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은 해원옹주를 직접 만나 소송에 얽힌 오해와 진실을 확인했다. 사진은 해원옹주가 기거하는 서울 동자동 건물.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때 해원옹주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까지 오르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소식을 접한 대부분 네티즌들은 무능한 몰락 왕조의 후손이 사사로운 자기 권리를 찾아 나섰다며 많은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결과 송사의 당사자로 알려진 해원옹주는 이번 송사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3월 3일 <한국일보> <중앙일보> 등 주요 일간지들은 고종황제의 손녀딸이자 황실복원단체 ‘황족회’의 수장인 해원옹주(93)가 양부 이기용 씨의 땅을 되찾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보존등기 말소 청구소송’을 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원옹주는 양부의 후손 15명과 함께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토지는 1만 2700㎡(3800여 평) 규모로 하남시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965년 토지조사 과정에서 정부 소유로 넘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토지의 위치와 용도가 불분명해 정확한 시세를 산정할 수는 없었지만 현지 부동산에 문의한 결과 용도에 따라 최소 40억 원에서 최대 10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손들은 현재 조선총독부 자료에 의거해 “정부가 선친 이기용 씨가 물려준 땅을 부당하게 취득했다”며 “이 땅에 대한 정부의 소유권 보존등기를 말소하고 후손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간지의 보도대로라면 해원옹주는 민족의 원흉인 조선총독부의 자료를 근거로 황족의 권리를 주장하는 꼴이 된다.
기자는 지난 3월 6일과 8일, 해원옹주가 기거 중인 서울 동자동 ‘황족회’ 건물을 방문했다. 2006년 황실복원단체인 ‘황족회’에 의해 조선의 30세 황위 계승자로 추대된 해원옹주는 2007년부터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기자가 직접 해원옹주를 만나본 결과 그는 93세라는 노령임에도 아직까지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기자는 해원옹주로부터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양부의 송사 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처음 듣는 내용이다. 난 그런 송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지난해 여름, 이기용 가문의 후손 한 명이 인사를 하러 온 적은 있지만 등본과 같은 서류를 준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해원옹주는 양부 이기용 씨 토지반환에 관한 송사 사실은 물론 본인을 향해 쏟아지는 세간의 비난에 대해서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함께 자리한 황족회 이성주 비서실장은 최근 언론보도 내용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나도 최근에야 뉴스를 보고 알았다. 해원옹주는 송사에 동참한 적도 없고 어떤 서류도 제출한 적이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송사는 이기용 씨 자손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황족회와는 무관한 일이다. 단지 해원옹주는 어린 시절, 황실이 무너지자 먼 친척인 이기용 씨 댁에 호적을 올렸을 뿐이다. 사실상 그 쪽 집안과는 왕래도 드물었다”고 주장했다.
해원옹주는 고종의 손녀딸이자 의친왕의 친딸로 알려졌다. 현존하는 황실의 제일 큰 어른인 셈이다. 대한제국이 망하고 황실이 무너지자 후첩의 딸이었던 해원옹주는 15세 되던 해, 형제 4명과 함께 먼 친척인 이기용 가문에 호적을 올렸다고 한다. 이기용 씨는 흥선대원군 의 형님인 흥완군 이차응의 종손으로 해원옹주에게는 ‘재종백숙부(7촌)’가 된다.
소장이 제출됐다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확인해 보니 해원옹주의 이름으로 송사가 걸려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소장은 지난 2월 29일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 송사에 관한 해답은 이기용 가문의 후손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기자는 송사의 실질적인 당사자인 이기용 가문의 한 후손과 직접 통화할 수 있었다. 그는 최근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대해 무척 불쾌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도대체 언론에서 어떤 의도로 송사가 보도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지금 선친 땅에 대해 ‘원소유자 확인소송’을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 그 땅이 우리 선친 땅인지 확인이 된 상황이 아니다. 반환소송은 그 다음 단계이지 지금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장에 해원옹주의 이름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소유자 확인소송’에는 자녀들의 이름 모두를 기재해야 유리하다고 들어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소유자 확인소송’에는 특별히 소송자 명단에 해당하는 등본이나 인감과 같은 서류가 필요 없다. 단지 해원옹주가 법적으로 우리 가문 호적에 올라와 있기 때문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해원옹주가 소송을 주도한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라고 해명했다.
해원옹주의 송사 내막에는 이렇듯 많은 오해가 뒤섞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기용 가문의 후손들은 일단 ‘소유자 확인소송’을 통해 선친의 재산임이 밝혀진다면 국가를 상대로 ‘반환소송’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일제 때 작위 ‘친일파’ 오명
이번에 제기된 송사에는 또 한 가지 논란이 숨겨져 있다. 현재 후손들이 해당 토지의 원소유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기용은 우리 역사 속에서 대표적인 친일파로 분류되고 있다. 해원옹주가 이번 송사에 휘말려 비난을 받은 것도 양부인 이기용의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다.
이기용은 황족이면서도 지난 1910년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와 수작금 3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훗날 그는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귀족들의 모임인 ‘동요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귀족원’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는 반민특위에서 친일행적을 인정받아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재산의 반을 몰수당했다. 지난 2008년에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기용 가문은 지난 2004년 행자부와 지자체가 시행한 ‘조상땅 찾아주기’ 사업을 통해 37만㎡(11만여 평) 규모의 충남 지역 토지를 되찾았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05년 여야 의원들은 ‘친일파 후손 배불리기’라며 한 목소리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번에 제기된 이기용 가문의 소송 역시 ‘친일파 후손 토지반환’이라는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 [한]