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부터 ‘헤어질 결심’ 윤심 반영한 기획작품 시선…이준석 입지 위축 후폭풍 크지 않을 거란 전망 우세
#‘윤심’ 반영된 기획작품?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당무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며 이준석 전 대표와 관련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윤 대통령 측이 이 전 대표에 대해 신뢰를 상실한 상태라는 건 정치권의 한목소리다. 이 연장선에서 이 전 대표에 대한 집권여당 대응이 나오고 있으며, 당 중앙윤리위도 이러한 여론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게 ‘윤심 개입설’을 말하는 이들의 논리다.
근거를 찾는 작업을 오래 할 필요도 없다. 윤 대통령이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에서 이 전 대표를 ‘내부총질하는 사람’으로 규정한 것만 봐도, 윤심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게 국민의힘 상당수 현역 의원들의 분석이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이들의 말을 빌려보면 이 전 대표에 대한 신뢰는 이미 지난 대선 과정에서 깨졌다.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은 물론, 당 소속 의원, 선거 캠프 인사들과 공개적으로 갈등을 빚으며 두 차례나 당대표직을 사실상 내려놓고 가출 소동을 벌인 바 있다. 그때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추락했고, 윤 대통령은 큰 낭패감을 맛봤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멘토’로 꼽히는 신평 변호사는 이 같은 윤 대통령의 속마음을 확인해준 바 있다. 신 변호사는 8월 19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처음부터 얕봤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이 전 대표가 ‘당신(윤 대통령)은 토론회 한두 번 하면 나가떨어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한 것들이 많이 있지 않느냐”며 “‘정치인으로서 너는 별로 자격이 없다’ 하는 그런 하대 의식에서 나온, 어떤 면에서는 예의를 어긋난 언행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도 ‘이 사람은 안 되겠다’는 그런 판단을 하셨다”고 했다.
대선 과정에서의 실망이 끝은 아니었다는 또 다른 전언도 나온다. 지난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가 국민의힘 승리로 끝나면서 선거 국면이 종료되고, 윤 대통령 중심의 국정 국면이 시작됐는데도 불구하고 이 전 대표는 자신의 그립을 놓지 않았다. 때문에 당의 분란을 키운다는 지적을 계속해 받아왔다.
지방선거 직후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을 이끌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해 친윤그룹 맏형 격이었던 정진석 현 비대위원장이 ‘자기 정치’라고 비판하자 이 전 대표는 정 위원장에게 격하게 대응하며 설전을 벌였다. 또한 이 전 대표는 지방선거 바로 다음 날에는 ‘당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켜 공천룰을 손보는 등 정당개혁 작업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차기 당대표의 공천 권한에 숟가락을 얹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윤 대통령 측이 이 전 대표와 이별하기로 한 결심을 지난 6월 30일 공식화된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본다. 당시는 이 전 대표의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관련해 당 윤리위 심사가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다. 이 전 대표 비서실장을 맡았던 박성민 의원이 이날 전격사퇴를 선언했다.
박성민 의원은 대표적인 친윤계로, 윤 대통령과 친분은 오래됐다. 윤 대통령이 2014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에 대한 항명으로 대구고검에 좌천됐을 때, 울산 중구청장이었던 박 의원과 인연을 맺은 이후 교류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인연을 보면 박 의원의 행보에 윤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대표 비서실장에 임명될 때도 박 의원이 이 전 대표의 직 제안을 여러 차례 고사했는데, 윤 대통령이 직접 박 의원에 전화를 걸어 비서실장직 수락을 요청하며 성사됐다. 대선 이후 약 3개월여 동안 박 의원은 당대표 비서실장으로서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 간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박 의원이 돌연 사퇴,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를 결국 ‘손절’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박 의원은 이 전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에도 동행했었지만,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의 관계 복원이 어렵다는 것을 최종 확인한 뒤 행동에 나선 것으로 추측된다.
#이준석이 자초한 자승자박?
정치권에서 비록 ‘소수 의견’이기는 하지만 윤심이 작용했든 아니든, 이준석 전 대표가 스스로 파놓은 무덤에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야당보다 더 거친 언사를 친정에 쏟아내고, 툭하면 소송까지 하는데 가만 놔둘 정당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내놓는 쪽에서는 이양희 윤리위원장을 주목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 위원장은 이 전 대표가 지난해 10월 임명했다. 그럼에도 이 전 대표에 대해 강한 압박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면, 원칙론자인 이 위원장 차원에서 징계가 강화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위원장과 이 전 대표는 오래전부터 면을 익혔다. 그는 2011년 말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이 이끌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에 외부인사 6명 중 한 명으로 들어오면서 국민의힘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26세의 이준석 전 대표도 비대위원으로 참여했다. 둘은 비대위 동기인 셈이다.
이처럼 과거부터 잘 아는 사이인 만큼 이 위원장의 원칙론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또한 당대표를 징계한 전례가 없는 만큼, 여러 구실을 대며 징계 국면을 피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잇따라 정면 돌파를 선택하고 있는 것은 이 위원장의 ‘개인적 특성’과 연관시켜 봐야 한다는 견해다. 정에 약한 한국적 정서를 버리고, 외국에서 오래 공부한 이 위원장답게 드러난 현상과 있는 대로의 규정으로만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7선 의원 출신 야권 정치인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의 딸이다. 미국 조지타운대 불어불문학과에서 학부 과정을, 미주리대 특수교육학과에서 석사·박사 과정을 마친 유학파다. 2014년 한국인 최초로 유엔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돼 지난해까지 활동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9월 18일 이 전 대표에 대한 추가징계 절차를 개시하는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당원, 당 소속 의원, 당 기구에 대해 객관적 근거 없이 모욕적, 비난적 표현을 사용하고, 법 위반 혐의 의혹 등으로 당의 통합을 저해하고 당의 위신을 훼손하는 등 당에 유해한 행위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가 최근 기자회견과 인터뷰 등에서 윤 대통령 및 윤핵관을 비판하며 ‘개고기’ ‘양두구육’ ‘신군부’ 등 발언한 것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가 당의 질서를 흩트리는 행위를 해, 윤리위가 나서야 한다는 판단을 이 위원장이 분명히 내린 것으로 읽혔다.
정치권 전반에서 앞 다퉈 윤리위를 강화하고 있는 점도 국민의힘 윤리위의 독자 판단이라는 해석과 그 궤를 같이한다. 실제 국민의힘은 당 혁신의 일환으로 윤리위를 당내 사법기구 수준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왔고,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을 두고 부적절한 발언을 한 이상훈 서울시의원에 대해 ‘6개월 당원자격 정지’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윤리위는 9월 22일 입장문을 통해 “윤리위의 활동에 대해 객관적인 근거 없이 ‘윤핵관’, 수사기관 등과 결부시켜 여론을 조장하는 행위가 있다”고 말하며, 윤리위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의 개입설을 일축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윤리위는 이 전 대표가 당을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당헌·당규에 따른 당내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와 행위를 배격하는 것으로 비친다”며 당에 대한 이 전 대표의 잇따른 소송전도 징계사유 대상임을 밝혔다.
#이준석 내친다면, 후폭풍은?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 전 대표가 이미 ‘6개월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만큼 추가적 징계가 있다면 ‘제명’ 이외 다른 선택지는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부 의원들이 마지막 정치적 해법을 촉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전 대표에 대한 불신이 워낙 큰 데다 이 전 대표도 강경책을 거두지 않을 것으로 보여 막판 대화합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결국 이 전 대표는 9월 28일로 예정된 윤리위 전체 회의를 통해 당에서 내쳐지는 초강력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이후의 후폭풍으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일단 이 전 대표는 최근까지 해왔던 것처럼 결사항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에 대한 폭풍 비판과 함께 징계처분에 대한 송사를 이어갈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 전 대표에 대한 여론의 피로감이 갈수록 쌓이고 있어, 이 전 대표의 장기전 수행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 전 대표가 특기인 여론전을 계속 펴면서 법적 소송을 이어가는 한편, 신당 창당까지도 선택지에 넣어야 하지만 이 전 대표의 활동 공간이 그리 넓지 못하다는 것이다.
“징계 후폭풍이 태풍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을 이탈시키는 힘을 발휘, 새 정치세력을 규합하는 방법으로 국민의힘을 정치적으로 흔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전 대표 곁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준석 파동은 후폭풍을 낳기는 하겠지만 미풍으로 마무리돼 여당의 내홍도 곧 수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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