 대한 지적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논평을 통해 “피해자의 입을 막는 반의사불벌 조항의 존속 등 현재 법률안으로는 피해자 보호와 인권 보장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이런 누더기 스토킹처벌법을 얻기 위해 22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역시 “스토킹처벌법이 반의사불벌죄라는 점은 큰 한계로 피해자가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하도록 협박·회유하거나 가족들 걱정으로 신고를 못 하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번에는 꼭 반의사불벌죄 폐지해야”
스토킹처벌법 국회 통과 당시부터 꾸준히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주장해온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KBS1라디오 ‘주진우라이브’와 인터뷰에서 “현재는 피해자가 합의를 해주면 사건이 그냥 유야무야 증발하게 돼있어 피해자가 고소해도 취하해 주면 사건화가 안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피해자를 협박하고 못살게 굴고, 결국 취하를 안 해주면 앙심을 품고 살해하기에 이르는 식”이라며 “이번에는 꼭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해야 한다. 그것부터가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9월 15일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폐지 법률 개정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스토킹 관련 법 제도 보완 주문에 따른 조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9월 19일 오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반의사불벌죄를 즉각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며 “곧 입법예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법무부는 2차 스토킹범죄와 보복범죄 예방을 위해 가해자에 대한 위치추적 신설 등 피해자 보호 강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한 대검찰청에 스토킹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을 지시했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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