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NK 인터내셔널 주가조작 사건 파문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야권은 이번 사건의 몸통으로 박영준 전 차관을 지목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청와대가 씨앤케이 주가조작과 관련해 첩보를 입수한 것은 지난해 1월 중순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음은 당시 민정팀에 올라온 ‘씨앤케이 파일’의 주요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카메룬에서 다이아몬드를 개발하는 씨앤케이 주가가 2010년 12월부터 2011년 1월 사이 급등함. 외교부에서 씨앤케이가 최소 4억 2000만 캐럿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개발권을 획득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 그 이유. 그런데 사업 자체가 불투명하고 매장량이 의심스러움. 씨앤케이 임원들이 차익을 실현함. 이 과정에 관련 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개입한 흔적이 보이는데 특히 ‘박영준 차관’을 체크할 필요가 있음. 주식시장에 무성한 ‘박 차관 관여설’이 주가급등을 견인하고 있음.’
청와대는 2월 초부터 씨앤케이의 다이아몬드 개발과 주가급등에 박 전 차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확인에 나섰다. 그 결과 박 전 차관이 2010년 5월 민관 고위급 대표단 카메룬 방문, 같은 해 10월 지식경제부 카메룬 포럼 등에서 씨앤케이의 다이아몬드 개발권 계약을 적극 요청한 사실을 파악했다. 또한 오덕균 씨앤케이 대표가 지인들에게 “박영준 차관이 뒤를 봐주고 있다”며 자랑하고 다녔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한다.
민정팀은 조사를 마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여기엔 ‘박 차관의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민정팀 관계자는 “박 전 차관의 구체적인 비리를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현직 차관이 특정업체를 밀어줘 특혜설이 불거졌다는 것에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사퇴 요구를 받은 박 전 차관은 완강히 버텼다. 당시 박 전 차관은 “모든 것이 나를 음해하기 위한 루머”라며 반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박 전 차관 측은 “나를 건드리면 VIP에게도 이로울 것 없지 않느냐”며 ‘반 협박조’로 청와대에 압력을 가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박 전 차관이 (사퇴) 결심을 해야 한다는 게 우리 입장이었다. 그런데 박 전 차관이 억울하다며 절대 이대론 물러날 수 없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다소 불쾌할 만한 일이 있었던 것은 맞다. 그렇다고 현 정부 최고 실세 중 한 명이었던 박 전 차관을 억지로 끌어내릴 순 없는 노릇 아니냐”고 귀띔했다.
무소속 정태근 의원도 최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내가 지난해 2월 말 청와대 고위관계자에게 씨앤케이 문제를 제기했었다. 그러자 그 청와대 관계자가 이미 조 사를 했고 그 문제와 관련, 박영준 차관이 곧 경질될 것이란 말을 들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전 차관을 겨냥했던 것은 청와대뿐만이 아니었다. 금융감독원도 씨앤케이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지난해 3월부터 자체 조사에 들어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금감원 안팎에선 당시 조사가 부실하게 이뤄졌을 뿐 아니라 외압이 있었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통상 주가조작 사건은 길어야 세 달을 넘기지 않는다. 그런데 씨앤케이의 경우 9개월 이상을 끌었다. 더군다나 조사 도중이던 7월경 씨앤케이 담당이자 계좌추적에 일가견이 있는 정 아무개 팀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인사이동이 되었다. 이런 것을 종합해봤을 때 씨앤케이 조사는 극히 이례적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역시 금감원과 비슷한 시기에 내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검찰총장 직속부대인 대검 중수부 산하 범죄정보기획관실이 박 전 차관의 씨앤케이 연루설에 대해 광범위하게 자료들을 모으며 확인 작업에 나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청와대·검찰·금감원 등 내로라하는 기관에서 ‘타깃’으로 삼았던 박 전 차관은 지난해 5월 16일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 뜻을 내비쳤다. 청와대 민정팀으로부터 내사를 받은 지 4개월여 만이다. 이를 놓고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박 전 차관이 (씨앤케이와 관련해) 문제가 불거지자 4개월 동안 주변정리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사정기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박 전 차관 주변을 캐기 시작하자 당시 여권 내부에선 씨앤케이가 개발 중인 다이아몬드를 빗대 ‘이번엔 다이(die)야’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었다. 정권 출범 이후 끊임없는 구설에 휘말리고도 ‘청와대→총리실→지식경제부’를 거치며 건재를 과시했던 박 전 차관이 ‘다이아 게이트’는 극복하기 힘들 것이란 얘기가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박 전 차관이 청와대 사퇴 압박까지 물리치며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 스스로 물러나자 정가에서는 ‘역시 왕의 남자’라는 평이 뒤를 이었다.
민주통합당은 ‘다이아 게이트’를 이명박 정부 6대 비리 중 하나로 규정하고, 현재 박 전 차관 개입 여부를 집중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여권에서조차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비상대책위원회의 한 위원은 사석에서 “주가조작으로 피눈물을 흘린 ‘개미’ 투자자들을 생각해봐라.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3부(윤희식 부장검사)에 배당하고 엄정한 수사를 당부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박 전 차관도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고 털어놨다. 검찰의 수사 방향은 세 갈래로 나뉘어 진행될 전망이다.
우선 박 전 차관이 외교부의 보도자료 작성 및 발표에 관여했는지 여부다. 지난 1월 26일 감사원은 “박 전 차관과 김은식 대사가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일부 협의를 한 정황은 있었다”며 검찰에 자료일체를 넘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박 전 차관은 “보도자료를 내는 날 아침에 김 대사가 카메룬에서 대통령 사인이 났다고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는 얘기를 전화로 해줘서 ‘잘됐네’ 하고 끊은 게 전부이며, 2차 보도자료를 낸다는 것은 아예 알지도 못 했다”고 반박했다. 박 전 차관은 감사원 측에도 “에너지를 총괄하는 김 대사와 일상적인 업무 이상의 대화는 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검찰은 오덕균 대표가 주가 급 등에 따른 차익 실현으로 거둔 800억 원 상당의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도 들여다 볼 계획이다. 앞서의 중앙지검 관계자는 “오 대표가 로비자금으로 썼거나 혹은 아예 처음부터 차명계좌를 통해 특정인에게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검찰은 씨앤케이 본사 사무실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회계장부 분석에 공을 들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검찰은 지난해 복수의 사정기관들이 박 전 차관 연루설과 씨앤케이 주가조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은밀히’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검 중수부의 한 고위 인사는 “씨앤케이로부터 이득을 본 세력들이 은폐하려 하지 않았겠느냐. (사건을 덮으려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던 정황들이 일부 포착됐다”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탐사만 한 것도 죕니까’
씨앤케이인터내셔널(CNK)의 주가조작 의혹을 둘러싼 파장이 청와대와 여권 실세들에게 번지고 있는 가운데 이 사건의 불똥이 참여정부로 튈 조짐이 일고 있어 또 다른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책임론에 먼저 불을 지핀 사람은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이다. 박 의원은 1월 19일 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업체인 CNK인터내셔널의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카메룬 다이아몬드 사태는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난 정부에서 카메룬 다이아몬드의 경우 해외로 갖고 나갈 수도, 유통시킬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업을 추진했다”며 “탐사권을 따내는 과정에서 블랙머니(음성적으로 유통되는 돈)가 들어갔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이어 “이명박 정부가 2010년 노무현 정부를 이어받아 채굴권을 따냈고, ‘뻥튀기’로 주가를 조작했다”며 “각 정권에서 국민을 속이고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다이아몬드 사업이 추진됐고, 탐사권획득 과정에서 유관기관 및 당시 정부 인사들의 석연찮은 연루 가능성 및 검은 돈 개입 의혹을 뒷받침하는 박 의원의 주장은 정치권에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 의원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우선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 사업이 노무현 정권 때부터 진행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2007년 초 한 언론은 “카메룬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탐사하기 위한 한국-카메룬 합동조사팀이 카메룬 요카도우마 동남측 70㎞에 있는 모빌롱지역에서 다이아몬드를 함유하고 있는 광체를 발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C&K Mining(CNK 전신)의 요청을 받고 당시 광물탐사 지휘를 담당한 사람은 충남대 김원사 교수였는데 당시 현지에서는 C&C Mining의 카메룬 정부회사인 CAPAM 소속 노동자들이 수작업으로 다이아몬드를 채취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C&K Mining은 카메룬 정부회사인 KAPAM과 한국기업인 C&C Mining이 합자해 설립한 회사다.
당시 김 교수는 “이 곳에서 다이아몬드가 성공적으로 양산될 경우 원석을 국내로 들여와 가공하여 국내 수요를 충당할 뿐 아니라 수출도 기대할 수 있다. 국내 보석산업을 활성화시키는 획기적인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개발에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일까. 당시 정부는 다른 자원외교 사업과는 달리 다이아몬드 광산개발과 관련된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 사업성을 담보할 수준의 매장량이 아닐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박 의원의 주장에 대한 비난도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다이아몬드 탐사 자체가 아니라 주가조작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참여정부 당시 다이아몬드 탐사를 운운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통합당은 이 사건을 ‘다이아몬드 게이트’로 명명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