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토익 만점 수기>는 코믹 어드벤처 소설이다. 여느 수험서나 만점 수기서가 아니다. 물론 책 속에는 비법도 나와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비법이라고 저자는 소개한다. 저자는 정작 중요한 것은 비법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은 취업을 위해 토익 점수에 목숨 거는 이 땅의 딱한 청춘들의 현실을 시종일관 좌충우돌 코믹한 모험기로 풀어내고 있다.
지원 자격 800점 이상이라는 문구에 토익 590점을 맞은 주인공은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위기감 속에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그곳에서 오직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위험하고 엉뚱한 거래를 받아들이는 모험을 감행한다. 주인공은 ‘이주일 닮은 예수’를 섬기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폴로 13호’를 믿으며 땅속에서만 지내는 요코와 소통한다. 그리고 불법으로 마리화나를 재배하는 스티브를 온몸으로 지켜낸다. 나아가 그들을 화해시키고 그들의 세상마저 바꿔놓는다. 그저 영어의 노예에 다름없어 보이는 주인공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토익 만점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면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 책의 매력은 무엇보다 너무 잘 읽혀서 오히려 걱정될 정도로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흡입력에 있다. 가벼운 듯 보이지만 주제의 깊이가 범상치 않고 반전이 주는 문학적 상상력도 대단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주인공이 호주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앗’ 외마디 소리를 ‘웁스’로 바꾸고, 금발 미녀와의 러브신을 상상하며 ‘오, 베이비’ 같은 감탄사를 연습하는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실소를 머금게 한다. 또 영어 학습에 도움이 될 것 같은 현지인을 만나면 스스로 인질이 되겠다고 말하는 등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온갖 비정상적인 노력을 다하는 주인공을 보면 정신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이런 비정상을 향한 웃음 속에는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가 어릴 때부터 무조건 원어민을 붙잡아 계속 영어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를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토익에 길들여진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영어 점수로 자신의 가치가 매겨지는 현실에 씁쓸해하면서도 그 현실에 맞춰 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학원을 다녔던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를 생각하게 된다. 반면 토익스러운 삶에 길들여지지 않는 용자들은 자신들이 지켜온 마지막 자존심과 용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심 작가는 소설 속에서 21세기에 사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의 수치를 드러내면서 아픔도 감싸 안으려 했다. <나의 토익 만점 수기>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동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소설’이라는 평가와 함께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심사위원들은 추천서를 통해 “토익 만점을 위해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난 주인공이 마약상의 인질이 되는 어이없는 이야기가 시대의 가장 아픈 현실을 제대로 찌른다.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서 비정상적인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 청춘들이 겪고 있는 희비극을 거침없이 서술해냈다”고 평가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
“나도 한때, 고득점 벙어리…”
▲ 사진제공=웅진지식하우스 |
―기자를 관두고 집필을 한 계기가 있나.
▲이유는 간단했다. 일하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기자생활이 처음부터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5년 신문사에 입사해서 4년간 일했다. 초기에는 일이 너무 재밌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점점 데스크나 편집국장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간섭 받는 것도 싫었다. 기자는 언론인으로 분류되지만 난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는 회사원에 지나지 않았다. 내 안의 변화가 필요했다.
―1억 원 고료의 문학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는데 소감은.
▲1억 원의 고료는 상금과 일부 인세가 포함된 금액이다. 물론 엄청난 금액이다.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내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등단한 것에 만족한다.
―특별히 ‘토익’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 이유가 있나.
▲평소 영어 열풍 사회에 대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왔다. 분명 언어는 다른 문물을 익히기 위한 수단일 뿐인데, 말 한마디 못하면서 점수만 높으면 뭐 하나 싶었다. 남들 다 하니까, 기업이 원하니까 그냥 쫓아가는 인생에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본인의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토익은 최고 960점을 받아봤다. 그러나 영어는 한마디도 못했다. CNN, BBC를 1년 동안 매일같이 들어봤다. 영어가 늘지 않았다. 결국 2002년 무작정 호주로 떠났다. 1년간 현지에서 바나나도 따고 콩, 수박, 망고 농장에서 일도 했다. 몸으로 부딪혀 익혀 나가자 조금씩 영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있다면.
▲‘이렇게 아무렇게나 써도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누구나 소설을 써 봤으면 좋겠다.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직접 구성하고 집필하면서 스스로 구상해 보길 바란다. 직장 상사나 선배에게 아부 떠는 모습에서 탈피해 주체적인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