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의 민심은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지역의 맹주 새누리당에 대한 애증섞인 지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사진은 대구 동갑 오세호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
“허파가 디비지는 기라.”
동대구역 앞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가 꺼낸 말이다. 그는 “사납금 채우기도 바쁜데 정치에 관심을 둘 여유가 어디 있느냐”며 기자에게 쏘아붙였다. 1박 2일 동안 둘러본 대구의 민심은 냉소와 무관심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택시기사 류재희 씨는 “아기가 울어야 밥을 주듯이 정치도 마찬가지인데 대구 사람들은 좀처럼 울지 않는다. 그러니 지역이 발전하지 않는 것”이라며 정치권에 대한 지역민의 무관심을 꼬집었다.
자영업자들의 목소리에서는 분노마저 서려있었다. 경북대학교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고정선 씨는 “요즘 예비후보들이 참 열심히 인사하러 다니는데 진짜 지역 주민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 자기들 당선되려고 하는 짓이지”라며 자조했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 역시 대구는 새누리당 일색이 될 것 같다”는 질문에는 “대구도 이제 예전 같지 않다. 2002년 대선 때만 해도 대구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많이 찍어주지 않았느냐. 이제 당 이름 말고 사람을 보고 찍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 씨의 말과 달리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구에서 얻은 득표율은 18.7%로 전국 최저 수준이었다.
▲ 대구 중남구에 출마 선언을 한 박영준 전 차관. 출처=박영준 트위터 |
그럼에도 민주통합당의 의미 있는 도전도 눈에 띈다.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대구 수성 갑에 출사표를 던진 김부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당선이 보장된 군포을을 버리고 ‘동토의 땅’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아무리 3선의 중진이지만 지역구도의 강고한 벽을 뚫기에는 역부족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
이런 분석에 관해 김 최고위원 측은 “대구 사람들이 여전히 민주통합당 후보에 대해 낯설어하는 거 같다. 하지만 과거 대구에 출마했던 야권 후보에 비해 인지도도 높은 편이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가 후보와 유권자들 간 교류가 많아지면 지지율도 빠르게 상승할 것이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김 후보 측의 ‘바람’대로 대구의 젊은 민심은 민주통합당에 대한 호감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처음으로 총선을 경험한다고 밝힌 이지민 씨(여·22)는 “고등학교 때 광우병 사태와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새누리당은 절대 찍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며 여당에 대한 반감을 나타냈다. 이 씨는 “주위 친구들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은근히 많다. 대구 지역도 과거와 같은 몰아주기 현상이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대학원에 재학 중인 윤정희 씨(28) 역시 “하루가 멀다하고 날아드는 새누리당 예비후보들 문자메시지에 신물이 난다”며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해도 사력을 다해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새누리당으로부터 돌려놓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유를 묻자 윤 씨는 “개인적으로 새누리당이 제안하는 공약들은 성장모멘텀이 약하거나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어려운 선심성 공약이 대부분이다”고 평가했다.
대구 민심은 여전히 지역주의 틀 속에 갇혀 새누리당의 우세가 예상되지만, 반 MB 정서의 확산 등으로 인해 ‘무소속 돌풍’이 생길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무소속 돌풍이 가장 먼저 감지되고 있는 곳은 대구 지역 가운데 가장 낙후된 곳으로 꼽히는 서구 지역이다. 공교롭게도 2월 15일 아침, 서구를 지역 기반으로 했던 홍사덕 새누리당 의원이 공천 신청을 포기하고 향후 거취를 당에 일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구의료원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서구 지역은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이 대체로 심한 곳이다. 강재섭 홍사덕과 같은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지만 정작 나아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탄했다.
▲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서중현 전 서구청장 선거사무소. |
김태일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는 대구 민심을 ‘두 축의 대결’이라고 표현했다. 김 교수는 “현재 대구는 정치적 다양성에 대한 갈망과 MB정권의 실정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특히 ‘묻지마 투표’로 인해 지역주의가 악화되고 지역발전이 더뎌지면서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분위기도 있다. 다만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강해 MB정권에 대한 불신과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대한 신뢰라는 두 축이 팽팽하게 맞서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대구=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박 대통령 덕에 이만큼 살지”
▲ 달성군 주민들 사이에선 여전히 박근혜 위원장의 아성이 흔들리지 않았다. |
택시기사들 역시 ‘총선은 인물, 대선은 박근혜’라는 분위기였다. 택시기사 이세원 씨는 “한미 FTA 문제만 해도 노무현 대통령 때 시작한 것을 민주통합당이 지금 반대하고 있는 것 아니냐. 서민 정책은 내팽개치고 이미 결정된 협정을 가지고 젊은이들을 선동할 때마다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 씨는 “대통령이라면 정책에 관한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박근혜 위원장에게는 그런 믿음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위원장의 능력에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경북대학교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고 아무개 씨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관해 “자신의 주관이 없고 중간에서 요리조리 피해가는 느낌”이라고 평가하며 “아직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게 힘들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이 아무개 씨는 “박근혜 의원은 자신의 힘만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그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바타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대한 지지도는 한층 단단했다. 한 무료급식소에서는 박 위원장에 대해 묻는 것만으로 불쾌한 내색을 비치는 노인들도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권기호 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는 것 아니겠냐”며 “지금까지는 당 내 친이계와의 다툼에 밀려 대구지역 살리기에 힘을 싣지 못했다. 이번에는 꼭 대통령이 되어 지역 경제를 일으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