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감독님의 말씀에 마음 움직여…삼성서 뛴 14년 시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특히 이번 프로야구 스토브리그를 보면 영원할 줄 알았던 선수들이 FA를 통해 유니폼을 바꿔 입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09년 프로 데뷔 후 14년을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김상수(32)도 그중 한 명이다.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은퇴할 줄 알았던 김상수가 FA를 통해 KT와 4년 총액 29억 원(계약금 8억 원 연봉 15억 원 옵션 6억 원)에 계약을 맺었다. 내년부턴 정들었던 대구를 떠나 수원에 새 둥지를 틀게 됐다.
11월 29일 대구에서 만난 김상수는 KT와의 계약 배경에 이강철 감독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리 팀에 와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해준 이 감독의 설명이 갈등하던 김상수에게 답을 제시해준 셈이다.
김상수는 프로 데뷔 후 두 번째 FA 자격을 획득했고 FA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서를 내기 전 고민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나이가 있는 터라 1년을 더 미루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는 대답을 들려준다.
“첫 번째 FA 때는 1년을 미뤄서 다음해에 FA 신청을 했어요. 두 번째 FA는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습니다. 올 시즌 포지션도 변경했고 내년 시즌 더 잘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FA 신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김상수가 첫 FA 자격을 갖춘 2017시즌 때는 허벅지 부상으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2018시즌 뒤 FA 시장에 나갔다. 당시 김상수는 삼성과 3년 총액 18억 원에 계약했다.
두 번째 FA가 된 올해, 김상수한테 가장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한 팀은 KT였다. KT는 주전 유격수 심우준의 군 입대로 자리가 빈 상태였고, 삼성에서 유격수로 자리매김했던 김상수가 절실히 필요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구단과 선수의 FA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마지막 결정을 앞두고 김상수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이강철 감독이 전화로 선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김상수에게 삼성에서 잡아주길 바라진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답변했다.
“잡기 어려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속으론 절 잡아주길 바랐습니다. 누구보다 삼성에 애정이 컸고, 이 팀에서 은퇴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남고 싶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좋은 내용으로 KT와 계약했고, 저를 필요로 하는 팀에서 뛰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삼성에 아쉬움이 남는 거지 KT에서 선수생활 하는 걸 걱정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김상수는 어린 시절 서울에서 구미로 이사했다가 야구를 시작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대구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이후 지금까지 줄곧 대구에서 생활했다. 수원으로 이사는 내년 스프링캠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어머니와 함께 지냈는데 수원에선 처음으로 혼자 생활할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고생 많이 하셨어요. 제가 중학생 때 어머니가 분식집을 하셨는데 학교에서 훈련 끝나면 가게에 들러 어머니가 배달했던 그릇들을 회수하는 걸로 일을 도왔습니다. 가족들이 분식집 2층에 살고 있었거든요. 처음으로 집을 장만한 게 프로 입단하면서였어요. 당시 삼성과 입단 계약을 맺고 받은 계약금으로 집을 마련했습니다. 그때 제 방이 처음 생겼어요. 그 집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고요. 제가 프로 14년 차인데 그 집에 산 지도 14년이 됐네요.”
KT와의 FA 계약이 발표되자마자 김상수는 삼성 후배들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김지찬, 이재현 등은 김상수의 계약을 축하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더 진하게 표현했다. 김상수는 후배들의 문자들을 확인할 때마다 ‘내가 삼성에서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재현이 장문의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선배님이랑 같이 선수 생활해서 영광이었고, 그동안 많은 걸 배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함께하지 못 하는 안타까움이 문자에 고스란히 담겨있더라고요. 재현이의 메시지를 보고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이 후배들도 이전 제가 삼성에서 선배들이 떠날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었던 것이죠. 제가 좋아했던 선배가 FA나 트레이드를 통해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 무척 헛헛했거든요. 믿고 의지할 선배가 사라졌다는 생각에 더 그런 감정이 생겼어요. 제가 삼성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진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아쉬움을 표현해주는 후배들이 있어 정말 고마웠습니다.”
김상수는 삼성 라이온즈파크에 있는 라커룸을 정리하지 못 했다. 시즌 마치고 라커룸 청소하느라 짐 정리를 했지만 그걸 갖고 오진 않았다는 것. 삼성 구단에 인사차 방문할 때 라커룸을 비울 계획이지만 시기를 미루고 있을 뿐이다.
“제가 구미에 있는 도산초등학교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 당시 삼성 선수들이 구미까지 방문해서 어린 선수들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이승엽 선배님이 구미에 오셨거든요. 지금도 유명하시지만 그때도 홈런왕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그런 스타가 구미에 오신 걸 보고 엄청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으면서 ‘아, 나도 이승엽 선수처럼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경북고에 진학해 선배 이승엽의 향기를 진하게 느낀 후 삼성 지명을 받았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인 때는 이승엽 선배님이 일본에서 활약 중이라 함께 뛸 수 없었지만 이후 삼성으로 복귀하셨을 때 선배님이 1루에, 제가 2루에서 선배님에게 공을 던지는 장면은 잊히질 않습니다. 정말 가슴이 두근거렸거든요. 지금은 두산 감독님이 되셨고, 상대 팀으로 만나야 하는 감독님과 선수 사이지만 저한테 선배 이승엽은 가장 닮고 싶었던 프로 선수로 기억될 것 같아요.”
김상수한테 이승엽은 단순한 롤 모델이 아니었다. 야구 인생의 멘토였다. 이승엽이 2017시즌을 마치고 은퇴했을 때 당시 삼성 주장이었던 김상수는 이승엽의 은퇴식 때 꽃다발을 전달하며 많은 눈물을 쏟았다. 이후 야구로 힘들어질 때마다 김상수는 이승엽의 은퇴식 영상을 틀어 놓고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고 회상한다.
“KT 구단과 계약을 마치고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삼성에서 보낸 14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라고요. 계약 소식이 알려지고 제 개인 SNS에 팬들이 많은 글을 남겨주셨는데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KT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다 보면 지금의 감정들은 잘 가라앉게 될 거예요. FA 계약 후 이승엽 감독님한테도 전화를 드렸어요. 축하한다고, 멋지게 잘 해보라고 덕담을 해주시더라고요. 제 나이가 이제 만으로 서른두 살이거든요. 30대 중반이 아니에요. 위축되지 말고 어깨 펴고 당당히 KT 선수로 열심히 뛰겠습니다. 그게 제 몫이고 역할이니까요.”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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