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처럼 자체 발행 코인으로 투자받을 수 없는 구조…‘신뢰성’ 확보 위한 움직임 분주
가상화폐 전문매체인 코인데스크US는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각) FTX의 계열사이자 가상화폐 투자업체인 ‘알라메다리서치’의 자산 146억 달러(약 19조 4326억 원) 대부분이 유동화가 어려운 구조로 이뤄져 있다고 보도했다. 달러 등 안전자산이 아닌 위험자산 투자에 자산을 활용했다는 지적에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지난 6일 보유하고 있던 FTX의 자체 발행 코인인 FTT 전량을 처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FTX에서 거래하는 투자자 대부분이 가상화폐를 현금화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FTX는 위기에 처했다. 결국 FTX는 지난 11일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FTX의 부채 규모는 100억 달러에서 최대 500억 달러(약 13조 3100억~66조 55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채권자는 10만 명 정도로 예상된다.
세계 2위 거래소의 몰락으로 가상자산 시장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뒤이어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인 크립토닷컴도 이더리움 32만 개를 게이트아이오 거래소로 송금한 사실이 알려졌다. 거래소가 고객 자금 인출에 대비한 준비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해 ‘돌려막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크리스 마잘렉 최고경영자(CEO)가 곧장 실수였다며 해명하기는 했지만 투자자들의 우려는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 거래소도 과연 안전한지 의구심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거래소를 둘러싼 잡음이 심심찮게 들려 왔기 때문이다.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따라 금융정보분석원장이 신고를 수리한 거래소의 창업자가 사기 혐의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거나, 해당 거래소의 실소유주가 따로 있다는 의혹 등 신뢰도를 잃을 만한 사례들이 자주 노출되고 있어 그 신뢰성에 물음표가 붙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고객 예치금을 채권자들의 대출금 상환에 사용한 FTX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백서를 공개한 후 신규 암호화폐를 발행해 투자자에게 사업 자금을 모집하는 ICO((Initial Coin Offering)가 현재로서는 금지돼 있다. FTX처럼 자체 발행 코인으로 투자받거나 사업을 할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국내 5대 거래소는 FTX와 같은 사태가 국내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며 우려를 일축했다. 지난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와 디지털자산특별위원회가 '디지털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안심 거래 환경 조성'을 주제로 연 제4차 민·당·정 간담회에 따르면 모든 거래소가 고객 예금에 대해 특금법에 따라 기업 고유 자산과 분리해 은행에 개별 보관하고 있다.
주요 5대 가상자산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동의 자율규제안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거래소별 투자자 보호 방안도 마련했다. 빗썸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전용 사이트를 신설했다. 업비트는 투자자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코인원은 가상자산 명세서 한글 공개, 안전 거래 수칙 안내 캠페인 등을 하고 있다.
업비트는 2018년부터 보유 중인 디지털자산, 원화에 대한 실사 보고서도 분기별로 공지하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빗도 지난 16일 “FTX 사태로 글로벌 거래소들의 준비금 증명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 보호를 위한 투명성 제고 및 안전한 거래 환경 조성을 위해 앞장서서 거래소 보유자산 공개 서비스를 오픈했다”고 밝혔다. 코빗에 따르면 코빗 거래소가 보유한 가상자산 수량과 지갑 주소를 공개할 예정인데, 가상자산 보유량뿐 아니라 거래 내역까지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가상자산 시장은 신뢰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점쳐진다. 금융당국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은 “국내 가상자산 매각 관련 논란, 테라·루나 사태, 최근 FTX의 파산 신청 등 일련의 사건으로 가상자산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제공될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다. 가상자산은 중개 거래, 신사업 활용 등에 따른 다양한 회계 이슈가 있으나, 새로운 분야로서 업권법, 회계· 감사지침은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라며 “가상자산 공시 강화를 위한 회계기준 개정 및 주석공시 모범사례 마련, 회계감사 가이드라인 제시 등을 통해 회계실무 지원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가상자산 발행(매각), 보유, 가상자산 사업자 관련 정보에 대한 주석 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신설한다. 가령 거래소는 보유 중인 가상자산 관련 공시뿐 아니라 고객에게 위탁받은 가상자산에 대한 회계정책, 규모 및 관련 위험, 제3자 위탁보관 여부 등을 공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발사도 가상자산의 사용 용도, 개발된 가상자산의 총 수량, 개발사 보유 수량 등 개발한 가상자산의 특성 등 주요 사항, 회계정책, 개발사의 의무(백서 등) 및 이행 정도, 가상자산 매각 시 매각 수량 및 수익 인식 여부 등을 공시해야 한다.
전통 금융업계가 본격적으로 가상자산 시장에 진출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가상자산 정보 플랫폼 쟁글 리서치 ‘FTX, 바이낸스 사태의 발단’에서는 “가상자산 업계의 미래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장의 우려대로 전반적인 시장 침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이 사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 금융업계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한 후 도입된 볼커 룰은 위험투자 행위 금지를 주요 골자로 한다. 이를 준수하고 있는 은행들의 건전성은 그 당시 대비 개선이 됐다. 이러한 시스템을 갖춘 전통 금융회사들 위주로 가상자산 업계가 재편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연달아 발생한 사태는 가상자산 생태계에 단기적인 위기를 초래했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기회라고 본다. 암호화폐에 대한 공시뿐 아니라 암호화폐를 생성하는 재단, 재단의 대표뿐 아니라 거래소 등 가상자산 시장과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신뢰할 만한 인물 혹은 기관의 검증을 받은 이해관계자를 구분지어 투자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 예금자보호법과 같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가 가상자산 시장에도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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