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거장으로 통하는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 그는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기에 만삭의 아내 샤론 테이트를 사이코패스에게 잃은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EPA/연합 |
폴란드계 유태인과 러시아계 유태인 사이에서 태어난 로만 폴란스키가 여섯 살 때 2차대전이 터졌고 수용소로 끌려간 그녀의 어머니는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그녀는 임신 4개월. 이후 유태인 게토 지역에서 탈출한 폴란스키는 독일군이 점령했던 폴란드 지역을 떠돌며 살았는데 그때의 기억을 이렇게 회상한다. “어린 시절 사악한 독일 병사들은 어쩔 줄 모르고 내달리는 꼬마의 모습을 단지 즐기기 위해 나에게 무차별로 총을 갈겨대곤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아버지와 재회한 폴란스키는 영화학교에 들어가 두각을 나타냈고 1962년에 <물속의 칼>이라는 영화로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면서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세계적인 감독으로 떠올랐다. 이후 카트린느 드뇌브를 주인공으로 한 <혐오>(1965)로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드뇌브의 언니인 프랑소아즈 돌레악을 주인공으로 한 <막다른 길>(1966)로 베니스영화제 금곰상(그랑프리)을 수상한 폴란스키는 당시 유럽 영화계에서 가장 재능 있는 젊은이였다.
▲ 영화 속 로만 폴란스키와 아내 샤론 테이트. |
이후 샤론 테이트는 임신했고 런던에서 작업 중이던 폴란스키는 출산 예정일에 맞춰 돌아가기로 했다. 예정일 2주 전이던 8월 8일. 테이트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함께한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자리엔 폴란드 출신의 작가이자 배우인 보이체크 피리코프스키, 그의 연인이었던 사회운동가 애비게일 폴저 그리고 헤어스타일리스트였던 제이 세브링이 있었다.
이때 갑자기 들이닥친 일군의 악당들은 총과 칼로 무참하게 살인을 저질렀다. 이후 ‘찰스 맨슨 패밀리’로 알려진 이 집단은 당시 집에 있던 네 명과 더불어 근처 도로에 있던 스티브 페어런트라는 청년까지, 그날 밤 시엘로 드라이브에서만 다섯 명을 죽였다.
다음 날 아침 가정부에 의해 끔찍한 현장이 발견되었고, 검시관에 의하면 샤론 테이트는 16번 칼로 난자당했다고 한다. 경찰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한편 폴란스키는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라이브>에선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폴란스키를 인터뷰했는데, 그는 아직 테이트의 혈흔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은 비난했다. 하지만 폴란스키는 이렇게라도 더욱 여론을 환기시켜 범인을 잡고 싶다고 말했다.
사건은 의외의 곳에서 풀려나갔다. 1969년 11월 자동차 절도로 교도소에 있던 수잔 앳킨스라는 여성이 다른 죄수에게 자신이 샤론 테이트 사건의 범인을 알고 있다고 떠벌였다. 경찰은 심문을 시작했고 앳킨스는 찰스 맨슨, 찰스 텍스 왓슨, 패트리샤 크렌윙켈, 린다 카사비안 등의 이름을 댔다.
희대의 살인마로 일컬어지는 찰스 맨슨은 자신이 조직한 일종의 광신도 집단의 리더였다. 그는 인종 전쟁이 임박했다고 믿었고, 비틀스의 음악은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를 예견한다고 생각했다. 그 전쟁이 일어나면 오로지 선택 받은 ‘맨슨 패밀리’만 살아남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맨슨은 직접 부자들을 죽임으로써 자신들만의 전쟁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왜 그는 샤론 테이트의 집을 찾아간 걸까? 사실 맨슨의 타깃은 그 집의 전 주인인 테리 멜처였다. 과거 맨슨 패밀리는 음악 프로듀서인 멜처 밑에서 음반을 준비한 적이 있었지만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던 것. 그런 이유로 찾아간 집에 멜처는 없었고 결국 테이트와 친구들이 끔찍한 비극을 겪게 된 것이었다. 이후 조사에 의하면 제이 세브링은 테이트가 임신 중이라는 걸 알리며 제발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고 하나 이미 광기에 휩싸인 살인마들은 잔인하게 그들을 처치했다. 악질적인 호사가들은 악마 숭배자들에 대한 영화인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1968)가 불행을 자초한 것 아니냐고 떠들기도 했다.
1년 반의 신혼 생활을 악몽으로 끝낸 폴란스키는 유럽으로 건너가 <맥베스>(1971)를 만들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핏빛 가득한 잔혹 신을 보여주는데, 극중 인물 맥더프는 온 가족이 살해당한 장면을 바라보며 이렇게 탄식한다. “내 아내 또한 죽었구나. 내 아이들은 어디 갔느냐. 모두 죽은 것인가?” 이 장면의 핏빛 묘사가 너무 지나치다는 평론가들의 비난에 폴란스키는 “당신들은 작년 8월의 우리 집을 보지 못했다. 나는 유혈이 낭자하다는 것의 의미를 안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건이 있은 지 10년 뒤 폴란스키는 <테스>(1979)를 만든다. 토마스 하디의 <테스>는 샤론 테이트가 가장 좋아했던 소설. 영화엔 ‘샤론을 위하여’라는 자막이 들어가 있다.
사건의 범인들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았고, 현재까지 종신형으로 교도소에 있다고. 그중 한 명인 수잔 앳킨스는 2009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