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 검찰이 ‘13억 송금’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키맨’ 경연희 씨도 소환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경 씨가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경 씨와 노 씨의 서명이 담긴 허드슨클럽 435호 이면계약서. |
검찰은 2월 25일 은 씨로부터 “누구 돈인지는 모르지만 경 씨에게 13억 원을 환치기해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마피아 영화를 방불케했던 13억 돈상자와 마스크 남성의 존재, 1만 원권 13억 원이 환치기되어 달러로 경 씨에게 들어갔다는 댄 리 형제의 주장이 서서히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이제 검찰수사는 경 씨에게 들어간 자금의 출처를 규명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즉 경 씨에게 유입된 돈이 정연 씨와 노 전 대통령 일가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으로 압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키맨’은 단연 경연희 씨다. 검찰은 경 씨와 정연 씨 간 자금흐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경 씨의 카지노 출입 여부와 숙박기록, 도박 관련 일체의 사실확인은 물론 경 씨로부터 들었다는 댄 리 씨의 주장에 대한 세세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검찰은 2월 27일 미국에 있는 경 씨에게 출석을 통보한 상태다. 경 씨는 2009년 정연 씨가 계약한 것으로 알려진 ‘허드슨 클럽 400호’의 매입자로 드러나 노 일가의 해외 자금유출 의혹을 풀 수 있는 키맨으로 부상한 바 있다. 따라서 그녀의 검찰출석 여부에 따라 수사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댄 리 씨는 기자에게 “분명한 사실은 정연 씨와 친한 경 씨로부터 노 일가 비자금 관련 얘기를 수차례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연 씨의 돈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경 씨에게 전해졌고 본의든 아니든 일부가 경 씨의 도박자금으로도 사용됐다는 것이다. 2006년을 비롯해 수차례 노 일가 돈이 들어온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은 언급않겠다. 13억 원은 나와 내 동생이 박스돈 전달 및 환치기에 직접 개입했기에 사실 그대로 밝히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사실이 아니라면 돈상자 전달 및 환치기에 개입한 치부까지 드러내면서까지 굳이 검찰조사를 촉구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였다.
경 씨를 통해 검찰이 확인해야 할 사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경 씨를 통해 댄 리 씨가 들었다는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자금문제와 관련된 충격적인 주장들에 대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 씨는 댄 리 형제와의 진실게임도 불가피해보인다.
▲ 제보자가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고 주장하는 돈상자. |
그렇다면 문제는 경 씨가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밀에 대해 어느 정도 깊이 알고 있었는지, 또 그녀가 댄 리 씨에게 전달한 비밀내용들은 사실인지로 압축된다. 이에 대해 댄 리 씨는 기자에게 “경 씨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는 세세한 내용을 전달해준 바 있다. 모두 노 일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민감한 내용들이었는데 댄 리 씨 본인도 “얼마 후 뉴스에 노 일가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비자금 얘기가 나와서 많이 놀랐다”고 회고한 바 있다.
경 씨로부터 들었다는 댄 리 씨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경 씨는 아파트 뒷거래와 수차례에 걸쳐 이뤄진 비자금 해외반출건에 대해서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에 있던 댄 리 씨가 언급한 시기나 세세한 정황은 당시 검찰수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었고 검찰의 추리와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댄 리 씨는 “경 씨는 ‘권양숙 여사가 식사자리에서 100만 달러가 든 가방을 들고 와 전해줬다. 국빈 자격으로 방문하면 세관검사를 받지 않기에 가능하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권 여사로부터 받은 지폐들을 담뱃재를 털어가며 구기고 헌 돈과 섞어서 썼다’고 말했다. 노 일가의 자금유출에 대해 얘기하면서 경 씨는 ‘흥! 서민 대통령은 무슨…’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또 댄 리 씨는 경 씨가 허드슨클럽으로 인해 상당히 곤란해 한 정황, 그리고 그로 인해 정연 씨와의 관계가 틀어졌던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경 씨는 내가 실직한 며칠 후 찾아와 ‘도박행위 및 원화유출, 아파트 문제 등으로 한국에 있는 아버지 앞으로 협박문서가 날아왔다’며 나를 의심하기도 했다. 아파트 문제로 경 씨와 정연 씨 사이도 틀어졌다. 계약기간이 지나도록 정연 씨가 명의이전 등 후속조치를 하지 않았고 그 아파트로 인해 계속 불편한 일이 생기자 경 씨가 정연 씨에게 ‘빨리 연락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일이 있다. 그런데 정연 씨가 서울 목동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전화번호를 홀랑 바꿔버렸다더라. 지인을 통해 번호를 알아낸 경 씨는 정연 씨와 ‘집 때문에 문제가 너무 복잡하다. 타이틀을 가져가든지 집을 가져가든지 빨리 조치를 취하라’며 불편한 통화를 하기도 했다”
특히 댄 리 씨는 경 씨와 가까이 지내면서 알게 된 초특급 비밀들로 인해 갖은 협박을 당했다고 호소한 바 있다. 그는 “경-노 간 아파트 뒷거래가 미주 한국일보에서 다뤄질 때는 ‘입조심하지 않으면 직장에서 짤린다’고 하더니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에도 경 씨는 나를 수차례 회유·협박했다. 노 일가 비자금 문제는 물론 모든 일에 대해 입을 닫으라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 있는 가족을 거론하기도 했다. 회유와 협박을 반복하던 경 씨는 ‘정연이에게 돈을 더 빼낼 수 있으니 서류(이면계약서)로 협박하자. 한몫 챙겨주겠다’는 제안도 한 적이 있으나 거절했다”고 폭로했다.
이처럼 취재과정에서 밝힌 댄 리 씨의 진술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는데 경 씨가 검찰 수사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댄 리 씨를 협박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가 지난 2007년 계약했던 것으로 알려진 미국 뉴저지 고급 아파트 단지인 허드슨클럽. 연합뉴스 |
이에 대해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정연 씨가 당초 400호를 매입하려 했으나 435호로 계약변경을 요구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는 노 전 대통령 일가의 해외비자금 조성의혹에 대한 검찰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따라서 아파트 계약 문제와 외화반출 내막을 상세히 알고 있는 경 씨가 약점을 잡고 400호가 아닌 435호에 대해 급히 이면계약서를 작성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연 씨가 ‘말 못할’ 이유로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이 계약서에 서명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이와 관련 댄 리 씨는 기자에게 “경 씨는 노 일가의 자금 문제에 대한 얘기를 수차례 했다. 이유가 어떻든 노 일가의 돈 200만 달러 이상이 정연 씨를 통해 경 씨에게 건네진 것은 사실이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연 씨가 13억 원이라는 거금을 하루 만에 만들어 경 씨에게 선뜻 보낸 것도 정연 씨가 뭔가 큰 약점을 잡혔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따라서 향후 검찰수사는 댄 리 씨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경 씨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댄 리 씨가 돈을 전달받은 장소와 날짜, 당시 상황 등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고 경 씨의 도박자금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만큼 향후 경 씨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여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경 씨가 언급했다는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외화밀반출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현재 13억 원이 경 씨에게 전달됐다는 은 씨의 진술이 나온 이상 검찰 수사는 △경 씨가 실제로 카지노에서 거액을 탕진했는지 △막대한 도박자금의 출처가 어디인지 △정연 씨의 돈을 비롯한 자금들이 왜, 어떤 과정을 거쳐 유입됐는지 △경 씨에게 유입된 자금이 도박자금 외 어디에 쓰였으며 누구를 통해 빼돌려졌는지 △아파트 계약과 자금 유입으로 엮인 경 씨와 정연 씨의 수상한 관계의 실체는 무엇인지 △허드슨클럽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등을 규명하는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댄 리 씨는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문제와 관련해 “경 씨에게 돈이 유입된 과정 및 흐름을 파보면 정연 씨 문제를 포함한 모든 의혹들에 대한 실마리가 잡힐 것”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결국 경 씨와 정연 씨의 석연찮은 뒷거래 의혹 및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의혹 사건을 풀 열쇠는 경 씨가 쥐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물론 정치권이 경 씨의 입장 표명 등 그의 향후 행보와 ‘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총선 앞두고 경연희 입국 압박
검찰은 노정연 씨에 대한 조사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검찰은 우선 경 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경 씨가 검찰 소환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안들에 대해 진술해야 할 경 씨가 자진입국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경 씨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수사가 공전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이 경 씨의 부친을 불러 면담 형식의 조사를 하는 등 전방위 압박을 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재미블로거 안치용 씨는 소식통을 통해 들었다는 내용을 토대로 경 씨 측에서 긴박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기사를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실었다. 경 씨가 자신의 법정 대리인을 물색하는 등 검찰수사를 대비하고 있으며 지인에게 언론 문제 등의 일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경 씨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와 관련해 적잖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당사자인 댄 리 씨가 물증과 증인들을 바탕으로 상당히 구체적으로 범죄 혐의를 주장하고 있는 만큼 13억 원 송금 미스터리와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해명을 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 씨가 귀국해 검찰조사에 응한다 해도 모든 의혹이 해소된다는 보장은 없다. 경 씨가 노 전 대통령 일가와 관련해서 밝혀야 할 내용들은 하나같이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핵뇌관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경 씨가 댄 리 씨에게 했다는 얘기들을 인정할 경우 그동안 의혹만 무성했던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뇌관은 다시금 수면 위로 급부상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허드슨클럽 미스터리에 대한 진실규명에 국한하지 않고 중단됐던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수사가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보다 정치적 후폭풍을 예단하고 있는 경 씨로서는 막중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미 노 전 대통령 측에서 경 씨와 어떤 식으로든 조율작업에 들어갔을 것이란 관측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