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지역 시민들 대다수는 여전히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분위기였지만 신선한 인물을 통한 ‘호남 물갈이’를 염원하고 있었다. 광주의 대표 재래시장인 양동시장. |
현재 광주는 지역구 8석 중 5석 정도가 현역 국회의원과 유력 예비 후보들이 오차 범위 내 접전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참여 경선 방식을 도입함에 따라 피 튀기는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신선한 인물을 통한 ‘호남 물갈이’를 염원하고 있는 광주 시민들은 다른 도시보다 먼저 후보들 개별 평가에 돌입했다. 민주통합당이 공천심사위 구성을 끝마치고 분주하게 선발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난 2월 7~8일 양일간 광주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봤다.2월7일 광주 최대 번화가인 금남로는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20대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옷 가게도 레스토랑도 아닌 어학원이었는데 이들 모두는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
한 어학원 앞에서 만난 김도일 씨(29)는 “광주는 한 번도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룬 적이 없었다. 민주통합당이 정권교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은 인정하지만 자신들의 기반인 호남 지역에 무신경하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민주통합당에서 신선한 인물이 많이 나와 광주를 바꿔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같은 어학원에서 만난 한 여대생은 “광주 대학생들은 서울로 가지 않는 한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다. 민주통합당 후보들 중 청년 일자리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당선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광주 동구 민주당 예비후보들의 선거사무소(위)와 광주 서구 조영택 국회의원 선거사무소. |
민주통합당 청년 비례대표 오디션에 참가한 김환희 씨(34)는 “광주 사람들은 민주통합당에 대한 편중이 심하고 변화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느낌을 받는다”며 동구의 변화를 바랐다. 김 씨는 “특히 민주통합당 내 시민 세력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저조한 편”이라며 “호남 사람들이 지난해 서울시장선거에서 젊은 세대와 시민 세력이 보여준 기적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호남대학교 문화산업경영학부 김 아무개 씨는 “민주통합당보다 새누리당의 쇄신 작업이 더 긍정적으로 보인다”며 “민주통합당은 제발 호남 지지율만 믿지 말고 청년들의 마음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호남 물갈이’에 대한 젊은 층의 열망은 상당한 수준까지 진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날인 2월 8일, 영하 7도의 강추위에 대설특보까지 발효됐다. 상무지구로 가는 길에 만난 택시 기사 김 아무개 씨는 내내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5년 전 택시를 시작하고부터는 민주통합당 대신 민주노동당(현 통합진보당)을 지지해 왔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민주통합당은 ‘호남의 새누리당’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고 역설했다. 그는 “민주통합당 인사들이 이제 와서 이명박 대통령을 욕보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 정권의 타락은 그동안 견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야당의 탓도 큰 것 아니겠느냐”고 일갈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광주 8석 중 6석은 민주통합당이 가져가고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1석, 나머지 한 석은 진보 쪽에서 가져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똑 부러지는 의견을 제시했다.
광주 서구로 넘어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조영택 국회의원 선거사무소. 사무소 안에는 지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새누리당 홍준표 의원의 공천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속보에 귀를 기울이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자기 당을 위해 희생하는 것 아니겠느냐. 민주통합당에도 저러한 희생정신이 필요하다” “요즘 한명숙 대표의 행보를 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사무총장에 임종석을 앉힌 것도 그렇고, 공심위 이대 라인 논란도 그렇고” 등 비판의 말들이 오갔다.
사무실을 지키던 조옥현 보좌관은 최근 자체적인 여론 수렴을 했다고 밝히며 “광주 서구 지역은 40% 정도가 부동층으로 나왔고 우리 후보의 지지율은 28% 정도로 집계됐다”며 큰 이변이 없는 한 재선을 자신하는 모습이었다. 옆 동네인 서구 을에 출마를 공식화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에 관한 물음에는 “서구 을은 민주통합당 공천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이정현 의원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민심이 원하는 인물로 공천이 이루어진다면 이정현 의원의 지지세가 상당 부분 꺾이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당원 생활을 해 왔다고 밝힌 임영균 씨(68)는 지역과 세대를 막론하고 쏟아지는 ‘호남 물갈이’ 목소리가 달갑지 않다. 임 씨는 “언론에서 자꾸 호남 물갈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무슨 의미인 줄은 알겠다. 하지만 막상 후보들 면면을 살펴보면 도토리 키재기 아니냐. 확실하지 않은 사람을 밀기보다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던 사람을 찍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다”고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광주의 대표 재래시장인 양동시장.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기자에게 강운태 광주시장에 관한 푸념을 늘어놨다. 최근 강 시장은 수십억 원의 불확실한 자금을 보유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데 이 같은 소식이 시장 안까지 퍼진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돈 문제에 관해 깨끗하다는 것 아니겠느냐. 강 시장이 진짜 잘못한 일이 있다면 젊은 사람들이 민주통합당을 어떻게 보겠느냐”고 걱정했다. 근처에서 불을 쬐던 또 다른 상인 역시 “새누리당이든 민주통합당이든 잘못이 있는 사람들은 다 바꿔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양동시장 초입에 있는 한 통닭집에서의 대화는 호남의 수준 높은 민도를 느낄 수 있었다. 기자 옆 테이블에 앉은 일행은 정치적 견해를 내놓는 것을 꺼렸지만 내심 변화를 갈망하는 눈치였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양동통닭과 수일통닭은 양동시장의 명물로 70년대부터 대를 이으며 장사하고 있다. 두 통닭집은 좁은 길을 사이에 둔 라이벌 관계지만 한 번도 싸움이 붙거나 간판을 바꿔달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이곳에 와서 좀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쓴소리를 남겼다.
광주=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 문재인 이사장(왼쪽)과 손학규 전 대표. |
지난 6일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을 찾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같은 ‘대권행보’에 대해 호남권의 반응은 “악어의 눈물”, “대선으로 직행하기 위한 꼼수” 등으로 냉담한 것이었다. 택시 기사 김 아무개 씨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겪은 광주 사람이라면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용납하기 힘들 것이다”라며 “호남 민심을 얻어야 대권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호남이 점찍은 대권주자는 누구일까. 1월 26일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뷰’가 야권·진보 진영 대권주자를 상대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호남의 유력 대권주자는 단연 안철수 교수(광주 42.2%, 전남 40.9%)지만 최근 안갯속 행보로 나날이 지지율이 추락하는 형국이다. 이 틈을 타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유력주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광주 민심은 ‘제2의 노무현’보다 ‘제2의 김대중’을 더 원하는 눈치다.
대학생 김도일 씨는 “주위 어른들을 보면 안철수 교수는 좋아하지만 문재인 이사장은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양동시장에서 만난 중년 남성 역시 “2002년 대선 때 호남 지역에서 맨 처음 노무현을 경선 1위로 만들고 대통령까지 만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이냐. 민주당이 둘로 쪼개지고 ‘호남 사람들이 나를 좋아서 뽑았느냐’와 같은 대통령의 냉소가 아니었느냐”며 친노 세력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지지율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손학규 전 대표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민주통합당 당원 임영균 씨는 “누구를 대선주자로 밀어야 할지 아직 당원 간 의분이 분분하다. 최근 뜨고 있는 문 이사장은 호불호가 나뉜다”고 전했다. 전업주부라고 밝힌 이현진 씨는 “손 전 대표는 과거 한나라당 전력이 흠이긴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패배의 아픔도 알고 정치적 노련함도 갖고 있어서 밀어줄 만하다”고 평가했다. 지지율 2%로 시작해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무현의 신화가 다시금 재현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