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프로야구 승부조작 의혹을 제보했던 K 씨는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은 연루자가 몇 더 있다고 주장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놀랍게도 K 씨의 제보가 있은 지 불과 2주 후 프로야구 승부조작 의혹 사건이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그가 첫 제보 당시 거론한 박현준, D 선수가 실제 승부조작 의혹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현재까지 검찰이 수사선상에 공식적으로 올린 선수는 박현준과 김성현, D 선수 등이다.
기자는 지난 2월 22일 K 씨를 직접 만났다. 그는 자신을 오랫동안 사설 스포츠베팅 사이트에서 활동해 온 전문 유저로 소개했다. 그는 현재까지 수사선상에 올라있는 선수들과 아직까지 거론되지 않고 있는 선수들 몇몇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K 씨는 “지난달 한 브로커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그의 입에서 승부조작과 관련된 얘기를 전해 들었다. 당시 그 브로커는 박현준과 D 선수를 비롯해 A, B, C 선수 등도 직접 거론했다. 그런데 그 브로커가 거론한 선수들 중 실제로 박현준과 D 선수가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더라. 신빙성 있는 얘기였지만 실제로 맞아떨어져가니 나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K 씨는 승부조작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현재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한 선수는 브로커로부터 제안을 받은 후 모두 세 차례 실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조작이 쉬운 볼넷 이벤트 게임이었다. 처음 3000만 원을 받고 실행한 경기는 볼넷을 의도했으나 상대편 타자가 높은 공을 커트하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한다. 나머지 두 차례는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해당 선수의 주장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설명인 셈이다.
이어 K 씨는 “사실 볼넷 하나는 경기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당연히 축구경기의 골키퍼처럼 승부조작에 대한 부담도 덜하다. 경기 초반 볼넷 한 번 던지고 거액의 돈을 챙길 수 있다면 큰 유혹이 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K 씨의 설명에 따르면 프로야구에서 승부조작에 주로 이용되는 것은 볼넷 이벤트 게임이었다. 공식 스포츠 베팅이 단순히 팀의 승패와 점수를 가지고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것과 다르게 사설 스포츠 베팅에는 그 것 이외에 볼넷, 병살타, 특정 선수의 안타 여부 등을 이벤트 베팅 항목으로 잡는다.
특히 K 씨는 아직까지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은 몇몇 선수들의 실명을 거론했다. 그는 “모 구단의 유명 불펜투수인 A 선수가 지난해 선발등판을 했는데 그중 두 차례 승부조작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팀 선발투수 B 선수와 C 선수 역시 승부조작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선수들은 어떻게 브로커와 접촉해 승부조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일까. K 씨는 이에 대해 “한국 사회는 학연과 지연이 중요하지 않나. 운동부 선후배 사이는 특히 돈독하다. 같이 운동을 했거나 같은 학교에서 알고 지낸 지인들이 브로커 혹은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는 얘기가 많다. 단지 큰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과의 인간적인 유대 속에서 이런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K 씨는 프로야구 승부조작 의혹 사건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보다 휠씬 더 심각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승부조작에 참여한 선수들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특히 저 연봉을 받는 신인급 선수들의 경우가 더 심하다. 한 번 제대로 하면 자신의 연봉을 능가하는 돈을 단박에 챙길 수 있다. 또 사설 스포츠 베팅은 정말 돈이 되는 사업이다. 지방 곳곳에 브로커들이 활동하고 있고 선수들도 이러한 유혹에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현재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다지만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프로야구는 이전 프로축구나 프로배구보다 엄청나게 큰 시장이다. 그만큼 사회적 파장도 클 수밖에 없다. 수사당국 입장에서도 부담이 가는 사건이다”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한 조심스러운 전망도 덧붙였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대구지검은 최근 해외 전지훈련에 참가 중인 몇몇 혐의자들을 직접 소환하는 등 수사를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검찰의 사정칼날이 어디까지 확대될지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승부조작 소스도 물밑거래
그동안 일련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프로스포츠 승부조작 사건의 중심에는 ‘사설 스포츠베팅 사이트’라는 독버섯이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러한 사이트들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되기 때문에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실체가 불분명한 사이트보다 더 폐쇄적인 사이트가 존재한다고 한다.
K 씨는 이에 대해 “스팸을 통해 불특정한 다수를 끌어들이는 일반 사이트는 해킹 및 먹튀 소지가 많다. 때문에 소위 진짜 선수들은 일반적인 사이트는 꺼려하고 보다 폐쇄적인 점조직 사이트를 애용한다. 점조직 사이트는 운영자가 밑에 총판을 두고 어느 정도 검증된 유저들을 끌어 모아 운영되는 형태다. 이러한 사이트는 기존 유저들의 추천을 통해서만 가입이 허용된다. 때문에 해킹이나 먹튀 위험이 적다. 물론 정기적으로 URL주소를 변경하지만 장기간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사이트 게시판 곳곳에서 승부조작 소스가 거래되는 것을 보기도 했다. 아마도 거액을 거는 큰손들이 이러한 소스를 브로커들로부터 사들여 베팅을 하는 것 같다”라며 사이트 내부에서 승부조작 소스가 거래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
프로농구는 안전지대일까“코트에도 곧 쓰나미 온다”
국내 프로농구는 승부조작의 안전지대일까.
프로농구 역시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오히려 프로농구는 사설 스포츠베팅 분야에서 마음만 먹으면 가장 승부조작이 손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사설 스포츠 사이트에서 국내 프로농구는 겨울시즌 주요 베팅 종목이다. 축구나 배구, 야구보다 더 다양한 이벤트 항목이 존재한다. 3점슛 성공 여부, 첫 득점, 점수 언더 오버, 홀짝, 자유투 등 한 게임만 해도 걸려있는 이벤트 게임이 수두룩하다.
K 씨는 “브로커들이 프로농구를 가만 놔둘 리 없다. 돈이 되는데 안하겠느냐. 분명 프로농구도 승부조작 쓰나미가 불어 닥칠 것이다. 더군다나 농구는 다른 종목보다 조작도 쉽다. 3점 슛 이벤트 게임만 놓고 보자. 3점 슈터 한 명만 섭외해서 첫 슈팅을 일부러 불발시키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다. 경기 초반 3점 슛 하나 놓쳤다고 해서 경기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다. 선수 개개인 부담도 없고 성공 가능성도 높다”라며 “정확한 사안을 접하지는 않았지만 몇몇 팀과 관련한 의혹을 전해들은 바도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과 조건만 놓고 보면 프로농구 역시 승부조작 위험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프로농구가 승부조작 쓰나미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