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해품달> 중 제단이 차려진 뜰에서 위령제를 올리는 성수청 국무들. |
해품달의 비운의 여주인공 연우는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지만 외척세력의 견제와 저주로 인해 무녀 신분으로 내려앉은 인물이다. 극 중에서는 왕실의 무속기관 ‘성수청’에 속한 무당으로 등장한다. 드라마 속 성수청은 왕실의 안위와 특히 왕의 건강을 위해 신력을 발휘하는 신비로운 무속집단으로 그려진다.
소설과 드라마에 등장하는 성수청은 우리 역사 속에 실재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시대적 분위기상 성수청과 조선왕실의 무속문화는 자세한 문헌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성수청이 언제 설치됐고, 언제 사라졌는지도 불분명하다. 다만 실록에 부분적으로 성수청과 무당들의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문헌에 따르면 성수청은 궐 밖 지금의 혜화동 인근에 자리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립민속박물관 김창호 학예연구관은 이에 대해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성수청은 궁중의 초제를 담당했던 곳이다. 초제란 성신(星辰) 즉 별신에게 지내는 제사다. 임금의 무병장수와 왕실의 평안을 비는 축수제와 기우제, 기청제와 같은 나라의 제사를 올렸다”고 설명했다.
연우와 함께 극을 이끄는 핵심인물 중 한 명은 성수청의 우두머리인 도무녀 장 씨(전미선 분)다.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 대왕대비(김영애 분)로부터 총애를 받으며 국운을 좌지우지하는 뛰어난 신력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실제로 옛 문헌에 따르면 성수청에는 우두머리 격인 도무녀가 존재했다. 김 연구관은 “도무녀는 왕실에서 단 한 명이었다. 도무녀에게는 일을 보좌하는 종무녀 몇 명이 딸려 있었다. 성수청의 규모와 어떤 방식으로 이들이 선발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왕실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숭유억불 정책을 근간으로 하는 유교국가 조선에서 어떻게 이러한 미신적 집단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드라마에서도 성수청은 유생들에 의해 끊임없이 폐쇄를 요구받는다. 극 중 도무녀 장 씨 역시 성수청의 존폐 위기를 극복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이에 대해 김 연구관은 “성수청의 폐쇄요구는 끊임없이 있어 왔다. 유생들의 상소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성종 때 수차례에 걸쳐 상소문이 올라왔다. 심지어 성종이 성수청 건물을 수리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이에 대해 유생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일까지 있었다”라고 말했다.
조선시대 내내 유생들의 공격을 받았지만 성수청은 궁중 내에서 조선왕조를 위해 나름의 역할을 다했다. 아무리 유교를 섬기는 국가였다 하지만 한민족의 정신세계에는 ‘무속’이라는 전통의 샤머니즘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의 왕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헌을 살펴보면 조선왕조가 성수청의 무당을 부렸다는 얘기가 꽤나 많이 나온다. 심지어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과학을 많이 신봉했다는 세종대왕도 자신의 모친 원경왕후가 중병에 걸리자 제일 먼저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 외에도 성종, 연산군, 중종 때 많은 무당들이 왕실을 위해 굿을 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연산군의 경우 성수청의 도무녀와 종무녀의 잡역을 면제하라는 명을 내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나라의 제일가는 무당이라 일컬어지는 국무당은 왕실의 안위를 직접 다뤘던 만큼 책임도 무척 무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국무당들은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목숨을 내놓기도 했다. 태종은 자신의 넷째아들 성녕대군이 연주창(목 부위의 염증)으로 고생하자 당시의 국무당 가이와 그의 종무녀 보문을 불러 굿을 했다. 하지만 성녕대군은 곧바로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두 무당은 결국 귀양을 가게 됐고 보문은 귀양 도중 맞아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 해품달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 볼 소재는 ‘흑주술’이다. 도무녀 장 씨는 대왕대비의 명을 받아 연우를 사하게 하는 ‘흑주술’을 부린다. 물론 극중에서 도무녀 장 씨는 연우를 가엽게 여겨 목숨을 거두지는 않지만 사람을 저주하여 사하게 하는 죽음의 주술, 즉 ‘흑주술’은 시청자들의 묘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실제 조선왕실 역사 속에서 ‘흑주술’은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숙종 당시 장희빈이 무당을 사주해 인현왕후를 저주했던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 외에도 중종의 후궁 경빈 박 씨는 세자를 저주하다 발각됐으며, 심지어 인조 때는 며느리 민회빈 강 씨가 시아버지 인조를 저주하다 발각되는 일까지 있었다.
이에 대해 김 연구관은 “드라마 속 흑주술은 사실이다. 궁중 안에서 비일비재했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 궁중 내 여성들이 이를 사주했다는 것이다. 당시 남성들보다는 궁중의 내명부 여성들이 무속을 신봉했다. 역사에 기록된 것은 발각된 내용들이다. 이 외에도 드러나지 않은 내용들이 더 많을 것이다. 조선왕조 기록 중에는 마룻바닥이나 지붕 따위에 몰래 숨긴 흑주술의 영물들을 없애기 위해 건물 하나를 다 들어냈다는 내용도 있다. 그만큼 흑주술이 흔했다는 얘기다”고 설명했다.
화제의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성수청을 비롯한 조선왕실의 무속문화라는 참신한 소재를 다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비록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픽션사극이지만 지금까지 우리 역사 속에서 감춰져 있던 무속문화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드라마 속 조선왕실의 신비로운 무속문화를 실제 우리 역사와 비교해 보면 보다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 극 중 무녀 한가인이 액받이를 준비하는 장면. |
‘인간부적’은 픽션이야~
해품달의 여주인공 연우는 극 중 사랑하는 옛 여인이자 임금인 이훤의 ‘액받이’ 무녀로 등장한다. 극 중에서 액받이 무녀란 건강이 좋지 못한 왕을 대신해 악한 기운을 대신 받는 인간부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액받이 무녀는 조선왕실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의 옛 문헌 어느 곳을 찾아봐도 ‘액받이’라는 말과 ‘액받이 무녀’ 혹은 인간을 부적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이에 대해 국립민속박물관 김창호 학예연구관은 “액받이 무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무속 문화에서 악한 액을 막고 피하는 여러 가지 액막이 문화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인간을 부적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제웅’이라고 하는 인간 형상의 허수아비를 부적으로 이용해 액을 막는 문화는 존재했다. 이는 극 중 인간부적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액받이 무녀는 극 중 재미를 위한 픽션으로 확인됐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