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리에서 허락이 된다면 꼭 제대로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홍보사에 그렇게 요청 드렸었는데 다행스럽게 받아들여 주셔서 사죄의 말씀을 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에 연루되지 않도록 더 모범되고 사려 깊게 살겠습니다.”

지난 2년 반이라는 시간은 하정우에게 있어 '인고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을 촬영하던 때와도 맞물리던 시점이다. 돈에 쪼들리던 시절, 같은 집에서 함께 지냈다는 이유로 “너희 사귀냐?”는 질문을 받았던 그의 단짝(?)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가 다섯 번째로 호흡을 맞춘 이 작품은 공개 후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공개 2주차에 전체 시청시간 순위 2위, 비영어권으로 한정하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재기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하정우에겐 여러 가지로 복잡한 감정이 들게 하는 작품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당시 제 현실이 너무 힘들었지만 촬영할 때만큼은 숨통이 트였던 것 같아요. 강인구란 인물에 몰입하면서 제 현실을 잊을 수도 있었고, 힘을 얻기도 했고요. 그걸 통해서 제가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어요. 그때의 내 몰입도가 이랬었지, 그 초심을 찾았다는 느낌으로. 그래서 아마 제가 쉽게 인구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인구를 보고 있으면 집중하고 몰입했던 그때가 떠오르거든요.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제가 맡은 캐릭터를 바라보고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그 초심을 다시 찾은 것 같아서 그것만큼은 너무 좋았어요. 그 수혜는 아마 제 차기작인 '피랍'이 보고 있을 겁니다(웃음).”

“원래는 8년 전에 이 이야기를 개발하고 있던 프로듀서한테 처음 작품에 대해 들었죠. 누구와 함께 작업하면 좋을까 찾다가 집 가까운 윤종빈 감독한테 물어봤어요. 처음엔 영화로 제작하려 했는데 윤 감독님이 보시더니 2시간 반으론 이야기를 다 담아낼 수 없을 것 같다며 거절하시더라고요. 그러고는 '공작' 찍으러 갔죠(웃음). 그러다 나중에 다시 이걸 시리즈물로 하면 재밌을 것 같다고 해서 제작하게 된 거예요. 시작과 동시에 '인구 역은 형(하정우)이 하고, 전요환은 (황)정민이 형이 하면 좋겠다'는 세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게 됐죠.”
'언더커버'를 다루는 장르가 거의 그렇듯 강인구 역시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요환이 내미는 돈의 유혹도 그렇지만, 목숨을 내놓고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데도 임무의 비밀 유지 탓을 대며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국정원에 대한 불신과 서운함 때문에라도 그의 내적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강인구는 마지막까지 '선한 결정'을 해냈고, 이 지점은 하정우가 꼽는 강인구의 매력 중 하나가 됐다.

강인구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대립하는 마약왕 전요환 역으로 분한 황정민은 하정우와의 오랜 인연과 달리 실제 작품에서 만나게 된 것은 '수리남'이 처음이었다고. '무섭고 다혈질인 형'이었다는 첫 인상에서 점점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살갑고 따뜻하며 배려심 있지만 다혈질인 형'으로 인상이 변했다는 황정민에 대해 하정우는 “현장에서 늘 세심하게 다른 배우들을 봐 주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황정민) 형이랑 같이 작품을 못 했나 싶어요. 그러다 시간이 흘러서 '수리남'에서 만났을 때, 이제까지 서로가 가지고 있던 기대감과 정 같은 것들이 우리가 함께 생활하고 작업할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됐죠. 정민이 형은 정말 배려심이 넘치는 분이에요. 나이나 경력을 떠나서 모든 배우들을 존중하죠. 제가 실수를 하거나 연기 표현법이 서툴 때, 형은 '너 그거 잘못 됐어'라고 하지 않고 '어떻게 연기한 거야?'라고 말을 시작해요. 그런 면을 보면 형이 참 다혈질이시지만 섬세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황정민과 함께 작업하는 꿈을 이뤘다"는 '수리남'을 시작으로 하정우는 다시 숨 가쁜 다작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최근 촬영을 마친 영화 '피랍'과 함께 하정우는 '1947 보스톤' '야행' '하이재킹' 등의 공개와 촬영을 앞두고 있다. 한편으로는, 잔뼈 굵은 배우로 터를 닦아온 가운데 감독으로도 한 번 연출의 맛을 봤던 만큼 '감독 하정우'의 작품도 또 한 번 기대해 볼 법하지 않을까. 이에 하정우는 “이미 '허삼관'으로 (감독으로서는) 안 된다는 걸 단번에 깨달아서 안 된다”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감독은 제 스타일이 아니더라고요(웃음). '허삼관'으로 한번 상업 영화 (연출) 맛을 보긴 했지만 '나는 그냥 롤러코스터 같은 작품, B급 마이너 같은 작품을 해야 하는가 보다'라는 걸 깨달았죠(웃음). 사실 이제까지 '1번 주연'을 맡아 오면서 제 몫을 해 왔던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더 새롭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게 이제부터 제 숙제죠. 어떻게 해야 지루하지 않게 작품을 해 나갈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은 지금도 제가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어쨌든 영화라는 비즈니스는 재미있어야 관객을 많이 만나고 관심도 많이 끌 수 있으니까요. 대단한 생각은 아니지만 영화 전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걸 선택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