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통합당 최고위원회 회의 모습. 당내 중도개혁 성향의 인사들 사이에서 당이 지나치게 ‘SNS 여론’에 이끌려 다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하지만 다른 한켠에선 대통령의 회견 내용을 두고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다.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한 민주당 의원은 미리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이 “올 것이 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 이어 정부, 대통령까지 대야 총공세에 나서기까지 민주당이 너무 많은 빌미를 줬다는 얘기였다.
이의원은 “시민사회 출신들과 합당하면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었는데 그 부작용이 곪아 터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SNS를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지금 민주당 내 많은 사람들이 ‘SNS 여론’에 끌려다니며 감당할 수도 없는 과격한 정책과 주장들을 쏟아내고 있다”며 “4·11 총선 공천 때문에 숨죽이고 있을 뿐이지 당내에 ‘생각 있는 의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전했다. 이 의원의 반응은 당 지도부까지 가세한 ‘대책 없는 좌클릭’이 향후 민주당 내분의 불씨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듯했다.
실제로 공천권 앞에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처지인지라 드러내놓고 불만을 터뜨리는 이는 거의 없지만 최근 민주당의 좌클릭 경향에 대해 ‘이건 아닌데…’라는 식의 인식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특히 정치와 행정 경험이 풍부한 당내 중도개혁 성향 인사들의 우려가 크다.
민주당의 ‘좌클릭 논란’에 불이 붙은 것은 정책 분야에서다. 당 경제민주화특위 유종일 위원장이 총선 경제민주화 공약을 설명하면서 “재벌세를 신설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당이 ‘1% 특권층이 아닌 99% 국민을 위한 경제민주화’를 정강정책에까지 포함시켰지만 정부는 물론 재계, 학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결국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새로운 세목을 만들 계획이 전혀 없다”고 수습에 나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논란도 맥을 같이한다. 당초 구 민주당의 당론은 ‘한미 FTA 재재협상’이었지만 시민통합당과의 합당 이후 한명숙 대표는 물론 문성근 박영선 이인영 최고위원 등 당내 주요 인사들의 입에서 ‘한미 FTA 폐기’라는 말이 더 자주 등장했다. 정동영 천정배 이종걸 의원 등이 집회 현장에서 내지르던 구호가 어느덧 당 지도부의 구호로 탈바꿈한 것이다. 심지어 당내에서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박지원 최고위원도 자신의 트위터에 ‘닥치고 한미 FTA 폐기!’라는 구호를 하루가 멀다 하고 올리고 있다.
이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백지화 논란과 한데 얽혀 결국 ‘말 바꾸기’ 논란으로 비화됐다. ‘둘 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작한 일인데 그때는 뭘 하고 이제 와서 딴 소리냐’는 게 최근 여권 인사들이 민주당을 공격할 때 쓰는 단골 메뉴가 됐다.
정치 분야에서도 ‘너무 나갔다’는 평가를 받는 사례는 적지 않다. 우선 문성근 최고위원이 불을 붙인 이명박 대통령 탄핵 논란이 있다. 문 최고위원은 지도부 경선 때부터 “내곡동 사저 문제, 측근 비리 등에 이명박 대통령이 연루된 게 사실로 확인된다면 임기 하루를 남겨뒀더라도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최근에는 박영선 최고위원도 대통령 측근 비리가 터질 때마다 “이 정도면 탄핵감”이라는 말을 자주 쏟아내고 있다.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아픔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거슬리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본격적인 공천 국면이 시작된 뒤로는 김진표 원내대표 공천 배제설로 대표되는 ‘중도파 학살설’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한명숙 대표와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이 “당선 가능성보다 정체성을 우선시하겠다”고 말한 데서 촉발됐다. 외부 시민단체들이 한미 FTA 찬성자로 김 원내대표와 김동철 김성곤 박상천 송민순 의원 등을 지목했고, 최인기 의원은 4대강 사업 찬성자로 찍혔다. ‘총선에서 제거돼야 할 민주당 X맨’이라는 제목의 글들이 SNS를 통해 확산됐고, 시민통합당 출신 인사들의 입에서 이른바 ‘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의원’들의 이름이 공공연하게 오르내렸다. 급기야 언론에 ‘공심위가 김 원내대표에게 불출마를 요구했다’는 내용의 보도까지 나오자 백원우 공심위 대변인과 임종석 사무총장, 우상호 전략홍보본부장 등이 직접 나서 “김 원내대표는 정체성에 문제가 없다”고 옹호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지기까지 했다.
‘왼쪽’만을 향해 민주당이 질주하게 된 이유에 대해 당내에선 “과도한 SNS 집착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고참급 당직자는 “전당대회를 빼곤 당내 최고 의결기구인 최고위원회의 때조차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자판을 두드리는 한심한 사람들이 지도부입네 하고 앉아 있다”며 혀를 찼다. 이 당직자는 “젊은 층, 그중에서도 자기 주장이 강한 진보층이 주로 글을 올리는 SNS만 쳐다보며 그게 국민 일반의 생각인 양 착각하고, 그러다 보니 당이 중심도 없이 SNS 여론에 휩쓸려 다니고 있다”고 일갈했다.
전략통으로 꼽히는 또 다른 당내 인사는 “민주당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지지율이 올라간 이유는 전적으로 ‘가카(이명박 대통령)’ 덕분”이라며 “벌써 총선, 대선 다 이긴 것처럼 구는 모습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 지역의 한 전직 의원은 “한미 FTA 폐기 논란, 증세 논란 등이 불거진 뒤로 현장에서 만나는 유권자들의 시선도 달라졌다”며 “국민에게 신뢰를 심어주지 못하고 건방 떨다간 한방에 갈 수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