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정우성 하정우 박찬욱 등 거물들 LA 총집결…‘기생충’ 때처럼 ‘헤어질 결심’ 오스카 투어 지원 주목
#이미경의 사람들
이미경 부회장은 미국 아카데미 영화박물관이 개관 1주년에 맞춰 시상한 필러상(Pillar Award)을 수상했다. 글로벌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아카데미 영화박물관은 “이미경 부회장이 모범적인 리더십으로 세계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콘텐츠 위상을 높였다”고 시상 이유를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서 이미경 부회장은 “크리에이터의 다양성 확대를 위한 지원 활동을 이어나가겠다”면서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한 창의성과 메시지를 지닌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아카데미 영화박물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이 알려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당일 시상식장을 직접 찾은 배우와 감독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영화제를 방불케 했다. 이미경 부회장과 오랜 인연을 맺은 배우 이병헌부터 최근 이 부회장이 주최하는 행사에 자주 동행하는 정우성, 이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박찬욱 감독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을 공개한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의 모습도 포착됐다.
특히 하정우는 10월 13일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액터스 하우스’ 행사를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향했다. 정우성 역시 10월 6일 스페인에서 개막한 시체스영화제에서 자신의 연출작 ‘보호자’를 소개하고 휴식 없이 LA부터 찾았다. 톱스타들은 길게는 몇 달 전부터 해외 일정을 결정하는 만큼 이들은 일찌감치 필러상 시상식을 주요 스케줄로 정해두고 시간을 조율해왔다.
현재 미국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을 개봉하고 작품 홍보에 집중하고 있는 박찬욱 감독도 빠지지 않았다. 박 감독은 이미경 부회장과 유독 친분이 두터운 연출자로 꼽힌다. ‘올드보이’ 이후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모두 이 부회장이 이끄는 CJ ENM이 투자 배급을 맡았다.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이 수상 소감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인물도 제작 총괄을 맡은 이미경 부회장이었다. 당시 박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데 지원을 아까지 않은 CJ와 미키 리(이미경 부회장의 영어 이름)”를 먼저 언급한 뒤 “많은 식구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CJ ENM은 지난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사 모호필름의 지분을 인수해 58.46%를 확보하고 있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배우 가운데 이미경 부회장이 든든한 지원군이 된 경우도 있다. 배우 이병헌도 마찬가지다. 2009년 ‘지 아이 조’ 시리즈로 할리우드에 진출했을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존재가 다름 아닌 이미경 부회장이었다. 이후 이병헌은 ‘레드: 더 레전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매그니피센트 7’ 등 할리우드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글로벌 스타로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해머 갈라 이벤트
배우와 감독들이 이미경 부회장을 지지하는 이유는 콘텐츠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예술에 대한 깊은 조예,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움직이는 막강한 네트워킹까지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쯤 이 부회장을 만나본 관계자들은 “사람을 좋아하는 인간적인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경 부회장은 매년 LA의 해머 미술관에서 ‘해머 갈라 이벤트’(HAMMER GALA EVENT)를 열고 국내외 배우와 감독 및 예술인들이 교류하는 장을 마련한다. 국내서 만날 일이 없던 배우들이 이미경 부회장이 주최하는 각종 파티나 예술 행사에서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는다. 2019년 해머 갈라 이벤트에는 배우 하정우 임수정 조진웅 박소담 장기용 등이 참석해 인연을 맺었다.
여러 배우와 감독들 가운데서도 이미경 부회장이 특별히 아끼는 인물은 봉준호 감독이다. 현재 작품 촬영으로 인해 이번 필러상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한 봉 감독은 이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첫 해외 프로젝트 ‘설국열차’를 성공적으로 완성했고, ‘기생충’을 통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르는 역사를 썼다.
5년가량 잠행하던 이미경 부회장이 공식 행보를 시작한 계기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였다. 이 부회장은 2020년 5월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자 현지를 직접 찾았다. 박근혜 정권 당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던 그는 미국에 머물면서 외부에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하지만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개막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고 영화제 기간 황금종려상의 유력한 후보로 부상한 것을 계기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이미경 부회장이 칸 국제영화제에 ‘공식’ 방문하면, 어김없이 한국 영화가 수상 낭보를 알리는 일은 이제 익숙한 과정이 됐다. ‘기생충’에 이어 올해 영화제에서도 이 부회장이 제작 총괄을 맡은 ‘헤어질 결심’이 감독상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의 주인공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각각 받았다. 이 부회장은 자사 영화가 영화제 기간 더욱 주목받을 수 있도록 대대적인 옥외광고 등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세계 영화계를 움직이는 거물들과의 친밀한 네트워킹을 통해 해당 작품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역할도 도맡았다.
우호적인 여론 형성은 작품의 성공은 물론 수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지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들고 북미 전역을 도는 이른바 ‘오스카 투어’를 벌일 때도 이미경 부회장은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도록 막후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이끄는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 드림웍스에 3000억 원을 투자해 아시아 배급권을 확보해 미국에 진출한 뒤 지금까지 쌓은 노하우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자산이 됐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CJ ENM의 콘텐츠 투자를 좌우할 수 있는 위치이고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네트워킹을 갖추고 있어 배우나 감독, 제작자들에게는 누구보다 중요한 인물”이라고 밝혔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이미경 부회장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한국 영화가 글로벌시장에 안착할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퍼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요즘 영화계 관심사는 ‘헤어질 결심’의 아카데미 후보 지명 여부에 쏠린다. 한국 영화 대표로 내년 초 열리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에 출품된 ‘헤어질 결심’은 북미 개봉 직후 주요 외신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제작자’ 이미경 부회장이 ‘헤어질 결심’을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또 한 번 낭보를 전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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