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촬영 현장.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
지난해 방송가를 발칵 뒤집었던 배우 한예슬의 녹화 거부 사태. 당시 기자회견을 연 KBS 드라마국 고위 관계자는 “한예슬이 대본에 있는 장면에 대한 거부와 수정 요구들이 있어 그것을 수용하거나 조정하며 대기 시간이 길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 외의 이유로 대기 시간이 길어진 일은 한 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한예슬이 CF 촬영이 있으면 촬영 시간을 빼 주고, 대본에 나온 ‘몸 개그’ 장면을 못하겠다고 하면 수정해 줬다”며 한예슬이 촬영장 무단이탈, 촬영 거부와 대본 수정 요구를 했다는 증언과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사태를 바라본 수많은 연예계 관계자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내 드라마 및 영화 촬영 현장의 여건이 좋지 못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그래도 감독이나 PD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왔다. 하지만 스타가 촬영 현장의 주도권을 쥐면서 작품이 산으로 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당초 상반기 방송될 예정이었던 한 드라마는 배우 A의 욕심 때문에 편성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몇몇 작품이 성공을 거둔 후 A는 현장에서 ‘A 감독’이라 불릴 정도로 고집을 부리곤 했다.
이 드라마에서 A는 당초 특정 캐릭터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A와 대립각을 세우는 역할로는 배우 B가 이미 출연을 결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A가 갑자기 B의 캐릭터를 맡고 싶다고 하며 판을 흔들기 시작했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A를 잡길 원하는 제작진은 B의 소속사 측에 양해를 구했으나 이미 마음이 상한 B는 출연을 고사했다. B의 출연 고사 소식에 행여나 자신이 난처해질 것을 우려한 A까지 출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오랜 기간 촬영을 준비해 온 드라마 제작진만 공중에 붕 뜨고 말았다.
이 드라마의 한 관계자는 “A 의 행태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언젠가 큰코다칠 것이다”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드라마 현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곤 한다. 일명 ‘영화인’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그들은 출연진과 제작진 등이 철저히 선후배 관계로 규정된다. ‘◯◯◯ 씨’라는 호칭은 사라지고 감독조차 자신보다 경력과 나이가 많은 배우에게 ‘◯◯◯ 선배님’으로 깍듯이 대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영화 밥을 오래 먹은 몇몇 스타급 배우들은 간혹 감독의 역할까지 넘보곤 한다.
한때 충무로 보증수표로 불렸던 배우 C와 D. 두 사람은 뛰어난 연기력에다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친근한 이미지를 쌓으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름값이 높아질수록 현장에서 목소리도 커져 제작진을 당황하게 만들곤 했다.
C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현장에서 감독에게 대본 수정을 요구하는가 하면, 콘티에 나온 구도까지 바꾸며 자신의 모습이 더 부각되도록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게다가 주연 배우로서 영화 개봉을 앞두고 홍보 활동에 참여한다는 상식조차 지키지 않아 C와 함께 작업한 제작진이 냉가슴을 앓으며 고충을 토로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D 역시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쇠고집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촬영 현장에 나오지 않는 게 다반사였다. 이를 보다 못한 현장 스태프와 마찰을 빚은 적도 있다. 결국 지금은 D를 찾는 감독도 제작사도 거의 없다. D의 매니지먼트를 맡기 위해 선뜻 나서는 연예기획사도 없어서 현재 연기 활동을 쉬고 있다. 얼마 전까지 D를 담당했던 매니지먼트 대표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계약을 했다. 하지만 제멋대로 구는 버릇은 그대로더라. 성토하는 제작진을 달래기 바빴다. 결국 계약 시간을 채우기도 전에 계약을 해지했다”고 밝혔다.
▲ 영화 <완득이> 촬영 현장으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
그는 ‘완득이’를 촬영하는 동안 감독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현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완득이’의 타이틀 롤을 맡은 유아인 역시 김윤석의 연기 지도를 받은 덕에 2011년 충무로가 재발견한 신인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다. 아울러 2002년 <연애소설> 이후 별다른 히트작을 내지 못하고 있던 이한 감독 역시 확실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완득이>의 관계자는 “이 영화는 배급사조차 250만 관객 동원을 목표로 했지만 2배가 넘는 관객을 모았다. 그 중심에는 단순히 출연 배우 수준을 넘어 깊은 애정을 갖고 영화 전반에 관심을 기울인 김윤석의 노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몇몇 배우들은 실제로 감독이 되기도 한다. 유지태는 단편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초대> 등을 연출한 데 이어 올해 <소년, 산세베리아 꿈을 꾸다>로 장편 영화에도 데뷔할 예정이다. 구혜선 역시 2008년 단편 <유쾌한 도우미>로 그해 부산 아시아단편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장편 <요술>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복숭아 나무>라는 영화를 연출하며 배우 조승우를 캐스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유지태와 구혜선은 배우로 작품에 참여할 때와 감독으로서 메가폰을 잡을 때의 역할 구분을 명확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촬영 현장에서 각자의 몫이 다르기 때문. 한 영화 관계자는 “배우가 섭외에 응했을 때는 이미 감독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현장에서 감독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제작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고 꼬집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