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야의 아이콘’ 장기표 국민생각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정치권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지난 1월 26일 오후 2시 박세일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각 시·도당 위원장들에게 임명장을 ‘바삐’ 수여하고 있었다. 사무실 정리도 하루 전에야 다 됐을 정도로 국민생각의 창당은 시간과의 싸움으로 보였다. 장기표 공동 위원장은 전날 부산을 방문하고 밤 늦게 귀경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발로 뛰며 국민생각 공중부양에 나선 모습이었다.
―몇 십 년 동안 목숨처럼 간직해온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박세일이라는 보수의 아이콘과 결합했는데, 이는 변절 아니냐.
▲박세일 위원장과 가까운 분들은 ‘장기표 빨갱이 아니냐’며 심하게 반대를 했다고 한다. 내 주변에서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거부반응이 심했다. 실제로 정책 차이도 많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보수-진보세력과는 다르다. 그 사람들은(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 정치적 이익에 따라서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이익이 일치되지 않으면 대화와 협상이 잘 안 된다. 선거 때만 되면 그동안 지켰던 원칙은 포기하고 정략적으로 움직인다. 사이비 보수-진보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나라를 위해서 공감대가 있고 어떤 때는 상대방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그 차이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
―현역 의원 30명 영입을 목표로 내걸었는데.
▲몇 분들은 집중적으로 교섭 중인데 그 사람들이 우리가 당긴다고 오지 않는다. 상황이 객관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어제 부산에 가서 (친박계 중진) 모 의원을 만났다.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이제는 의미 있는 정치를 해보라’고 했다. 내 말에 동의는 하지만 상황이 성숙되어야 한다고 하더라. 움직이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이 의원은 국민생각 입당 전제조건으로 특정인사와는 같이 할 수 없다는 강한 뜻을 피력했다고 한다. 국민생각의 한 관계자는 그가 이재오 전 특임장관이라고 귀띔해줬다).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나는 적과의 동침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약간의 갈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같은 당에도 무수한 갈등이 존재하는데 그런 거 때문에 함께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이 전 장관 만나서 무슨 얘기 나눴나.
▲이 양반도 정치할 만큼 했는데 한나라당을 통해서는 잘할 수 없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이미 국민으로부터 버림 받았다.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부터 문제다. 외부 인사를 왜 데려오느냐. 자정능력이 상실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실상 사형선고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맨날 자중하라고 불끄기에 바쁘다. 지금 박근혜 쇄신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박 위원장의 무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앞으로 비대위가 해체되면 결국 도로 한나라당이 된다. 더 나아가 박근혜 당이 된다. 이대로 가면 박 위원장은 집권 못 한다. 한나라당의 원죄 때문에 집권 못하는 정당이 될 것이다. 그런 체제에 왜 이 전 장관이 계속 눌러 앉아 있어야 하느냐. 당장 나오라고 했다.
―이 전 장관이 나올 확률은.
▲그렇게 말하니까 중진이고 입이 무거운 사람이니까 대답을 하지 않더라. 그런데 요즘 솔직히 이 전 장관이 좀 흔들리는 것 같던데.
―어떤 면에서 그런가.
▲고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더라. 지난 번 김종인 비대위원의 이명박 대통령 탈당 파동 때 한나라당 의원들이 하도 조용히 있기에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내가 한마디 했다’고 하더라. 이 전 장관도 속으로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느냐. 그래서 내가 ‘거기 따라다니면 뭐 할 거냐. 우리나 도와주지. 박세일 위원장도 좋아하고 장기표도 무능하지만 생각이 잘못 된 사람 아니니까 빨리 나와서 도와주지’ 그랬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김윤환 의원 등이 민국당을 창당했다가 실패한 전례를 참고해야 할 것 같은데.
▲공천 탈락자들 집합소라는 둥 이삭줍기라는 둥의 평가는 좀 섭섭하다. 그래서 전직 의원들이 실제로 초기 단계부터 함께 의논하고 많이 노력했지만 창당 발기인에는 전직 의원 딱 한 분 들어갔다. 김경재 씨 한 분만. 역량이 부족하다는 소리 듣더라도 참신한 정당 창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스로 변절이라 생각하나.
▲전혀 아니다.
―그럼 변신인가.
▲아니다.
―장기표는 똑 같다?
▲그렇다. 내가 여기 와서 사회민주주의를 관철하려고 온 것이지 포기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박 위원장의 공동체 자유주의는 내가 볼 때 시대에 안 맞는 것인데 내가 따라가는 게 아니고 사민주의를 접목, 관철시키려는 것이다.
―국민생각 창당이 자칫 그동안의 순수했던 재야 활동 경력에 흠집이 날 수도 있다. 그 순수한 뜻만은 왜곡되어선 안 된다고 본다.
▲내 스스로가 재야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삶을 훼손하는 것은 얻는 것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안 한다고 굉장히 다짐한다. 나는 회고록을 쓰는 다짐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그것을 쓸 때 떳떳하게 할 말이 있어야 한다.
장기표 대표는 이후 월남파병을 포함한 3년간의 군대생활을 말 그대로 ‘FM’(Field Manual:야전교범)대로 한 얘기를 장시간 이어갔다. 제대 두 달을 앞두고 유격훈련을 자원해서 간 에피소드도 있었다. 훈련을 받으면서 지은 시 마지막 구절은 ‘두 달이면 영광의 제대인데 유혹의 길을 걸을 순 없다’라는 것이었다. 정치 말년에 선 노병의 마지막 유혹이 ‘총선용’ 국민생각이 아니길 기대해본다. 그게 묵묵히 한 길만을 걸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장기표의 마지막 충성이니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