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에이징 커브 느꼈지만 극복 안 되더라…두산에서 행복한 기억 안고 떠나”
경희대를 졸업한 오재원은 두산 입단 당시 2차 9라운드 전체 72순위로 가장 마지막에 이름이 불린 선수였다. 그러나 프로 데뷔 후 세 차례(2015, 2016, 2019년)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태극마크를 달고 뛴 대표팀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두산 팬들한테는 절대적인 지지와 응원을 받지만, 타 팀 팬들한테는 비호감과 악동 이미지였던 오재원. 그만큼 팀과 승리를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이 지금의 오재원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퇴식을 앞두고 오재원을 만나 은퇴에 대한 소회와 그의 야구 인생을 풀어봤다.
#은퇴식의 의미
오재원은 지난 9월 28일 자신의 SNS에 ‘이별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사랑하는 팬분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두산 구단도 ‘오재원이 올 시즌을 끝으로 16년간 정들었던 프로 유니폼을 벗기로 했다. 오재원의 뜻을 존중해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통산 1570경기서 타율 0.267 1152안타 64홈런 521타점 678득점을 기록한 오재원은 은퇴에 대해 분명한 소신을 갖고 있었다.
“선수라면 언젠가 은퇴하기 마련이고, 그 은퇴 시기는 구단의 허락 하에 내 발로 나가는 게 목표였다. 즉 누구의 권유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은퇴를 결정한 다음 단장님이나 사장님께 말씀드리는 게 은퇴 시나리오였고, 이번에 그렇게 진행됐다.”
오재원은 지난 5월 1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후 2군이 있는 이천으로 향했다. 말소되기 전인 4월 27일 NC전에서 박정원 구단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극적인 결승 적시타를 터트리며 반등을 노렸지만 당시 28타수 5안타 타율 0.179의 부진한 성적 탓에 2군행을 통보받았다. 오재원은 2군에 내려가서 일주일 정도 지난 후 은퇴를 결심했다고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배우는 게 야구 인생의 목표였다. 그래서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몸 잘 만들어서 다시 1군으로 올라가려 했다가 이천에 있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결심을 굳혔다. 2군 경기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계셨는데 시즌 마칠 때까진 개인적인 일이 노출되지 않기를 바랐다. 어떤 형태로든 팀에 피해가 갈 수도 있고, 선수들한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은퇴 발표를 늦췄다.”
#에이징 커브
2018년 타율 0.313의 성적으로 절정의 기량을 뽐냈던 오재원은 2019시즌부터 낯선 숫자들과 마주해야 했다. 2019년 한국시리즈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2020년 잠시 타율이 오르긴 했지만 2021시즌 그는 다시 1할대 타자로 떨어졌다. 오재원에게 “에이징 커브였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에이징 커브’라는 단어를 거부하지 않는다. 선수가 나이를 먹으면서 기량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에이징 커브는 최근이 아니었다. 2015년 프리미어12 대회 끝나고 2016년 스프링캠프 첫날 깨달았다. 내 발이 한 발자국 정도 느려졌다는 사실을. 발이 느려진 부분을 두세 배 운동해서 커버할 수도, 이전처럼 돌아올 수도 없다는 걸 절감했다. 훈련으로, 노력으로 안 되는 부분이었다. 나는 평소에 바람을 가르듯이 뛰는 ‘느낌’을 좋아한다. 컨디션 좋을 때는 마치 축지법 쓰는 것처럼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린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발이 평범해진 것이다. 아무리 전력으로 뛰어도 이전 그 ‘느낌’이 없었다. 그 한 발자국에서 오는 상실감이 엄청났다. 내가 부족한 실력에도 프로에서 버틴 건 빠른 발 덕분이었는데 그게 무너졌다.”
타격, 도루, 수비를 이끄는 전제 조건이 발이었다고 한다. 그 발이 느려졌다는 걸 깨닫고 오재원은 자신한테 에이징 커브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에이징 커브로 내몰린 박병호 선수가 다시 홈런왕에 오르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알버트 푸홀스가 700홈런을 넘어선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에이징 커브가 아니라 라이징 커브인가. 그걸 잘 모르겠다. 나 또한 에이징 커브를 극복하기 위해 하체 운동의 빈도를 늘렸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운동에 매달렸다. 공 하나에 영혼을 갈아 넣기도 해봤고, 타석에 들어서기 전 주문을 외우는 등 별별 짓을 다 해봤다.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극복이 잘 안 됐다.”
오재원은 스스로 부족한 야구선수였다고 고백한다.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매일 경기에 나서는 게 두려웠고, 김광현, 양현종을 비롯해 외국인 투수를 상대할 때마다 살아 나가려고 애를 썼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까지 야구를 해온 게 기적이라는 오재원의 말 속에는 그가 선수 생활하는 동안 거칠고 강한 이미지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영원한 캡틴
오재원은 2015~2019년 5년 연속 두산의 주장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캡틴’이란 단어에 큰 애정을 갖고 있다.
“처음엔 (홍)성흔이 형이 후계자로 나를 지목해서 주장을 맡게 됐다. 그러다 계속 주장을 이어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캡틴’이란 단어가 좋아지더라. 지금은 은퇴한 뉴욕 메츠의 데이빗 라이트의 별명이 ‘캡틴 아메리카’였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국가 대항전에서 펼친 인상적인 활약으로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런 그도 선수 생활 마지막에는 부상 등의 후유증으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지만 메츠의 ‘캡틴’으로 은퇴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어느 순간 나도 그 ‘캡틴’을 목표로 삼고 야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시리즈 우승
오재원은 선수 생활하는 동안 세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준우승은 7차례였다. 그는 한 번은 지인에게 “매일 이기는 게 스트레스일 것 같냐, 아니면 매일 지는 게 스트레스일 것 같냐”란 질문을 건넸다고 한다. 지인은 “지는 게 스트레스”라고 말했고, 오재원은 “매일 이기는 게 스트레스”라고 답했다.
“어느 순간부터 우승에 대한 감흥을 못 느꼈다. 우승을 해도 기쁘지 않았다. 그 잠깐의 기쁨을 위해 오랜 시간을 고생하며 달려온 시간들이 억울했을 정도다. 2015년 우승 후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이 오늘 하루라는 걸 깨달았다. 그 다음부터는 다시 고생 시작인 거고. 그 후론 우승의 기쁨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201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후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데 그건 기뻐서가 아니라 그냥 억울해서 나온 눈물이었다.”
오재원한테 가장 기억에 남은 한국시리즈는 2019년이었다. 당시 오재원은 정규시즌 98경기 출전해 타율 0.164 3홈런 18타점 30득점 6도루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주장을 맡았지만 부상 등으로 두 차례나 2군에 다녀오는 등 좀처럼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뽑힌 게 논란이 됐을 정도였다.
1차전에서 대주자로 출전하며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오재원은 4차전에서 2루수로 선발 출장해 5회초 역전 적시타를 포함해 10회초 9-9 동점 상황에서 2루타를 치고 나갔고, 오재일의 2루타 때 결승 득점을 올리는 등 맹활약을 펼쳤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정말 힘든 시즌을 보낸 터라 한국시리즈 우승이 더 큰 감격으로 다가왔다. 한국시리즈에서 한 번 정도는 마지막 찬스가 올 거라고 믿었는데 그 기회가 4차전 10회 연장전에서 벌어졌다. 그 장면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오재원의 별명은 다양하다. ‘오식빵’ ‘오캡틴’에 이어 ‘오열사’도 있다. ‘오열사’란 별명이 붙은 건 2015 프리미어12대회 일본과 준결승전에서였다. 9회초까지 0-3으로 뒤지고 있던 대한민국 대표팀이 양의지 대타로 오재원이 타석에 들어선 뒤 4-3 대역전 쇼를 펼쳤기 때문이다. ‘도쿄돔의 기적’을 만든 오재원한테 팬들은 ‘오열사’란 소중한 별명을 안겨줬다.
두산 팬들은 선수 오재원의 진정한 가치가 숫자에 담겨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팀 승리를 위해 허슬 플레이에 앞장섰고,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로 꼽혔으며, 두산의 ‘캡틴’을 상징하는 선수로 기억될 것이다.
“두산에서 행복한 기억을 안고 떠나는 것 같다. 그래서 슬프거나 마음 아프지 않다. 은퇴 자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보단 팬들과 또 다른 형태로 인연을 이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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