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 박현준. 사진=LG 트윈스 |
두 선수를 시작으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제 팬들의 눈은 과연 이번 파동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부 프로야구 인사가 가담 선수가 더 있다는 증언을 하는가 하면 이미 지난주 본지 취재결과 몇몇 유명선수들이 경기조작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수사당국의 칼날은 이제 누구를 겨누고 있는 것일까.
지난 2월 28일, 대구지검 강력부는 해외 전지훈련에 불참하고 국내에 남아있던 LG 유망주 김성현을 전격 체포했다. 그동안 혐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인해 오던 김성현은 결국 검찰 조사과정에서 혐의를 자백했다. 그는 “‘1회 볼넷’을 두고, 고교 선배 브로커 김 아무개 씨와 두 차례 경기조작을 모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성현은 지난해 4월 24일 삼성전과 5월 14일 LG전에서 각각 5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현 소속팀인 LG로 트레이드되기 전으로 넥센 소속이었다. 두 번째 LG전에서는 경기조작에 실패한 뒤 브로커로부터 협박을 받고 도리어 돈을 뜯겼다는 새로운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LG 김성현. 사진=LG 트윈스 |
이제 검찰의 수사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밝힌 넥센 문성현이 2월 29일 급거 귀국해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았다. 문성현은 그동안 주장했던 내용과 일관되게 “경기조작 제안과 관련한 이상한 전화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곧바로 제안을 거절했다”고 진술했으며 1시간가량 조사를 받은 후 귀가했다. 현재 문성현은 가고시마 캠프에 재합류했다.
또 다른 혐의자 LG 박현준은 문성현과 같은 날 귀국했다. 그는 귀국 당시 피곤한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지만 취재진 앞에서 옅은 미소를 띠며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 자리에서 그는 “나는 하지 않았다. 잘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 한다”며 검찰출두 직전까지 결백을 재차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거짓말도 오래 가지 않았다. 3월 2일 자진 출두한 박현준은 8시간의 장시간 조사 끝에 결국 자신의 혐의를 일부 시인했다. 앞서 구속된 김성현과 브로커 김 씨와의 대질심문이 결정적이었다. 박현준은 지난해 8월께 두 차례에 걸쳐 경기당 300만 원씩 총 600만 원을 받고 경기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박현준은 단순한 제안을 넘어 경기당 500만 원을 요구하며 흥정까지 벌인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 검찰은 순순히 혐의를 자백했고 앞으로 조사에 성실히 임한다는 박현준의 뜻을 전달받아 그를 불구속시키기로 결정했다.
혐의가 드러난 두 선수는 결국 유니폼을 당장 벗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검찰 조사 직전까지 결백을 주장하다 혐의가 입증된 K리그 ‘양치기소년’ 최성국(현재 리그 영구퇴출)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검찰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프로야구 경기조작’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미 혐의가 드러난 두 선수 외에도 몇몇 구단과 또 따른 선수들이 경기조작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다.
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는 <일요신문>(1032호)을 통해 “지난해 제보받은 내용에 따르면 최소 3개 이상의 구단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일요신문>은 또 1033호에서 사설스포츠베팅사이트 전문 유저와의 인터뷰를 통해 몇몇 선수가 경기조작에 참여한 정황을 포착해 보도한 바 있다.
현재 일본에서 전지훈련 중인 모 프로야구팀 감독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실 몇몇 선수들의 혐의가 드러나기 전부터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검찰 수사에 무척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개막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이다. 물론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려는 검찰의 신중한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정황이 일찍 포착된 만큼 좀 더 수사를 빨리 시작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추가적인 경기조작 수사에 대해 “들리는 얘기로는 현재 혐의가 드러난 선수들 외에도 또 다른 연루 선수가 있을 것이란 소문이 팽배하다”며 승부조작 사건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기자와 통화한 프로야구 전문블로거 김진희 씨는 “프로야구 팬으로서 매우 안타깝지만 대승적인 차원에서 도려낼 것은 확실히 도려냈으면 한다. 항간에 프로야구 시장규모를 감안해 몇몇 선수만을 대상으로 ‘꼬리 자르기’ 수사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프로야구 전체를 대상으로 공정한 수사가 진행되는 것이 대다수 프로야구 팬들의 진심어린 바람일 것이다”라며 근심어린 충고를 건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선배님’을 조심하라
김성현, 박현준을 경기조작에 끌어들인 것은 앞서 구속된 브로커 김 아무개 씨였다. 그런데 김 씨는 다름 아닌 김성현의 고등학교(제주고) 선배이자 프로구단 입단에 실패한 전직 대학야구 선수(영남대)로 밝혀졌다. 소문만 돌던 선수-브로커 사이의 학연 커넥션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이미 <일요신문> 1033호에선 한 전문 유저와의 인터뷰를 통해 “경기조작에는 학연 지연을 토대로 선수들을 포섭하는 브로커들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는 자못 심각한 문제다. 앞서 승부조작파동이 있었던 프로배구에서도 이러한 선후배 커넥션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스포츠계의 엄격한 선후배 관계가 경기조작 파동의 큰 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브로커 김 씨의 경우처럼 선후배 커넥션을 이용해 활동하고 있는 또 다른 브로커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검찰의 수사방향도 출신학교 자료를 토대로 선수-브로커의 커넥션을 쫓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프로구단 입단에 실패한 전직 선수들의 추가적인 가담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