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격은 시작됐다 지난 1월 18일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위치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등록한 예비후보들의 면면을 분석한 결과 친노그룹 중에서도 친문재인계가 단연 두각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한때 정동영계로 분류됐으나 4·11 국회의원 총선거 출마를 포기한 한 민주통합당(민주당) 인사는 지난 9~11일 민주당 공천 신청 접수 결과를 보고 이 같이 말했다. 공천 신청을 한 예비후보들의 면면으로 보나, 그들이 자신의 주요 경력으로 내건 타이틀로 보나 야권의 권력지형이 불과 몇 년 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가 말하는 야권의 권력지형 변화는 한때 폐족(廢族·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에 나설 수 없는 족속)으로까지 불렸던 친노그룹의 화려한 부활, 손학규계와 정동영계 등 기존 야권의 중심세력이었던 비노그룹의 몰락을 말한다. 지난 1·15 전당대회에서 친노그룹의 한명숙·문성근 후보가 1·2위를 차지하고 호남 대표주자인 박지원 후보가 4위에 그친 것에서도 이 같은 변화는 읽혔다. 하지만 예비후보 등록 결과는 이런 권력지형의 변화가 당 지도부를 넘어 원내로까지 그대로 투영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동시에 오는 12월 19일 치러지는 대통령선거에서 친노그룹이 야권 후보를 결정하는 키를 잡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야권 예비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친노그룹은 그야말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단지 출마자 숫자만 많아진 게 아니라 친문재인, 친김두관, 친안희정, 친문성근, 친유시민 등으로 자체 분화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체 분화에 들어갔다는 것은 그만큼 친노그룹의 저변이 넓어지고 깊어졌음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그룹은 친문재인 그룹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턱밑까지 추격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친문재인 그룹은 사실상 대선 출마 의지를 접은 한명숙 민주당 대표의 사람들까지 포괄해 향후 야권 최대 정파로 부상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친문재인 그룹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이번 총선에서 이른바 ‘낙동강 벨트’를 형성한 PK(부산·경남) 출마자들이다. 부산 사상에 출마하는 문 이사장을 중심으로 전재수(북·강서갑), 최인호(사하갑), 김정길(부산진을), 이해성(중·동), 노재철(동래), 박재호(남을), 김인회(연제) 후보가 배치됐다. 변호사 출신으로 선거에는 처음으로 출전하는 김인회 후보는 문 이사장과 함께 최근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는 책을 내기도 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졌으나, 그는 문 이사장을 돕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들 부산파와 함께 ‘낙동강 벨트’를 형성하고 있는 경남 지역의 친문재인 그룹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김경수(김해을) 후보와 송인배(양산), 하귀남(마산을) 후보 등이 있다.
영남만이 아니다. ‘노무현의 입’에서 ‘문재인의 입’으로 변신한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서울 중랑을에 도전장을 냈고 박남춘 전 비서관은 인천 남동갑에 출마했다. 전해철(경기 안산상록갑), 황희(안산단원을), 윤승용(용인기흥) 등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을 지낸 인사들이 수도권 공략에 나섰다. ‘한명숙의 아이들’에 속하는 조한기(충남 서산·태안) 후보도 친문재인 그룹으로 분류된다.
친문재인 그룹과 함께 친노그룹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그룹은 친김두관 그룹이다. 김두관 경남지사는 아직까지는 야권 내에서 차기가 아닌 차차기 대선주자로 분류되고 있지만 문재인 이사장이 이번 총선에서 실패할 경우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그의 위상을 반영하듯 친김두관 그룹에도 영남뿐 아니라 수도권에까지 출마를 준비 중인 인사들이 있다. 수도권에는 김 지사의 친동생인 김두수(경기 고양일산서) 후보가 나선다. 그는 문성근 최고위원의 측근으로도 분류된다. 경남도 서울사무소장을 지낸 권영우(서울 성북갑), 김 지사 정책특보를 지낸 임근재(경기 의정부을) 후보도 수도권에 도전장을 냈다. 아직 지역구가 거론되지는 않고 있지만 유원일 전 창조한국당 의원도 김 지사의 권유로 창조한국당을 탈당, 민주당에 입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지사의 ‘안방’격인 경남에는 친김두관 그룹이 줄줄이 출사표를 던졌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출신인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가 민주당에 입당해 창원을 출마를 선언했다. 홍순우 전 정무특보(통영·고성), 심용혁 전 비서관(진해), 조수정 전 언론특보(사천), 김국권 전 정책특보(김해갑) 등도 대표적인 친김두관 그룹이다. 2010년 지사 선거 때 유세단장을 맡았던 박남현(의령·함안·합천), 초대 창원 노사모 대표 출신의 정해철(창원갑) 후보도 ‘김두관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다.
대전·충남 지역에는 김종필·이회창·이인제에 이어 차세대 충청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의 측근 그룹들이 있다. 안 지사의 최측근으로 충남부지사를 지낸 김종민 전 청와대 대변인은 안 지사의 고향인 충남 논산·계룡·금산에 출사표를 던지고 이인제 자유선진당 의원과의 일전을 기다리고 있다. 논산·계룡·금산 선거를 두고 충청권 대표주자 자리를 놓고 안 지사와 이 의원이 벌이는 한판 승부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밖에 충남도 미디어센터장 출신의 문용욱 후보가 대전 유성에 출마하고 2010년 지사 선거 때 공보본부장과 대변인을 맡았던 박완주 후보는 충남 천안을에 출마한다. 안 지사 정책특보 출신의 박수현 후보는 공주·연기에서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와 맞서고, 정책특보 출신의 박정현 후보는 부여·청양에 출사표를 던졌다.
문성근 최고위원의 측근으로는 국정홍보원장을 지낸 김창호(경기 성남분당갑), 영화감독 출신의 여균동(안양동안을),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임찬규(용인기흥) 후보 등이 있다. 지역구 출마자는 많지 않지만 문 최고위원의 측근 인사 중 상당수가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때 친노그룹 최대 우량주로 기대를 모았던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야권통합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세를 많이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선 출마자는 많지만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천호선(서울 은평을), 이백만(도봉갑) 후보와 김영대(경기 파주) 전 열린우리당 의원 정도가 야권 단일후보로 나설 만한 인물로 분류되고 있다.
친노그룹이 일일이 거명하기도 벅찰 만큼 많고 다양한 예비후보들을 거느린 반면 과거 야권의 중심이었던 비노그룹의 행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특히 열린우리당이 원내1당이었던 17대 국회 당시 현역의원만 70명에 달했던 정동영계의 몰락이 눈에 띈다. 전·현직 의원 중에서는 천정배(서울 동작을), 최규식(강북을), 이종걸(경기 안양만안) 의원과 정청래(서울 마포을) 전 의원 정도를 정동영계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게 당내의 평가다.
정동영계의 중심 인물이었던 박영선 최고위원, 민병두·김현미 전 의원 등은 진작부터 이탈했다. 정치신인 중에서도 정동영계 인사는 ‘미키 루크’로 더 많이 알려진 이상호(경기 성남수정) 후보를 비롯해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지역에서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정동영 의원이 2010년 당의 만류를 뿌리치고 탈당까지 해가며 전북 전주덕진 재·보선에 나선 뒤부터 정동영계가 급격히 무너졌다”며 “최근 몇 년 사이 야권에서 벌어진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가 정동영계의 해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계와 함께 야권의 양대 축을 형성했던 손학규계도 체면치레나 하는 수준이다. 정치신인으로 김경록(경기 안양동안갑), 문용식·송두영(경기 고양덕양을), 강훈식(충남 아산) 후보 등이 손학규계로 분류된다. 이 역시 극소수지만 486세대 정치인을 비롯한 손학규계 전·현직 의원들은 아직 정동영계와 같은 이탈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
‘이대파’ 가장 잘나가
서울 마포을에 출마하는 정청래 전 의원이 당 지도부의 ‘지역구 15% 여성 공천 할당제’ 방침에 반발, “민주당이 이대 동문회냐”며 인터넷에 이화여대 출신 민주당 관계자들을 실명으로 거론한 게 도화선이 됐다.
정 전 의원은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한명숙 : 이대출신, 비례대표 출마예정. 신낙균 : 이대출신, 뒤에서 총질한 대표적 인물, 한미FTA 협상파, 비준 비밀투표 하자고 한 사람. 서영교 : 이대출신, 중랑갑 출마. 이미경 : 이대출신, 은평갑 출마. 유은혜 : 이대출신, 일산동구 출마. 김상희 : 이대출신, 부천소사 출마. 이경숙 : 이대출신, 영등포을 출마. 고연호 : 이대출신, 은평을 출마. 김유정 : 이대출신, 마포을 출마”라고 주장했다. 정 전 의원은 “이대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히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서도 “내 트위터에는 이대 라인을 언급하며 분통을 터뜨리고 또 얼른 성전환 수술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FTA 찬성이든 전여옥 같은 여성이든 무조건 다 공천을 줘야 하느냐는 불만과 원성의 글이 타임라인을 장식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의원 등 남성 후보들의 반발에 대해 당내 시선은 곱지 않다. 여성 공천 할당제 논의가 어제오늘 이뤄진 것도 아닌데 관련 당규까지 제정된 뒤에 난리를 치는 이유가 뭐냐는 얘기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이 언급한 인사들 중 성균관대 출신인 유은혜 후보를 뺀 나머지 인사들은 모두 이대 출신이 맞고, 비례대표 출마 예정자들 중에도 같은 대학 출신이 너무 많다는 지적은 나오고 있다. 공천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일 때마다 제2, 제3의 ‘이대 논란’이 재발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이미경 사무총장은 “민주당과 새누리당 모두 당헌에 ‘30% 여성 공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다”며 “정 전 의원의 주장은 지나친 견강부회”라고 일축했다.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